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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책방 #4] 딱딱한 심리학

#4 <딱딱한 심리학> (김민식 지음, 현암사)





오, 심리학 전공하셨어요? 그럼 사람 마음 잘 맞추시겠네요?



  심리학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오해 가운데 하나다. 물론, 심리학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알려지기 이전보다는 많이 줄어든 것 같다. 과거에야 심리학이 무슨 독심술인지, 마술인지, 점성술인지 몰라도 너무 몰라 저런 질문들이 파다했지만, 심리학과도 많이 늘고, 몇몇 심리학 교수들이 대중에 얼굴을 알리고, 심리학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조금은 덜하게 된 듯하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 그동안 심리학 전공자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돌이켜본다면 어떨까?



응, 아니야.



  그저 아니라고 하기 바빴을 뿐이다. 심리학은 과학이라고, 그런 오해는 거두어달라고 손사래를 친다. 때로는 질문을 무시하고 자신의 일에 몰두하기도 한다. 물론 그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만큼 각종 루머와 오해들로 인해 고통받은 학문도 드무니 말이다. 사이비스러운, 인간에 관한 온갖 실체 없는 주장들이 넘실댄다. 너도 나도 '인간' 전문가라고 떠든다. 그러하니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에 관한, 대중사회의 각종 오해와 무지에 이미 질릴 대로 질려 버렸다. 그러나 대중은 여전히 궁금하기만 하다.



왜 아닌 거지? 심리학은 왜 '그런 학문'이 아닌 걸까?



  안타깝게도 마음의 문을 닫은 심리학자들이 적지 않다. 대중 사회로부터 거리를 둔 채, 묵묵히 과학적 정도(正道)를 걷겠노라 천명한 이들이 제법 있다. 다시 말해, 심리학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전면에 나서려는 심리학자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럼 심리학이 어떤 학문인지 제대로 알려주세요.'라고 대중들은 또 한 번 말을 걸어왔지만, 정작 심리학자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대중심리학(pop psychology)의 허상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책이 한 권 있었으니, 그 책의 이름은 바로 <심리학의 오해>(스타노비치 저, 신현정 역, 혜안)다. 심리학을 제대로 알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 봐야 한다며 너도 나도 추천하는 책 중 하나다. '오냐, 심리학이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면 진실은 과연 무엇인지 한 번 읽어봐 주마.' 대중은 인내심을 발휘했다. 심리학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책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책 읽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왜? 책이 너무 두꺼우니까. 어려운 것은 물론, 재미없는 '학술서적'이니까. 흥미진진한 심리학 실험 사례들이 잘 안 나오니까. '힐링', '행복'이 안 들어가니까.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김민식 교수가 쓴 <딱딱한 심리학>은 어떨까? 스윽 훑어보기에는 그냥 인지심리학 입문 교양인 듯하였으나 전체 분량의 3분의 1을 할애해 '독설'을 날리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요즘 말로 하면 '사이다' 같다고나 할까? <심리학의 오해>가 지닌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매우 직설적이면서도 '쉽게' 대중심리학의 오류들을 파헤쳐 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수'라는 타이틀은 흔히 권위적이고, 점잖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쓴 저자에게는 예외인 듯하다.



어제 낮 12시에 A라는 사람이 서울 종로에서 보복성 난폭 운전을 했다고 하자. 그리고 그것이 뉴스거리가 되어 기자가 나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면? 심리학 교수가 무슨 점쟁이라도 되는가? 그 A라는 사람이 아침에 직장 상사에게 야단을 맞았는지, 조금 전 애인과 전화로 말다툼을 했는지, 자동차에 에어컨이 고장 나서 짜증이 났는지, 오늘 신은 신발이 불편했는지, 혹은 상대차가 A라는 사람이 싫어하는 종류의 차종이었는지 등등 무슨 이유였는지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p.28)
최근 들어서 '과학'이라는 가면을 쓰고 인간의 마음이나 영성 등에 대해 자기계발적인 책들과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 새로운 과학적 실험이나 연구 없이 자신의 통찰(?)을 지지해 주는 사례들만 가지고 새로운 진리를 발견한 것처럼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면 행복해진다", "이것을 깨달으면 건강해진다"고 떠들어 대고 있다. (p. 70)
아무리 명문 대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교수거나 의사면 뭐하겠는가? 수십 권의 자기계발서 책을 출판하고, 대중매체가 세계적인 아이콘이라 떠들어 대고, 많은 대중들이 몰려다니는 유명 강연자면 뭐하겠는가? 주장하는 바는 전혀 과학적 엄밀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부흥 강사나 사이비 교주와 같은 말들만 쏟아 낸다. 여러분은 그 사람의 타이틀이나 대중 인기를 믿고 그 권위에 따라 지식을 얻겠는가 말이다. 그런 책을 보고 그런 강연을 들으면서 헛된 지식을 얻고 잘못된 신념을 갖느니 차라리 재미있는 만화책을 읽으며 낄낄거리는 것이 낫다. (p. 71)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단연코, 심리학에 대한 각종 오해와 허상들을 지적하는 1부가 압권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2부와 3부를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비록 인지심리학 기초에 해당하는 평이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지만, 1부에서의 간결함을 이어받아 매우 쉽고 간결하게 잘 설명해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그래서 인지심리학 기초 지식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한편, 저자가 1부에서 드러낸 메시지는 2부와 3부에서도 여전하다. 다양한 심리학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며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가 평소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진실'일까?'


  이 책은 심리학이라는 학문에 관한 올바른 지식 함양은 물론, 인지심리학 기초 입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으로 보인다. 분량이 적어 부담도 없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딱딱한 모습'을 지향했지만 사실 심리학에 대한 오해들을 피하지 않으며, 오히려 매우 자상하고 친절하게 잘 풀어주고 있기에 제목을 통해 의도하고자 했던 것이 얼마나 잘 충족될 수 있었는가 여부는 미지수다. 여러모로 '츤데레'(?) 같은 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학술서에 가까운 <심리학의 오해>가 부담스럽다면, 이 책에 한 번 주목해보자.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심리학은 아니기에 대중이 얼마나 좋아할지는 미지수지만,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단지 판매량이나 인기도 등으로만 재단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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