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어느 유명 심리학자의 조언

과학적 학문인 심리학에 대한 책임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몇 달 간의 고생 끝에 석사학위 논문 초고를 완성하여 이제 지도교수님을 포함한, 우리 연구실의 교수님 세 분께 1차 피드백을 부탁드려야 할 일이 있었다. 첫 번째로 지도교수님을 뵙고, 두 번째로 나는 허교수님을 찾아뵈었다. 허교수님께서는 당시 외부 초청 강연이나 행사, 그리고 방송 일정 등으로 연구실을 비우는 일이 잦으셨다. 그래서 최근 교수님과 약속을 잡고 직접 만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이렇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게 되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교수님께서는 신랄하게, 그러나 다정다감한 모습으로 내 논문의 단점들을 지적해 주셨다. 논문을 쓰던 당시에는 잘 보이지 않던 허점들이 어찌나 많이 보이던지, 디펜스는 커녕 당황한 기색을 숨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역시 교수님은 교수님이시구나, 하며 열심히 지적해주신 사항들을 받아 적어 나갔다. 그리고 나름 의문스러운 점에 대해서는 질문을 드려 의견을 구하였다. 약 30여 분 간의 피드백이 끝났고, 나는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오피스를 나서려 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궁금해하시면서 내게 물으셨다. '책은 잘 돼가니?' 하고.


  당시 나는 학위논문 작성과 책 원고 집필을 병행하고 있었다. 심리학에 대한 글들을 브런치에 꾸준히 연재하고 있던 것을 어느 출판사의 편집자분께서 좋게 봐주셨던 거다. 그래서 감격스럽게도 나는 나의 첫 책에 대한 출간 계약을 하기에 이르렀고, 한창 책 원고를 작성 중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 소식을 먼저 지도교수님께 말씀드렸는데 그 소식이 허교수님께도 전해진 것 같았다. 이미 유명 심리학 베스트셀러 작가이신 교수님께서 그 날 내게 해 주셨던 조언들 가운데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사실에 기반한 글쓰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지금보다 더 네가 유명해진다면, 분명히 여러 '검증 공세'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신중하게, 논리적으로. 상시 '팩트 체크'하는 마음 가짐을 잊지 마라.



  그때는 그것을 잘 몰랐다. 일단 내가 허교수님만큼 유명해질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실제로도 당시나 지금이나 나는 안 유명하니까. 그래서 막연하게 생각했다. 내가 쓴 글들을 누가 보겠는가. 몇 가지 실수가 있다한들 그것이 과연 큰 문제가 될까? 근거 없는 선동적인 글들로 대중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이들도 세상에 한 가득인데, 혼자 구석에서 차곡차곡 돌탑이나 쌓고 있다면 그것을 과연 누가 알아봐 줄까?


  하지만 지금은 교수님의 그 말뜻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나는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내 글을 읽어주시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으니 말이다. 만약 교수님만큼 더 똑똑해지고, 심리학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유명해진다면 과연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그 대가로 짊어져야 할지 미처 가늠이 되질 않는다. 내가 가진 그릇의 크기는 어느 정도 일까? 과연 나는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일까?





  독심술이니 뭐니 하는 사이비들과는 다르다. 심리학은 명실상부한 '과학'의 한 분야다. 심리학 전공자로서 나는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한다. 비록 외피는 다르더라도 나는 강연에서, 설명회에서, 워크샵에서, 칼럼에서 그런 의미를 항상 담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심리학은 과학이다' 라는 주장이 부끄럽지 않도록, 심리학을 업으로 삼을 수 있도록 내게 길을 열어주신 연구실 교수님 세 분의 명예에 먹칠하는 일을 만들지 않도록. 심리학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한 이상, 나는 그러한 무거운 책임감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다.


  심리학 전공자는 넘치고 또 넘친다. 그래서 나 한 사람의 노력이 갖는 파급력은 미미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는 나의 말로 인해 심리학에 대해 오해를 갖게 되고 말 것이다. 또 분명 '누군가'는 나의 말을 듣고 심리학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될 것이다. 그 '누군가'의 존재를 생각하는 한, 나는 항상 책임 있는 자세를 견지해야만 한다. 물론 때로는 시원하게 '내지르고 싶다'. 일일이 논문 찾아가며 사실 확인하고, 주장하는 것에는 한계와 범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기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연구 근거가 없다면 말할 마음을 잃게 된다. 근거를 만들기 위해 매번 수백만 원 들여가며 실험하고, 검증하고, 논문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래서 차라리 과학적일 수 없는 합리적일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마는 것이다.


  심리학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결코 '단언'하는 학문이 아니다. 확률로 말하고, 합리적인 추론으로 말한다. 그래서 나는 꽤나 자주, 심리학 연구들을 소개하면서도 개인차(individual difference)가 있을 수 있음을 말하고, 조절 변인(moderated variable)이나 매개 변인(mediated variable)이 숨어 있을 수 있음을 말한다. 측정 상의 오류나 각종 편향의 개입으로, 이 연구 내용이 잘못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것도 솔직히 사실이지만, 그런 내 이야기들이 또 틀린 말은 전혀 아니니까. 오히려 솔직한 거니까 나는 주저 없이 말한다. 


  찬물을 끼얹는 듯한, '아닐 수도 있어요'라는 말을 하는 대신 그냥 그럴싸한 주장만 하고 말을 마치면 좋으련만. 나는 도무지 그게 되질 않는다. 이것이 예의 그 책임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이야기를 듣는 이들을 위해 속 시원한 말을 할 줄 모른다. 다만 심리학 연구의 결과, 그리고 비판적/대안적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들려드림으로써 그것을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주체적으로 판단하시도록 안내하는 것까지만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여길뿐이다. 부디 스스로에게 비춰 보고, 자기 자신을 둘러싼 현실적인 여건들을 고려하여, 심리학 연구 결과 하나하나에 쉽게 현혹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단편적인 내용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갖는 함의(implication)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아직 한참 멀었지만, 이것이 바로 내가 심리학 글을 쓰며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타인과의 비교는 꼭 나쁜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