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특수/전문대학원에서의 연구 활동은 필요 없을까?

과학자-전문가 모델에 대해

  심리학 대학원 진학 희망자들에게는 두 종류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하나는 일반대학원 진학. 그리고 다른 하나는 특수/전문/교육대학원(이하 특수대학원)으로의 진학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이론, 연구, 기초 등 키워드에 초점이 맞춰진다. 실무에 뛰어들 전문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반대학원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역시 차세대 신진 연구자들의 양성이다. 그래서 상당수 일반대학원에서의 수업 커리큘럼은 유명무실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교수 등으로부터 지식을 주입받는 것을 수업의 목적이라 본다면 말이다. 실제로 일반대학원 수업에서는 논문을 활용한 요약, 발표, 토론 등이 주가 되고 있는데, 사실 이러한 활동들은 굳이 수업 시간이 아니더라도 대학원 생활하는 내내 어디에서도 벌어질 수 있고, 또 지속해야만 하는 일들이다. 그래서 '수업'이라 해서 굳이 특별하게 여길 일은 아니다.


  반면 특수대학원의 목적은 심리학 지식들을 현장에 응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그러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실천적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심리의 기초적인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연구(research) 활동의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 그보다는 수업 커리큘럼을 잘 따라가는 것이 강조되고, 수업에서 다뤄지는 내용은 학부 수준을 넘어선 고차원의 전문 지식들이 가득하다. 이미 잘 알려지고 검증될 대로 검증된, 그래서 이제는 정설로 굳어진 기초 개념들을 공부할 단계는 지났다. 특수대학원에서의 수업 과정에서는 현재 학계 최전선에서 열심히 만들어지고 있는, 비교적 최신의 지식들을 접할 수 있다. 새롭게 탄생한 지식들을 어떻게 현장에 응용할 것인가? 특수대학원에 속한 학생들이 항상 가지게 되는 생각이다.



기초(basic)냐, 응용(applied)이냐.



  이러한 대학원 종류의 차이를 알기 때문일까? 심리학 대학원 입시 전략 설명회/워크샵을 진행하면서 나는 지원자들이 희망하는 대학원 종류에 따라, 입시 준비 계획과 대학원 학업 준비 계획을 다르게 가져가려 한다는 사실을 종종 발견한다(물론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대학원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을 모르던 분들이 더 많긴 하다). 일반대학원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은 연구 활동에 대해 비교적 많은 관심을 할애하고 있다. 본인이 연구 활동에 적성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며, 대학원에서의 연구 활동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보인다. 특수대학원을 준비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연구 활동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시는 분들이 제법 있지만, 적지 않은 수의 특수대학원 지원자들은 연구 활동에 대해 별다른 관심과 걱정을 보이지 않는다.



특수/전문대학원에서는 연구 활동이 필요 없을까?



  특수대학원 지원자들의 학업(연구)계획서는 비교적 단조롭다. 사실상 꼭 포함되어야 하는, 개인적 스토리텔링 부분을 지나고 나면 이제 해당 대학원 개설 과목들을 기초로 한, 수강 계획이 나열된다. 가령 '1학기에는 OOO 수업을 통해 XXX와 □□□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도모하는 한편, △△△ 역량을 기르고자 한다 … 2학기에는 …'와 같은 식으로 글이 진행되며 이후에는 간단한 수련 계획 및 자격증 취득 계획이 곁들여진다. 이러한 접근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명칭에 충실하게 '학업계획'을 쓴 것인데 그것이 어찌 잘못된 것이란 말인가? 단지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학업(연구)계획서 내에 연구 활동에 대한 고민이 별로 담겨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일 뿐이다. 그리고 그 경향은 특히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서 두드러진다.


  '나는 연구 활동에는 흥미가 없어요. 대학원에서 학위 따고, 수련받고, 자격증 따서 상담 활동을 하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굳이 연구 활동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나요?' 이러한 질문에 대해 나름 답변을 드려보자면, 물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연구 활동을 '필수'라 규정할 수는 없다. 연구 활동은 최소한으로 하고, 단지 어떻게 하면 이미 나와 있는 지식들을 잘 흡수하고, 스스로를 단련하여 상담가로 만들 것인가에 관심을 쏟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원 이상의 전문가라면, 그리고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개인차에 따라 다양한 내담자들을 만나고 이들에게 적절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연구자로서의 기본 소양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격증'만' 따면 그만인걸까?



