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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책방 #6]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아무래도 저자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는 듯하다. 

#6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김태형 지음)(갈매나무)





자존감 열풍, 이대로 좋은가?



  자존감 책, 자존감 워크샵, 자존감 강연 등등 대중이 자존감(Self-esteem)이라는 개념에 슬슬 질려가고 있을 것으로 봤기에 변증법 논리의 두 번째 단계(반, 안티테제)가 나타나리라는 예상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때맞춰 아주 흥미로운 심리학 교양서적 한 권이 우리를 찾아왔다.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가 바로 그것이다. '진짜 자존감'과 '가짜 자존감'의 차이는 무엇이며,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자존감의 모습은 과연 무엇인가? 이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가 우리에게 야심 차게 던지는 문제의식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진짜/가짜 자존감의 구분은, 이미 서양 사회의 심리학자들이 과거에 언급한 '자기애(Self-love)'에 대한 논의와 무척 닮아 있다. 2002년, 심리학자 Campbell, Rudich와 Sedikides는 자기애라는 용어 속에는 자존감(Self-esteem)과 나르시시즘(Narcissism)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므로 '자기애'를 논할 때는 이 두 개념의 구분이 전제가 되어야 함을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실제로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가 말하는 '진짜 자존감'은 자존감(Self-esteem)과, '가짜 자존감'은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각각 대응하고 있다(심지어 저자조차도 '가짜 자존감'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나르시시즘 개념을 들고 왔다).


  그러나 이 책의 핵심은 진짜/가짜 자존감에 대한 학술적 구분이 아니다. 그것이 개념적으로 어떻게 차이가 있고, 어떤 변인들과 통계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논하는 것은 이 책의 주제가 아니다. 그렇다. 나는 이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여 '과학 책'이라 불리기 힘들다. 그보다는 심리학의 이름을 빌린 어느 한 사상가의 책이라 말하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왜 그러한가? 자존감에 대한 과학적인 논의들을 모조리 피해 갔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다.


  자존감(Self-esteem) 개념이 가진 문제점에 대해 이미 많은 심리학자들이 지적해 온 바 있다. 자존감 고양이 타인과의 비교, 불안, 독단성, 권위주의, 공격성 등 부정적인 심리 지표들과 연관된다는 연구 증거들이 산재하며 따라서 자존감(Self-esteem)이 만능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그간 많은 공감대를 얻어 왔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자존감 안정성, 외현적/암묵적 자존감, 자존감 수반성, 자존감 2 요인 이론, 특질/상태 자존감 등 다양한 대안 개념들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가짜 자존감'을 내걸고, 자존감 개념의 문제점을 지적할 듯했던 이 책은 그런 학술적 논의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저자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는 듯하다.



  꽤나 익숙한 사회비판적 논의들이 책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물질만능주의, 학벌주의, 부당한 권위주의, 일방향성/주입식 교육의 폐해, 사회 불평등 문제 등등 소위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여느 텍스트들에서나 볼 수 있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장황하게 이러한 사회비판적인 논의를 길게 가져가는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이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의 표면적 목적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책을 읽어가며 그러한 의구심은 곧 확신으로 변한다. 바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들이 노골적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자존감이라는,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문제조차도 이 '병든 사회'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회 변혁을 위한 성찰적 움직임을 시작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하면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자존감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니.


  이 관점은 분명 자존감에 대한 기존의 대중사회의 논의에 대해 새롭게 기여하는 바가 있다. 저자의 말대로 자존감이라는 개념은 단지 개인의 주관적인 인식만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요인, 다소 객관적인 지표들에 대한 평가로부터 인간은 자아 개념의 일부를 만든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그래서 자존감에 대한 논의에서 사회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빠진다면 곤란해지는 것은 맞다. 정리하자면 기존 자존감 열풍에 대해 다시 한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도록 브레이크를 걸고자 했던 저자의 의도 자체는 훌륭하다. 그러나 그 자존감 형성/유지/향상에 관여하는 '사회적 요인'이라는 것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버렸다는 것이 문제다.


  이 책은 자존감에 대한 책이면서도, 자존감에 대한 책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겉으로 자존감을 말하는 듯하지만, 자존감이 낮은 대한민국 사회를 걱정하는 듯하지만, 기실 저자가 노리는 바는 자존감이라는 '창'을 통해 병든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고 그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다(어쩌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자존감 개념에 대한 과학적이거나,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불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자존감'이 아닌 '사회 비판'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학벌주의를 타파하지 않는다면, 돈과 스펙으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려는 풍조가 망하지 않는다면 자존감 문제의 해결 따윈 기대할 수 없다고 강하게 말한다. 심리학자들이 애써 상담하고 치료해봐야 그 효과성에는 근원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자존감의 기초를 정립하는 과정에는 유용하나, 그것이 곧 자존감을 높이는 길 자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심리학적 관점을 버리고 사회적인 요인을 강조하려는 의도였음에도 책의 마지막에 주장하는 해결 방안들이 지극히 '심리학적'이라는 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가 지닌 아이러니이자 한계점이 바로 여기서 다시 한번 드러난다. 돈이나 스펙이 아닌, '올바른' 가치관과 신념을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 '건강한' 소속 집단을 찾고 선의의 연대를 이룩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담겨 있는데 사실 이는 자아탐색, 원만한 대인관계, 사회적 지지, 삶의 의미, 내적 가치 등을 주장해 온 기존 심리학자들의 생각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저자 스스로가 내건 해결책이 기존 심리학자들의 생각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독자가 보기에도 과연 그러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싶다.



훌륭한 제목. 그러나 심리학적이면서도 사회적이자 정치적인 책이 되려 과하게 무리하다 맹맹해지다.




** 참고 문헌

- 김태형 (2018).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경기: 갈매나무.

- Campbell, W. K., Rudich, E. A., & Sedikides, C. (2002). Narcissism, self-esteem, and the positivity of self-views: Two portraits of self-love.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28(3), 358-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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