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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공부하기에는 늦었다?

'적지 않은 나이'로 망설이는 당신에게

  심리학을 공부하기에는 늦었다는 생각 때문에 대학원 진학을 주저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제 머리 쓰는 것이 예전 같지 않다며 적응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고, 대학원에 기껏 들어간들 자신보다 어리고 똑똑한 이들이 많을 텐데 이 무슨 주책(?)이냐며 손사래 치시는 분들도 적지 않다. 심리학을 배우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이제 와서 배워본들, 현업에서든 일상에서든 실제로 심리학을 공부한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여 망설이시는 분들 역시 대학원 컨설팅 일을 하다 보면 종종 뵙게 된다. 어떨까. '심리학을 공부하기에는 늦었다'는 말은 사실일까?


  사실 심리학을 연구하는 과정 그 자체는 머리, 그리고 체력으로 하는 것이 맞다. 우선 작디작은 글자들이 빼곡한 해외 연구 논문들을 수십, 수백여 편 정도는 들여다봐야 그럴듯한 연구 가설 하나를 세울 만한 이론적 토대를 닦을 수 있다. 그러나 영어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모르겠으나 한국식 영어에만 익숙해서, 혹은 영어와는 오래도록 담을 쌓고 지내왔다면 연구 논문 단 1편을 읽는 데에도 온종일을 다 보내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영어만 잘 된다면 논문 내용 이해하기는 쉬우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학부 수준의 심리학 기초 지식이 부족하다면, 그리고 연구 방법론이나 통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논문 읽기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래서 대학원에 처음 들어가게 된다면, 구체적인 연구 설계나 실험 등은 차치하고 일단 연구 논문 소화하는 것만도 벅차다. 또한, 비단 연구를 위해서만 논문을 읽게 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원 수업 역시 대개 논문들을 읽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대학원생들은 연구를 위한 논문뿐 아니라, 수업을 위한 논문들 역시 같이 읽고 숙지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나이가 들어 체력적인 면에서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면, 논문을 밤낮으로 논문을 달고 살아야 하는 현실이 무척이나 버거울 것이다.


  한편, 연구 논문들을 소화하는 것은 기나긴 연구 과정의 '밑바닥 다지기'에 불과하다. 연구 논문들을 통해 습득한 지식들에 비판적인 시선과 창의성을 더하여, 당신 자신만의 새로운 연구 가설을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한다. 논리력과 순발력으로 기존 연구들의 흐름을 짚어내고 그 안에 당신의 생각을 날카롭게 박아 넣을 줄 알아야 한다. 생각을 구체화시켜줄 수 있는 통계, 심리검사 등 각종 연구방법론을 꾸준히 익혀야 하는 것은 덤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측정 방법론 분야의 최신 연구 성과가 계속해서 누적되고 있는지라 연구방법론에 대한 공부는 대학원 이상의 전문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꾸준히 노력해주어야만 하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대학원 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체력'적인 여건이 잘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연구를 잘 해내기 위해서는 '재빠른 머리 회전 능력' 역시 필수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봤을 때는 아마 한숨이 절로 나올 것이다. '그럼 그렇지, 다 늦은 나이에 무슨 대학원 씩이나 가야겠다고 호들갑이었을까.' 그러나, 지금부터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왜 젊은이들에 비해 연장자가 심리학 공부에 더 유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이다.





  심리학 대학원에서의 또 하나의 일은 '응용'이다. 즉, 대학원에서는 새로운 심리학 지식들을 생산하는 것에만 몰두하지 않는다. 기존에 만들어진, 혹은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낸 연구 성과들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논하고, 그것을 실제 인간 세상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특히 연구보다는 응용에 보다 주안점을 두는 특수대학원이라면 연구에 대한 토론이 갖는 중요성은 더 높아진다. 다행인 것은, 이 과정을 위해 꼭 젊은 사람만큼의 체력이나 머리 회전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심리학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사람 공부'인 바, '인간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통찰'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으며 이러한 측면에 있어서는 연장자가 젊은 사람들에 비해 부족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의 원인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학문이다. 심리학은 과학의 한 분야이기 때문에 현상에 대한 기술, 설명, 예측, 통제를 목적으로 하며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라 부를 수 있으려면 연구하려는 대상은 관찰 가능해야 하고, 측정 가능해야 하며 반복 검증이 가능해야만 한다. 그러나 잊지 말자. 한없이 거창해질지언정 결국 심리학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하나다.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 



  심리학 연구 그 자체는 머리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이롭게 하려거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해야 한다. 



  무릇 사람이라는 존재를 잘 알기 위해서는 직접 사람들을 경험해보아야 하는 법이다. 직접 세상 속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쳐가며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직접 들여다보고 나의 그것들과 비교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론이나 추상적 진술로는 결코 포착해낼 수 없는, 사람들의 미묘한 온갖 역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직접 겪어보는 것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사람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하나같이 이런 말씀들을 하신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젊은 사람들은 머리로 이해한다면, 그들은 이 말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있다.


  물론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얼마든지 심리학 연구를 하는 것은 가능하다. 기존의 이론들을 토대로 새로운 연구 가설을 도출시키는 과정, 실험을 설계/진행하고 검증하는 과정, 그리고 결과를 모아 논문을 쓰는 과정까지, 사실 거기에는 나름의 요령들이 다 들어간다. 즉, 연구하고 논문 쓰는 일은 어떻게 보자면 어느 정도 기술적인 측면들이 포함된다. 이 부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체력이나 논리력, 비판적 사고력, 창의성 등 연구자의 기본 능력들이다. 그러나 훌륭한 연구의 완성, 혹은 해당 연구가 가지는 의미와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만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무슨 연구가 지금 필요한가?', '이 연구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결국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포함되어 있어야 진정 훌륭한 연구라 말할 수 있으며 그것을 위한 토대는 분명, 사람에 대한 연구자들의 생생한 경험들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다.


  경력 있는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인간에 대해 연구를 하면 할수록, 점점 고개를 숙이게 된다고 말이다. 알면 알수록 내가 알던 것이나 알아낸 것보다는 모르고 있던 것들이 더 많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들이 연구 과정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나름의 통찰로 만들어 온, 자신들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인간에 대한 나름의 정의들이다. '경험'없이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깨달음. 이것은 젊은 심리학자들의 열정과 기술적인 자질들을 뒷받침해주는 선배 심리학자들의 관록이자 연륜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해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고, 심리학이 겸손한 자세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나갈 수 있도록 브레이크를 걸어준다. 심리학이 독심술이나 각종 사이비 과학에 빠지지 않고, 정도(正道)를 걸어올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런 중심잡기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심리학 공부하기에 늦었다는 생각이 드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당신이 만나 온 많은 사람들이 곧 당신 자신만의 자산이다. 심리학은 사람을 공부하는 학문이고, 따라서 사람에 대한 '경험'들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다. 왜냐하면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의 이론만으로는 결코 잡아낼 수 없는 '틈', 그것을 곧 당신의 경험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삼되, 체계적인 심리학 이론들을 만나 정교함을 더하라. 그렇게 하여 이론만으로는 깨우칠 수 없는 영역의 존재를 젊은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길 소망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대학원에서 학구열을 불태우고 계신 이들께 경의(敬意)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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