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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현실을 탐구하다

심리학에서의 실험(Experiment)


심리학자들이 '조작'을 행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한 연구자가 범죄에 대한 연구를 생각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연구자는 '피해자가 격렬히 저항하면 가해자의 공격성이 높아진다'라는 가설을 검증해보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이때의 독립 변인은 '피해자의 저항 여부'가 될 것이고 종속 변인은 '가해자의 공격성'이 될 겁니다. 즉 피해자가 저항을 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각각 가해자의 공격성의 정도가 어떠한지를 비교해보는 방식으로 가설을 검증해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연구자는 '피해자의 저항 여부'와 '가해자의 공격성'에 대한 어떤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를 내려야 할까요? 즉 각각의 변수들을 어떻게 측정해야 할까요?


  일반적으로 가설 검증을 위해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들 가운데 한 가지는 현실을 직접 관찰하여 확인해보는 것입니다. 독립 변수에 따라 종속 변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해, 사전에 가지고 있던 나의 예측이  맞아떨어지는지 아닌지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 됩니다. 단 한두 건의 관찰만으로는 일반화시키기 어려우므로 비교적 많은 사례를 직접 접해보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연구자는 아마 이 방법을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겁니다. 직접 확인해보려면 실제 범죄 상황을 발견하고 이를 관찰해야 하는데, 그런 운 좋은(?)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하물며 그런 상황에 처했다 해도 실제 범죄 상황을 어떻게 관찰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즉 범죄 연구라는 특수한 상황과 여기에 얽혀 있는 현실적, 윤리적 제약은 관찰에 의한 직접적인 검증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연구자는 이제 두 번째 방법인 문헌 조사에 주목합니다. 범죄에 대한 각종 통계 자료를 탐색해볼 수도 있고, 경찰 관계자 등과 협력하여 사건 개요나 피해자나 가해자 관련 정보들을 확보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정말 운이 좋다면, 피해자로부터 혹은 재소 중인 가해자로부터 사건 당시에 대한 얘기를 직접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로부터 각 범죄 상황에서 피해자의 저항이 있었는지, 그 세기는 어떠했는지, 가해자의 공격성은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한 단서를 확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설 검증을 위한 자료의 수집은 상당량 피해자나 가해자의 주관적인 진술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범죄 당시로부터 시간이 많이 경과했다면 이들의 기억은 충분히 옅어졌거나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엇보다도 연구를 위한 목적이라며 피해자에게 사건 당시 상황에 대한 회상과 진술을 요구하는 것은 심각한 윤리적 문제에 부딪칠 수 있습니다. 결국 연구자는 자신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문헌 조사 방법 역시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립니다.


  직접적인 관찰이나 문헌 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연구자가 마지막으로 생각한 방법은 가설 상황의 '재현'이었습니다. 즉 연구자는 실험(Experiment)을 계획합니다. 실제 범죄 상황을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 없고 남아있는 관련 자료들도 불충분하다면 실험실에 범죄 상황을 재현, 검증해보고 이를 토대로 실제 범죄 상황을 추론해보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물론 실제의 범죄를 실험실에서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습니다. 그 대신 연구자는 범죄 상황이 담긴 신문 기사 등을 제작해 활용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의 저항 여부'에 따라 '가해자의 공격성'이 어떻게 다른지를 확인해야 하므로 신문 기사는 '피해자의 저항 여부'에 초점을 맞춰 두 가지 형태로 제작됩니다. 


  기본적으로 두 신문 기사의 내용은 동일하되, 피해자의 저항이 있었던 조건의 신문 기사에는 피해자의 저항이 있었다는 내용을 자세히 포함시킵니다. 반대로 피해자의 저항이 없었던 조건의 신문 기사에는 피해자의 저항과 관련된 내용을 미미하게 포함시키거나, 아예 포함시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즉 이러한 방식으로 연구자는 독립 변인을 두 수준으로 조작(Manipulation)할 수 있습니다. 이제 실험 조건(피해자의 저항이 있었던 조건)과 통제 조건(피해자의 저항이 없었던 조건)의 참여자들은 각각 자신이 속한 조건에 맞는 신문 기사를 따로 읽게 됩니다. 그리고 각각의 신문 기사를 읽고 난 모든 참여자들은 신문 기사 속 가해자가 얼마나 공격적이었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종속 변인 문항에 답변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신문 기사의 내용을 다르게 구성한 조작 절차가 정말 성공적이었는지 확인해보려는 목적으로 포함된 조작 점검(Manipulation check) 문항인 "신문 기사 속의 피해자의 저항은 어느 정도였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에 대해서도 답변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연구자는 '피해자의 저항 여부'을 두 수준(피해자의 저항이 있음 vs. 피해자의 저항이 없음)으로 조작하여 이것이 '가해자의 공격성'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적으로 규명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또한 조작이 성공적이었음을 확인하고자 조작 점검 문항을 포함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현상을 직접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확보할 수 있는 자료들이 불충분하다면 실험(Experiment)은 연구자의 가설을 검증하도록 돕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즉 현실적인 제약, 윤리적인 제약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자유롭게 다양한 연구 설계들을 시도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실험 연구에도 분명히 단점은 존재합니다. 우선 실험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인위적으로 재현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과연 실험으로 입증된 결과가 현실에서도 유효할지는 조금 더 두고 보아야만 합니다. 즉 실험 연구에서는 외적 타당도(External validity)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또한 비록 실험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며 실제 범죄 상황 등을 재현한 것은 아니나 여전히 윤리적인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어쨌든 독립 변인의 수준을 조작하여, 참여자들을 일시적으로 통제하려고 하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연구자는 실험을 위한 조작 절차가 참여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만 합니다. 앞서 언급한 예에서는 단지 신문 기사를 활용한 것이었으므로 윤리적인 고려 사항이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참여자에게 일부러 듣기 불쾌한 소음을 들려주어 인위적으로 불쾌감을 조성시키거나 폭력적인 영상에 노출시키는 등의 조작이 포함된 공격성(Aggression)에 대한 연구 등은 비록 실험을 위한 것이었다고는 해도 매우 신중히 실험을 진행해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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