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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미래는?

심리학 열풍의 현주소

가히 '심리학 열풍이 거세다'라고 할 만합니다  



  심리학을 다룬 책들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베스트셀러의 위치에 오르내리는 일은 요새 무척 흔한 일이 되었고, 대학 입시철에 심리학과의 경쟁률은 해가 갈수록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수요에 맞춰 여러 대학들에서 심리학과를 새로 개설하거나 심리학 관련 내용들을 교양 과목으로서 다루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가히 '심리학 열풍이 거세다'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일까요? 어디에서든 심리학을 전공했고 심리학을 연구하고 있다는 말로 자기소개를 할 때면, 흥미로워하고 놀라워하는 사람들의 반응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잘 나갈수록 스스로에게 엄해야 한다



  제가 아는 심리학 교수님께서 종종 하시는 말씀입니다. 심리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사람으로서 오늘날의 심리학 열풍이 무척 신기하고 또 감사하지만, 새롭게 부상하여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그 어떤 학문들도 당시의 영광을 천 년 만 년 지속시킬 수는 없었고 심리학이라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무릇 학문이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필요에 알맞게 부응해줄 수 있을 때 급속한 성장세를 경험하고 사람들의 선망을 받지만, 한편으로 그러한 자리를 위협하는 신(新) 학문들의 끊임없는 도전을 감내해야만 합니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 모든 것들이 점차 변해가기에, 학문의 성장에도 한계가 있음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이 올 것입니다. 즉 점차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학문으로 도태되어 갈 수 있음을 인정해야만 할지 모릅니다.


  심리학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여러분들도 모두 알고 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현실은 무척 고단합니다. 지속적인 경제 불황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실업률, 그에 따라 서민들의 목을 조여 오는 생계의 고단함은 사람들의 마음을 지치게 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높디높은 취업 장벽 앞에서 시름하고, 직장을 가진 중장년층은 양육에 대한 부담과 명예퇴직에 대한 두려움, 노후 대비에 대한 불안 등으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도 점차 척박해져 가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지탱하느라 다른 사람을 돌볼 여력은 부족하고 타인으로부터 위안을 주고받는 일도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심리학은 척박한 시대 현실에 밀접하게 부응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소위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전문가로서 누릴 수 있는, 권위와 전문성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힘겨운 삶에 지쳐 있는 이들에게 '괜찮다'는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당신이 힘들어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따로 있다고, 그럼으로써 그 이유가 해결된다면 당신의 심적 고통은 치유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심리학자들이 하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렇게 삶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안도하며 삶의 희망을 보려 합니다.

 

  일견 심리학의 미래는 밝을 것으로 보입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마음 아파하고 불안해하며 힘들어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심리학은 고달픈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는 데 있어 최적의 위치에 놓여 있죠. 또한 주 연구 대상이 되는 것이 '인간'과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에 심리학의 활동 영역은 무궁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일상 등 그 어떤 영역이라 하더라도 '인간'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경제 활동을 하는 것도, 정치 참여를 하는 것도, 그리고 삶의 구석구석을 만들어나가는 것도 모두 인간들의 일입니다. 인간이 사라지는 시대가 오지 않는 이상, 인간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심리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 심리학의 미래가 마냥 밝을 것이라 낙관해서는 안 됩니다. 시대의 흐름 앞에 영원할 수 있는 학문은 없습니다. 당대의 가치를 잘 담아낼 수 있고, 이로서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역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것들이 그 흐름에 순응하여 점차 스러져가듯이 심리학도 언젠가는 시대의 최전선에서 물러나 황혼기에 접어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학문의 한계를 분명히 인지하는 것이야말로 심리학이 혁신에 혁신을 거듭, 보다 오래도록 사람들의 곁에 남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즉 소위 '잘 나가고 있을 때'일수록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을 더 비판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전문가로서, 심리학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해당 학문이 가진 장점뿐 아니라 단점에 대해 밝을 수 있습니다. 심리학 열풍 앞에 섣불리 자만심을 갖거나 안주하지 말고 심리학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극복해나가기 위한 고민들을 미리 시작해야 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해 그 영향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때라면 그러한 고민들은 이미 늦은 일이 될 지 모르는 일입니다.


  아직 부족함이 많아 어엿한 한 사람의 심리학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나름 심리학을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해온 한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심리학이 언젠가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이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서 심리학자들이 해야 할 일은 심리학의 주 연구 대상이 되는 '인간'에 보다 충실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론적인 사고와 실험 역시 추구하되 지속적으로 사람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보다 거리낌 없이 사람들에게 심리학을 내 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즉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하여 함부로 대중들을 가르치려 하면 안 됩니다. 또한 심리학 서적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대중들의 피로감이나 오해, 불신 등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심리학 열풍에 편승하여 '심리학'이라는 이름만 내걸어 유통되는 각종 허황된 이야기들은 결국 심리학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를 잃게 만들고 말 것입니다. 저는 심리학 서적들이 심리학 특유의 매력과 학문적 탄탄함을 믿고,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심리학의 모든 것을 내 보이기를 원합니다. 그럴듯한 포장은 오히려 심리학의 진정한 매력을 가려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이 사람들의 것이 되지 않고,
그들만의 것으로 남는 순간을 두려워해야 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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