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허용회 Oct 31. 2017

그를 추모(追慕)하는 두 가지 방식

故 김주혁 씨의 비보를 접하며

  인간은 이해 불가능한 것, 예측 불가능한 것, 통제 불가능한 것 등을 매우 싫어한다. 혐오감을 유발하는 그런 대상이 있을 적이면 인간은 언제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들을 이해 가능하고 예측 가능하며 통제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해 왔다. 존재론적인 불안을 야기시키는 '죽음'에 대해서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물론 이 대담한 도전에 대한 철학적인 회의(懷疑)가 먼저 떠오른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는 것이 정녕 가능한 일인가? 이 질문에 대해 인간은 문화(culture)라는 답을 내놓아 맞섰다. 동물적인 삶을 숭고한 어떤 것으로 승화시키는, 인간이 발명해 낸 고도로 상징화된 체계 속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포섭함으로써 인간은 죽음에 대한 이해와 예측, 통제를 구하고자 노력해왔던 것이다.


  심리학에서의 공포 관리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Greenberg, Pyszczynski, & Solomon, 1986)은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그러한 부정적인 느낌에 대처하는가를 설명한다. 공포 관리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크게 두 가지 방식을 통해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다스려 간다. 문화적 세계관(cultural worldview)의 보호, 그리고 자존감의 고양이 바로 그것이다. 죽음은 곧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정신과 육체는 물론이요, 내가 소중히 아껴 왔던 그 어떤 것도 내 곁에 더 이상 남아 있을 수 없는 그런 절대적인 소외의 순간이 곧 죽음이다. 사랑하는 연인, 가족, 친구, 동료 등과의 영원한 이별은 물론이요, 살며 구하고자 했던 물질적, 정신적 가치 또한 모든 것을 속절없이 내려놓아야만 한다. 이들 중 단 한 가지만 잃어도 우리는 크나큰 슬픔에 잠길 진대, 이 모든 것을 단 한 순간에 잃어버린다니. 심지어 나 자신 조차도. 평범한 우리 인간들이 그것을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영생(永生)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들 때, 우리가 추구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영생이다. 물론 그것이 불로불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문화라는 상징적 체계를 빌려, 나 대신 이 세상 속에 영생하게 될 대리인을 구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에 맞선다. 비록 내가 소멸하더라도 '나'를 함축하는 상징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켜왔던 의미, 가치, 명예, 세계관, 후계자 등은 살아 남아 나의 유지(遺志)를 이어갈 터이다. 그래서 공포 관리 이론을 다루는 학자들은 죽음에 대한 생각은 문화적 세계관의 수호를 향해 인간을 동기화시킨다고 말한다. 내 흔적이 담긴 세계관이 사라지지 않도록 다소 방어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타인에 대한 친사회적 행동(prosocial behavior)을 부추길 때가 있다는 것이다. 타인을 돕는다는 것은 곧 타인의 기억 속에 '나'를 심는 일이다. 또한, 넓게 보아 타인들 역시 내가 속해 왔던 문화적 세계관을 구성하는 일부일 진대, 그들을 도움으로써 그들이 내가 간직해왔던 세계를 계속 지켜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젊었을 때 인색하기 그지없었으나 나이가 들고, 깨달은 바가 있어 남을 돕고,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노인들이 있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그들의 이러한 행위를 가리켜 스크루지 효과(Scrooge effect)라 부르기도 한다(Jonas, Schimel, Greenberg, & Pyszczynski, 2002). 


  한편 죽음이 두려운 우리들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함으로써 그 불안과 공포에 의연히 맞서려는 태도를 보인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존감을 고양시키는 활동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기 가치감을 높이고, 다른 이들과의 유대, 결속력을 높인다. 공포와 불안을 나누고 나누어 그것을 함께 견디고, 서로 용기를 북돋우며 죽음 공포에 대해 면역력을 키우려는 노력들이다. 그래서 죽음이 두려운 사람들, 삶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대개 타인에의 의존을 갈구하는 방향으로 동기화된다. 새로운 지식이나 능력, 노하우 등을 추구하거나 무언가 물질적인 것을 더 쌓아나가기보다는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 유지에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긍정적인 정서의 함양 및 정서적인 안정감을 갖는 것을 보다 더 중요한 삶의 목표로 삼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이 무서울 때, 삶이 허망하게 느껴질 때, 인생무상(人生無常)에 지독히 잠길 때 '외로움'만큼 치명적인 것도 없다. 최근 고독사(孤獨死) 문제가 급부상한 것이 유독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다.





  상징을 남겨 유지를 잇는 것, 그리고 타인들과의 연대와 협력으로 불안을 덜고 자존감을 고양시키는 것. 죽음 공포에 대처하는 이런 노하우들은 우리가 누군가를 먼 곳으로 떠나보낼 때,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노력들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죽은 자에 대한 추모(追慕) 행위는 다음의 두 가지 방향으로 이뤄진다. 그의 흔적들을 잊지 않으려는 것, 그리고 그가 짊어진 고통과 슬픔, 불안과 공포를 함께 나누는 것. 먼저 우리는 그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그의 상징적 영생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비록 육신은 역할을 다했으나, 고인이 지니고 있던 의미와 가치, 그리고 뜻만큼은 계속 살아남아 있을 수 있도록 고인의 흔적들을 열심히 발굴하고, 또 그것을 기억 속에 남긴다. 고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 영상은 물론이요, 유작(遺作) 또한 그의 정신적 영생을 염원하는 우리의 마음이다. 한편 죽음에 대한 소식은 빠르게 퍼져 간다. 사람들은 비보(悲報)를 또 다른 사람에게로 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는 고인과 유가족이 짊어지고 있던 책임감을 함께 나누고, 그 고통과 슬픔에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마음이다. 함께 한다면, 한 사람이라도 더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가 조금은 덜 외로워하지 않을까, 죽음을 조금은 덜 두려워하지 않을까, 하는 간절함이다. 보다 많은 이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추모비를 세우고, 터를 조성하고 의식(ritual)을 거행하는 것에는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에 대처하는 인간의 그런 의연함이 담겨 있으리라.





  아픈 기억은 묻어 두고 싶을 때가 있다. 계속 앞으로 가야 하는 이들에게는 때로 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잊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때때로 마음을 함께 나눠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인간이 죽음에 대처해 온 가장 지혜로운 극복 방법이자 지금 이 순간 살아남은 이들이 떠난 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성숙한 배려일 것이다.






** 2017년 10월 30일, 배우 김주혁 씨가 불운한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참고 문헌>

- Greenberg, J., Pyszczynski, T., & Solomon, S. (1986). The causes and consequences of a need for self-esteem: A terror management theory. Public Self and Private Self189, 189-212.

- Jonas, E., Schimel, J., Greenberg, J., & Pyszczynski, T. (2002). The Scrooge effect: Evidence that mortality salience increases prosocial attitudes and behavior.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28(10), 1342-1353.

매거진의 이전글 나르시시즘과 게으름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