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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책방 #1]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꼭 실험해봐야 알아?'

  안녕하세요. 심리학 작가이자 강사로 활동 중인 허용회라고 합니다. 앞으로 심리학과 관계된, 유익한 책들을 여러분께 종종 소개해보려 합니다:) 때에 따라 책이 아니더라도, 심리학과 관계된 것이라면 영상이나 웹툰, 라디오 등 타 매체 컨텐츠의 내용들을 소개드릴 수도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물론, 아무 책이나 소개해 드리지는 않을 겁니다. 저는 심리학과 일반대학원을 졸업한 심리학 전공자 출신이고 그 점에 매우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심리학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과학적 근거 없이 '심리학'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대중을 현혹하는 책들을 상당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대학원을 마치고 세상에 나와 가장 먼저 쓴 심리학 책도 그런 '가짜 심리학'에 속지 말고, 제대로 심리학을 이해하자는 내용의 입문서였을 정도니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직접 읽어보고, 많은 분들께 추천드릴만하다고 판단되는 책들만을 엄선하여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업이 있어 주기가 들쭉날쭉할 수도 있지만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한성열, 21세기 북스)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라 불리는, 한성열 고려대학교 명예 교수가 쓴 책입니다. 이 책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얼마나 깊이 있고 재치 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는지는 대학원 시절 내내 교수님의 강의를 직접 들어온 제가 나서서 보장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 책은 이제는 잘 알려진, 소위 '힐링'에 대한 책입니다. 수십 년 간 상담 활동을 통해 많은 내담자들을 만나 온 한성열 교수의 날카롭고 직설적인 통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의 지적들은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습니다. 적나라하지만 무례함이 없고, 때로 잔인하지만 그것이 나를 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지기에 오히려 따스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지요.


  '실험 그거 꼭 해야 사람 알 수 있나?', '사람 안 만나보고 심리학 할 수 있겠어?' 평소 제자들에게 한성열 교수님이 버릇처럼 말씀하셨던 내용들입니다. 심리학 공부를 막 시작하는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들으며 어리둥절해합니다. 왜냐하면 현대의 심리학에서 '과학', '실험'이라는 키워드는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필수불가결의 성분이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은 사랑, 우정, 이성, 감정, 합리성 등 인문학적 주제들을 자연과학적인 방법론을 가지고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과학적인 심리학'. 현대 심리학의 핵심 정체성을 표현한다면 이것보다 더 들어맞는 것은 없지요.


  그래서 한성열 교수의 지적이 유독 낯설게 다가옵니다. 심리학 대학원에 가면 모두가 강조합니다. '심리학은 독심술과 같은 유사과학이 아니며, 단순한 말장난도 아니다. 엄격한 실험과 검증을 토대로 한 '과학'이다.'라고 말입니다. 심리학 연구를 위해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연구 가설을 만들고, 연구 프로포절에 나서다 보면 초보 연구자는 수없이 많은 비판에 직면합니다. 가령 '해당 가설의 논리적 근거가 무엇인가?', '변인 간의 관계성 가정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부족하다', '결과 예측에 대한 합리적 근거가 부족하다' 등 '논리성'을 강조하는 비판이 쏟아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심리학 연구자들은 때로 지나칠 정도로 '강박적'으로 '과학성'과 '논리성'에 집착합니다. 그런데 한성열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꼭 실험해봐야 알아?



  한성열 교수는 국내 문화심리학(cultural psychology), 종교심리학(psychology of religion), 토착심리학(indigenous psychology) 분야 개척의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 사람입니다. 심리학은 본디 철학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연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날개를 달고 비상을 시작한 학문입니다. 즉, 심리학의 기본적인 베이스는 '인문학'입니다. 실제로 심리학의 창시자라 일컬어지는 독일의 빌헬름 분트(Wundt) 역시 내성법(introspection)에 기반한 실험심리학을 주장함과 동시에, 실험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통감하고 또 하나의 축인, 민속심리학(folk psychology)의 필요성을 주장했었지요. '실험심리학'에 경도된 후세 사람들이 전부 다 실험에만 치중하느라 민속심리학은 결국 잊히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이죠.


  이 점이 몹시도 안타까우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성열 교수는 심리학계에 '심리학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인문학을 되살리기 위해 많은 연구적 / 실증적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대학원에 문화심리학 전공을 개설하고, 종교심리학이라는 과목을 새로 만들어 제자들과 계속 만났습니다. 서구인들만을 대상으로 구축되어 온 현대의 심리학 연구 체계가 과연 전 세계 보편의 것이라 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묻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제자들에게 역설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성열 교수의 글, 한성열 교수의 말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이 묻어납니다. '실험'만으로는 다 잡아낼 수 없었던, 모래알 같이 주위로 흩어지고 말았던 감수성들을 살며시 그러모아 둡니다.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국내 최고 수준의 '힐링' 심리학 책 가운데 하나로 감히 평하고 싶습니다. 인문학과 자연 과학이 결합된, 심리학의 본디 정체성에 가장 부합하는 형태의 담론을 직접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인문학과 자연 과학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놀라운 '인간 이해'의 세계를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숨겨왔던 은밀한 심리학자의 속내를 만나 보실 차례입니다. 
심리학자가, 당신에게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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