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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은 쌓여가는 것이다

심리학,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3)

  연구를 위해 선별된 표본(sample)이 모집단(population)을 대표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심리학 연구의 질을 가늠하는 데 있어 무척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를 충족시키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이전에 말씀드렸듯이 수 십 명 가량의, 절대적으로도 그다지 많다 할 수 없는 표본으로도 모집단의 경향을 추정해 내는 작업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수 십 명이 과연 모집단을 대표하고 있는가? 라고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많은 고민을 합니다.


  흔히 심리학에 대한 비판과 함께 가장 자주 등장하는 표현 중 하나가 바로 '대학생 심리학' 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현재 심리학 연구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들이 바로 대학생이기 때문입니다. 대개 심리학자들은 대학에서 교수직을 수행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 학교 내 재학생들을 모집하여 실험을 진행하는 것이 여러모로 수월합니다(물론 이것만이 이유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를 위해 교내에 모집 공고를 부착하여 실험 참여 대학생들을 모집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해외 여러 대학들의 경우 졸업을 위해서는 심리학 등 실험에 일정 횟수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기도 합니다.


  요컨대 '대학생 심리학'이라는 말은, 대학생들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이를 토대로 구축된 이론들은 대부분 대학생들에게나 해당될 설명이라는 비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대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된다는 것은, 곧 표본의 대표성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 '대학생'이라고 하면 어떠한 특수한 성질들을 공유하는 집합체로 볼 수 있기도 합니다.


  대학생 집단의 특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전체 인구 가운데 대학생 집단은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가정 환경이 어느 정도는 부유한 편에 속합니다(물론 학자금 대출 등 녹록치 않은 형편에서도 열심히 대학 공부를 이어나가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겠죠). 그리고 알고 있는 지식도 많은 편입니다. 나이는 대개 20대를 벗어나지 않으며, 아직까지는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부모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런 특징들을 감안한다면 과연 대학생들의 심리가 곧 인간 보편의 심리를 대표한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심리학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표본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심리학계에서 권위 있는 학술지인 'American Psychologist'에도 이 문제에 대한 글이 게재된 바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할 지라도, 보다 많은 참여자들을 모집하여 다양성을 확보하거나 다양한 연령, 계층, 직종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려는 노력을 많이 합니다.


  한편 연구 결과를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 바로 '반복 검증(replication)'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철저한 연구 논문들은 하나의 논문 안에 여러 개의 실험을 포함시킵니다. 그리고 각 실험마다 참여자를 별도로 모집합니다. 이 때 실험 1, 2, 3, ... 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연구 설계 또한 반복 검증을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첫 번째 실험에서 'A는 B이다'라는 가설을 검증한 뒤에 두 번째 실험에서는 'A는 B이다'라는 가설을 그대로 가져가는 가운데 한 두 가지 추가 가설을 살짝 포함시키는 형태로, 점차적으로 검증 범위를 확장시켜 나가는 겁니다. 물론 아까도 말씀드렸듯 각 실험마다 참여자들은 다르게 구성됩니다. 만약 한 연구 논문에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실험이 다섯 차례 진행되었다면 'A는 B이다'라는 가설은 각각 다른 참여자들에 의해, 무려 5번이나 검증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리고 반복 검증은 단일 연구 논문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science)이 다루는 대상은 기본적으로 관찰 가능하고, 측정 가능하며, 반복이 가능해야만 합니다. 이에 따라 심리학 논문을 작성할 때도 추후 다른 연구자들이 자신의 가설/이론을 언제든 반복 검증해볼 수 있도록, 논문 페이지 내 '연구 방법' 파트를 가능한 상세하게 작성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탕 아래, 해당 논문의 내용은 다른 학자들의 논문 속에서 반복 검증의 절차를 거칩니다. 만약 수 년, 수 십 년 세월동안 지속적으로 반복 검증 과정이 이루어졌고, 그 가운데 해당 이론을 무너뜨릴만한 반박 증거들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다면, 그 심리학 이론은 충분히 '강력하다(robust)'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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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약 3회에 걸쳐서 '심리학 연구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 지'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 종합하자면 아래의 요소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심리학이 탄탄한 기반 아래 발전해올 수 있었고, 또 그러한 치밀함 덕에 곧 대중들의 공감과 관심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1) 치밀한 '기존 이론 검토 - 가설 확립 - 실험 설계 - 검증'의 과정

(2) 통계학에 근거한 논리적 추론, 검증

(3) 표본의 대표성과 반복 검증


  사실 이 모든 요소들을 충족시키기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대개 심리학 개론서 등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유명한 심리학 이론들은 이러한 요소들을 충족시켰기에 오래도록 살아남았고, 심리학 분야에서 이제는 거의 정설로 굳어진, 강력한 이론이 되었죠. 그리고 그 이론들은 현재, 하나의 심리학 하위 분야가 되어 버렸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Festinger의 인지부조화 이론(cognitive dissonance theory)는 수 십 년 간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친 강력한 심리학 이론으로, 그동안 심리학계에서는 인지부조화와 관련된 수많은 확장 연구 영역들이 파생시켰고 그 흐름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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