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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책방 #7]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

#7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 (오카다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책세상)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이 학문다운 학문으로 인정받기까지, 온갖 유사과학자들의 공격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됐다. 한눈에 척 보고도 사람의 마음을 알아맞힐 수 있다든가, 사람의 마음을 마술적으로 홀려낸다거나, 마음속 심연(深淵)으로 사람들은 안내하여 광기로 유도한다든가 등등. 인간의 심리에 관해 연구한다 하니 온갖 괴상한 오해들이 넘쳐났던 것이다. 따라서 심리학자들은 본업에 임하는 것과 동시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됐을 싸움 역시 감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맞다. 바로 인정 투쟁이다.



심리학은 과학(Science)이다.



  심리학자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부르짖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심리학도 과학적 연구 방법론을 사용하여 합리적인 지적 토대를 쌓아 올리는, 그런 학문임을 알아 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그 싸움은 불행하게도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다. 심리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심리학자들은 진리 추구를 위해 앞을 보면서도, 끊임없이 뒤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어쩌면 인정 투쟁 때문인지도 모른다. 철학과 과학적 방법론. 심리학(Psychology)의 뿌리는 분명 두 갈래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부분의 심리학 전공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전자보다는 후자다. '심리학과? 거기 사람 마음 맞추는 법 가르치는 곳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심리학이 왜 과학인지를 설명하기 시작한다(실제로는 설득하는 일이 만만찮기에 더 이상의 자세한 대화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간 과학적 학문인 심리학의 위상을 바로잡기 위해, 나름 경도된 인정 투쟁은 필요 불가결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나머지 한 뿌리를 일방적으로 외면한 채 지낼 수도 없을 것이다. 단지 과거의 흔적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심리학이 실질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인문학적 논의의 폭이 제법 깊다. 엄밀한 실험 설계/수행을 통해 분석 결과를 내고 가설의 참/거짓 여부를 검증하는 것까지는 충분히 과학적이라 치자. 그러나 그 온갖 방법론의 전제라 할 수 있는 연구 문제들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 또한, 연구 결과를 해석하고 함의를 이끌어낼 때의 배경은 무엇인가? 인간을 다루는 학문인 심리학이, 인(人)문학과 무관하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가 갖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문학으로서의 심리학. 과학적인 연구 결과만 강조하다 보니 슬그머니 멀어져 버린, 심리학의 인문학적 정체성이 묻어나는지라 기존 '주류' 심리학에 익숙해져 있던 독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애착, 안전 기지, 공감, 정체성, 주체성 등 그간 심리학 교양서적들이 가지고 있던 익숙한 문법들을 역사 속 철학자나 문학가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내는 저자의 솜씨가 무척 인상적이기에 심리학 전문 지식을 다루면서도 마치 한 권의 이야기책을 읽는 듯, 자연스러운 몰입을 유도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심리학과 유명인의 전기(傳記), 그리고 저자의 경험담 및 통찰. 무려 세 가지 이상의 소재를 제한된 형식 속에 한 데 버무리려다 보니 그만 군데군데 균열을 내어 보이고 만다. 절묘히 한 데 어우러진 장(章)이 있는가 하면, 접점을 찾는 데 실패하여 각 소재가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을 주는 부분이 눈에 띈다. 또한 유명인의 삶의 궤적을 토대로, 그의 성장 과정 이면에 놓인 심리학적 함의를 찾아내려는 시도는 흥미로우나 때로는 그 노력이 맹목적이며 편향적이어서 마치 저자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주입받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여지, 대안적 해석의 가능성을 비췄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심리학의 뿌리를 기억하다.



  당신의 마음은 통계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현대 심리학에서 검증되는 연구 결과들은 기본적으로 다수의 경향성(패턴)을 감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학적인 심리학을 온전히 당신 자신의 마음을 풀어내는 데 끌어다 쓰기에는 적절치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패턴과 개인차(Individual difference) 사이의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결국 당신 자신의 몫으로 남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깊이를 더하기 위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인문학적 상상력이다. 이 책을 통해 심리학적 지식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내는 방법을 한 번 엿볼 수 있기를.



그 무엇도 두렵지 않고 걷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살아 있다는 기쁨이 그 안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것은 자살 직전까지 자신을 내몰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경지였을까. 그렇다면 자살 시도는 재생을 위해 생명의 불꽃에 다시 불을 붙이려는 결사적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p. 241. (6장,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철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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