 골치 아픈 것은 이해한다. 심리학은 과학이므로, 심리학자로서 연구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무척 많다. 과학적 연구 방법론에 대한 이해나 통계 분석 능력은 기본이다. 심리학 텍스트의 대부분이 영어로 되어 있으므로 영어 실력 또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뿐이랴, 텍스트를 읽어가며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기본 바탕이 갖춰져야 하고 읽어낸 논문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연구 질문을 싹틔워낼 수 있어야 한다. 연구 질문을 구체적인 실험 설계 및 측정 과정으로 옮겨낼 수 있는 섬세함도 필요하고, 분석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함의점을 뽑아낼 수 있는 통찰력 역시 필요하다. 그리고 논문을 쓸 때 매우 매우 중요한, 글쓰기 능력과 논리적 사고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저 어려운 난관을 넘어섰을 때, 앞으로 오랜 세월 동안 이 분야에서 일하며 당신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보상들은 상당하다. 먼저 국내/해외 출처 가릴 것 없이, 내 전문 분야의 최신 지식과 기술들을 습득하는 속도부터가 다르다. 연구 방법과 논리가 복잡한 논문들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전문 연구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연구 활동에 대해 잘 아는 바가 없으면, 여러분의 실력을 단단히 다져주고 끌어올려줄 무수한 텍스트들을 죄다 놓치게 될 것은 당연지사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발전하지 않는다. 실력은 정체되고 말 것이다.


  내담자를 만나다 보면, 텍스트에 수록된 이론에 들어맞지 않는 사례가 비일비재할 것이다. 세상이 크고 넓고 복잡한 만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 또한 크고 넓고 복잡하다. 이 말은 곧,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듣도 보도 못했던 내담자들을 만나게 될 확률은 거의 100%에 수렴하리라는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면? 책에 안 나온다고, 사례집에 안 나온다고 두 손 두 발 들고 있을 것인가? 잘 안 맞을 것 같으면서도 애써 그동안 해 온 방법대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 한 사람의 전문가라면, 그리고 그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눈앞에 벌어지는 현상을 '탐구'해야 한다. 관찰하고, 기록하는 한편, 일련의 연구 과정을 통해 예측과 통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한 가지. 과학자로서의 소양을 닦는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을 정립하는 일이기도 하다. 소위 과학적인 자세라고 하는 것이 있다. 그릇되고, 왜곡되고, 주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중립적으로,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자세. 그것이 과학자로서의 기본자세이며 안타깝게도 이것은 과학 책을 열심히 들여다본다고 그냥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관한, 현상에 관한 질문을 내어 놓고 끊임없이 연습해야지만 조금씩 체득해갈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다.


  심리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있다(당연하다. 애초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왜 인간 공부에 뛰어들려 하겠는가?) 특히 인간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에 관심이 있는 임상심리/상담심리 전공자들은 더 하다. 그 인간을 향한 애정에는 무한한 존경을 보내고 싶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인간을 향한 애정이 때로 지나쳐 과학자, 전문가로서 가져야 할 냉철함과 합리성을 잃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가령 흔하게 범하는 실수들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지나치게 내담자의 문제에 감정적으로 접근하려 한다든지. 혹은 사태에 대한 객관적인 이유를 찾기보다는 시시비비를 따지고, 옳은 길을 제시하는 것에만 경도되고 만다든지 등등. '내담자는 언제나 옳다'는 말의 의미를 순간적으로 잊어버린 것이다. 이런 불상사들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꼭 과학적인 자세 함양은 필요하다고 본다.






  2014년 9월, 중앙대학교 심리서비스대학원이 문을 열었다(바로 가기). 현재는 임상심리학, 상담심리학, 안전 · 리더십 · 코칭심리학, 범죄 · 법정심리학 등 다양한 전공을 자랑하는, 지원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특수대학원이다. 그리고 내게는 이 특수대학원의 설립목적이 무척 인상 깊었다. 왜냐하면 이 특수대학원이 내걸고 있는 가치가 바로 과학자-실천가 모델(scientist-practitioner model)이기 때문이다.



"과학자-실천가 모델을 기반으로 한국 사회에 필요한 전문 심리 서비스 제공"



  과학자와 전문가(실천가)가 굳이 구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릇 전문가란 기존 교육 제도로부터 양질의 기술과 지식들을 다년간 습득하여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경험과 탐구 정신에 기초하여 끊임없이 자가발전을 이루어가는 사람이기도 하다. 오늘의 전문가가 5년, 10년, 20년, 30년 뒤의 전문가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탐구의 자세가 요구된다. 그리고 그 탐구 정신의 함양을 위해서는 연구 활동에 대한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정리해보자. 하다못해 학위 논문 쓸 때라도 연구 능력은 필요하다. 일반대학원 지원자는 두말할 것 없겠고, 특수대학원을 희망한다 하더라도 연구 활동은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심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심리학 대학원 입시 준비를 돕는 네이버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무엇이든 물어보러 오세요. 직접 답변해 드립니다.

→ 사이콜로피아: 심리학 대학원 진학하기(바로가기)

매거진의 이전글 심리학 대학원 입시 계획 세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