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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아이디어는 왜 안 나올까?

  저번 글에서 연구 아이디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키워드'로부터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드린 바 있다. 즉, '우울', '자존감', '행복', '애착' 등 상위 카테고리에서만 머물다 보면 구체적이고 차별화된 연구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음을 이야기했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것은, 상위 카테고리로부터 보다 구체적으로 내려가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과연 연구자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어떻게 만들어낼까? 분명한 것은, 여러분들도 익히 짐작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은 결단코 간단한 과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연구 아이디어 짜 내는 것은 연구 초보인 우리들에게도, 연구 경력이 풍부한 학자들에게도 무척 고되고 힘든 일이다. 새로운 아이디어 만들기, 즉 연구에 독창성(originality)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운 것은 여러분이 '후발주자'라는 사실,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다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로부터 기인한다.


  이제 심리학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여러분들은 '후발주자'의 위치에 서 있다. 여러분 이전에, 이미 수많은 이들이 심리학 대학원의 길을 꿈꾸었고, 지금 현재도 그 길을 열심히 걷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여러분들이 흔히 생각해낼 수 있는 연구 아이디어에 대해 이미 다 검증을 마친 것이 현 상황이다. 여러분이 매우 잘 알고 있는 심리학 용어를 한 가지 떠올려보라. 귀인(attribution), 자존감(self-esteem), 몰입(flow), 불안(anxiety), 자아(self), 외향성(extroversion) 등등 이름만 대면 심리학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라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용어들이 아마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 용어에 대한 심리학 연구가 과연 몇 가지나 될 것인지 한 번 짐작해보라. 과연 자존감에 대해, 몇 번이나 관련된 연구가 있었을까?



검색창 아래에 쓰인 '검색 결과'를 잘 보라.



  여러분이 잘 아는 심리학 개념들은 대부분 심리학 전공 책에도 등장하는 개념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개념들이 '교재'에 실렸다는 말은 곧 그 개념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이 이미 차고도 넘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미 파헤쳐질 대로 파헤쳐진 나머지, 이제 그 개념에 대한 정설(定說)은 이미 마련되었고 이제 그 내용을 '교재'에 실어 후학들에게 일반화된 사실로서 가르쳐도 좋겠다는 학자들 사이의 합의가 존재했기에 여러분들이 그 개념을 '교재'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교재에도 자주 등장하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교적 잘 알려진 유명한 개념을 연구 주제로 삼는 것은 초보 연구자 입장에서는 다소 무모한 일이다. 수도 없이 많은 기존 연구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독창적인 연구를 고안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한편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다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 또한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의 창출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무릇 창의성의 원천은 '새로움'이다. 대상을 달리하든, 관점을 달리하든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우리들의 머리 속에 입력되어야만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안정화된 지식 체계에 균열을 낼 수 있으며 그로부터 새로운 발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 즉,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고 싶다면 '새로움'에 대한 적극적인 갈망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학제적 연구니, 융합이니 뭐니 하지만 심리학 대학원 지원자건, 대학원생이건 아직 숙련되지 않은 이들에게 있어 '새로움'은 사치와도 같다. 학자가 되는 길에 도제식 교육은 거의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다 같은 심리학개론을 보고, 다 같은 임상심리학 책을 보고, 심리학에 대한 교양 책만 보고, 심리학자들이 써낸 논문만 읽는다. 개인 내적으로도, 개인 간에도 도무지 '새로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창의적인 생각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져라. 그것이 바로 창의성이다.



  아마 여러분 누구에게나 한 번 이상씩은 있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간신히 자신만의 연구 아이디어를 고안해냈음에도, 이미 동일한 주제의 연구가 과거 이뤄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좌절한 경험 말이다. 그럴 때마다 '후발 주자'로서 뒤늦게 심리학계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날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다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 또한. 그러면서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선배들이 어떻게 저렇게 새로운 주제의 논문들을 잘 써낼 수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 많고 많은 연구들 속에, 자신만의 독창성을 발견해내는 학자들의 노련함에 감탄사가 나올 것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연구자들은 어떻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낼까? 결론적으로 내가 여러분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독창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거둬라'. 대단히 새로운 아이디어는 찾기 어렵다. 그것은 숙련된 연구자들조차 하기 어려운 일일진대 까마득한 '후발주자'에, 연구 경험마저 부족한 우리들의 입장에서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므로 여러분이 연구 아이디어를 고안하기 전에 가져야 할 태도는 바로 독창성에 대한 '허들'을 낮추는 일이 되어야만 한다. 즉, 기존 연구와 내용이 완벽하게 일치하지만 않는다면, 여러분이 생각한 연구 또한 충분히 새로울 수 있는 연구다. 누적적(cumulative) 학문인 심리학에서, 타 연구와 일부 방향이 겹치는 것은 때로 오히려 권장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표절이 아닌, 반복 검증(replication)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에 검증된 연구 내용의 타당성을 강화시켜주기 때문이다.



'Extended Replication'. 여러분이 추구해야 할 '새로움'이다



  기존 연구에 소개된 연구 참여자, 연구 방법, 측정 도구, 이론적 배경, 검증 맥락, 변인의 종류와 수, 연구 모형 등을 꼼꼼하게 따져본 후, 이들 가운데 몇몇 요소에 변화를 주는 방향으로 독창성을 창출해내는 것이 곧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비결임을 기억하라. 물론 모든 독창적인 생각에는 나름의 이론적 근거가 필요하다. 가령 여러분이 기존 연구에서 '연구 참여자' 부분과 '측정 도구' 부분에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새로운 연구를 모색하고자 한다면, 왜 '연구 참여자' 부분과 '측정 도구' 부분에 주목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부분의 변화로 인해 기존 연구와는 어떻게 다른 연구 결과가 도출되리라 기대하는지 등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뒤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한편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면, 기존 연구 논문 내 논의(discussion) 부분에 소개되는 '후속 연구 제언'에 대한 부분에 주목해보는 것은 어떨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논문을 마무리하면서, 해당 연구에 대한 제한점과 후속 연구에 대한 제언을 실어 둔다.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유사하면서도 새로운 측면이 고려된 형태의 후속 연구가 등장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정리해보자.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독창성'에 대한 여러분의 신념을 재정비하는 일이다. '후발주자'인 여러분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창성에는 엄연한 한계가 있으며, 여러분의 학업(연구)계획서를 보게 될 교수들 또한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어디까지나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차별화되는 지점을 모색하라. 논리적 근거가 탄탄하다면, 이 역시 매우 훌륭한 '새' 연구 아이디어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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