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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책방 #3] 쌤통의 심리학

#3 <쌤통의 심리학> (리처드 H. 스미스 지음, 이영아 역, 현암사)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타인의 고통을 보며 즐거워하는 마음



  일장일단().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고,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과학적인 학문인 심리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이자 '쌤통심리'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저자의 시선이다. 심리학은 가치중립적으로 접근한다. 함부로 옳다, 그르다 따위의 당위적인 판단을 내 보이지 않는다. 당위성이란 목적이 있고, 신념이 있는 심리학자들의 몫일 뿐이지 결코 심리학 학문 그 자체의 몫은 아니다. 심리학은 단지 현상 이면의 '이유'를 들려줄 뿐이다. 그 어떤 심리적 현상에도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리라 가정하는 가운데, 그것의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 조용히 과학적인 연구 방법론을 꺼내어 들 따름이다.


  인간은 왜 타인의 고통을 즐길까? 이 질문을 심리학적으로 던져보고자 한다면, 응당 첫 번째로 가져야 할 자세는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인간의 습성'에 관한 일체의 당위를 거두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떠나 어떤 '이유'로 그러한 현상이 발생하는지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두부터 <쌤통의 심리학>이 풍기는 분위기는 바로 그런 것이다. 샤덴프로이데. 쌤통심리. 과연 그것은 나쁜 것일까? 인간에게 쌤통심리가 본능적으로 탑재된 것이라 한다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가 있지는 않았을까?






  인간은 끊임없이 사회적 비교(social comparison)를 자행한다. 더 나은 사람과의 비교, 비슷한 사람과의 비교, 못나 보이는 사람과의 비교가 번갈아가며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 가운데 쌤통심리와 가장 관련이 깊은 것은 바로, 나보다 못나 보이는 사람과의 비교를 의미하는 하향 비교(downward comparison)다. 인간은 하향 비교를 통해 우월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기 고양(Self-enhancement)의 기분을 느낀다. 상사에게 시달리느라 깎여나갔던 자존감이 채워지는 듯한 기분을 받게 된다. 긍정적인 자아상을 유지하는 것. 나는 그래도 비교적 괜찮은 사람이라는 감각. 생존을 위해 인간에게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고, 하향 비교를 통해 이뤄지는 쌤통 심리는 그것을 충족시켜주는 하나의 열쇠가 된다.


  이 뿐이랴. 우리는 집단에 속한 개인으로서도 집단-개인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가져가고자 분투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스포츠 팀을 정하고 팀의 승패에 함께 울고 웃고 하는 것, 특히 라이벌팀과의 대결에서 패배했을 때 느껴지는 절망감과 승리했을 때 느껴지는 짜릿한 환희는 스포츠팀과 자신 간의 정체감을 하나로 동일시 할 수 있었기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저자는 심리학자 타즈펠(Tajfel)의 사회 정체감 이론(social identity theory)을 통해, 내집단 승리에 열광하고 타집단 패배에 '고소함'을 느끼는 이유를 상세히 설명한다. 내집단에 강한 결속력을 느끼는 개인은 그 자신의 정체성마저, 집단에 투영시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다면, 팀의 패배는 곧 나라는 인간의 패배로 직결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팀의 승리는 곧 나라는 한 인간의 승리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


  한편, 저자는 쌤통심리에 관한 사회적인 함의도 알뜰히 챙긴다. 가령 저자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방송에서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망신주고 그것을 유희거리로 포장하고자 하는 세태를 쌤통심리와 연결시키는데 저자가 인용한 '휴밀리테인먼트(humilitainment)'라는 표현이 일품이다. 텔레비전에 나와 망신 당하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사람들이 곧 쌤통심리를 즐기는 인간의 본성에 의하여, '상품'으로서 소비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것이다. 덧붙여, 쌤통심리와 역사적 사실 간의 연결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주목해볼 만한 대목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유대인을 향한 탄압 기저에 깔린 심리학적 함의가 자못 흥미롭게 다가온다.


  풍부한 사례들과 다양한 심리학 실험들을 통해, 쌤통심리에 관한 저자의 유쾌한 해석들이 책 전반에 걸쳐 이어진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지루함을 느낄 시간은 별로 없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이 책은 한국인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정의(justice)'에 대한 관심 또한 빼놓지 않는다. 공정한 세상 이론(Just World theory) 등으로 설명되는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인간의 욕구가 쌤통심리를 어떠한 방식으로 포장해내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명분과 실리, 모두를 갖춘 쌤통심리가 어떤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는지 새삼 생각해보도록 독자들을 이끈다.


  그러나 결론은 다소 평범하다. 쌤통심리에 대한 '과학적 이유'로부터 시작된 냉철한 시선은 끝까지 유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서두에서 언급했듯 심리학과 심리학자는 구분되어야 한다. 심리학자의 가슴은 뜨겁다. 하지만 심리학만은 객관적이고 냉정하며, 가감이 없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심리학자의 의견에 따라야 할 필요가 없으리라. 심리학이 가리키는대로, 그리고 각자의 신념이 가리키는 대로 입장을 정할 수도 있는 일이다. 심리학자를 따를 것인가, 심리학을 따를 것인가. 이 책을 보며 독자가 경험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흥밋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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