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들은 쪼잔하다(?)
관심 있는 이성에게 호감을 얻는 O가지 방법
자기 계발 O계명
공부를 잘하기 위한 O가지 비법
당신이 궁금해하는 남자/여자들의 심리
성공하기 위한 O가지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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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떠도는 글 가운데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마 여러분 누구나 저러한 글들을 접해본 적 있으시리라 생각되네요. 여러분은 저 제목들을 볼 때 어떠한 기분이 드시나요? 어차피 흔한 얘기들 아니겠느냐고, 누가 모르냐며 손사래 치거나 별 거 없을 것 같다며 무시해버리고 싶어 지시나요?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생각지도 못한 대단한 비법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며 무심코 제목을 클릭해버리진 않았나요? 특히 지금 여러분 자신이 애달파하지만 생각보다 멀리 있는 것 같은, 마음에 둔 이성이 있거나 공부가 잘 안돼서, 혹은 취업이 잘 안돼서 불안하다면 말입니다.
얼마 전 YTN에서 '행복한 남성의 특징'에 관한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이 보도 내용이 생각보다 화제의 대상이 되어버린지라 저만해도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구경하다가 여러 번 보았던 내용입니다. 이에 대한 일부 누리꾼들의 반응을 살짝 가져와보자면, '내가 연애를 안 해서(?) 이렇게 불행한가 보다', '결혼 부추기는 것 같은데 이거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 아니냐', '나는 저 조건들을 만족시키고 있는 것 같은데, 안 행복한데?' 등등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 보도 내용이 과연 얼마나 가치 있게 받아들일 만한 내용인가에 대해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행복한 남성의 특징이라며 열거된 내용들이, 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눈에는 무척이나 '애매하게' 보이거든요.
심리학은 기본적으로 마음을,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다만 이 마음이라는 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측정 방법들을 고안하고 활용, 그 결과들을 토대로 마음의 구조나 상태 등을 추론해 내는 것이 심리학 연구의 기본 틀입니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항상 이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척 간단합니다. 눈에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를 않으니 도대체 내가 지금 다루고 있는 것이,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 맞는지 확실하지 않죠.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것이 만약 움직이거나 그 성질이 변화한다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그것을 어떻게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까요.
그런 이유 때문에 기본적으로 심리학은 매우 미시적인 학문입니다. 안 그래도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아 모호하기 짝이 없는 것이 곧 인간의 마음인데, 거대하고 추상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더 복잡해져서 마음이라는 실체를 도무지 잡아낼 엄두가 나질 않게 됩니다. 그리고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다소 쪼잔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긍정(positivity)'의 뉘앙스가 담겨 있는 말들을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행복함, 기쁨, 밝음, 웃음이 남, 재미있음, 흥미로움, 신이 남, 감동적임 등등 정말 다양한 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이 모든 느낌들을 '좋다'라는 단어 하나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행복해도 좋다고 말할 수 있고, 재미있는 것도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감동적인 영화에 대해서도 우리는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에게 있어 '좋다'라는 말만큼 애매한 것이 없습니다. '좋다'라는 말만으로는 행복함, 기쁨, 밝은, 웃음이 남, 재미있음, 흥미로움, 신이 남, 감동적임 등등 다양한 말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독특한 면면들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학 연구에서 단순히 '좋다'라는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구체적인 상황과, 구체적인 말이 있어야만 합니다. 비록 미시적으로 파고들게 되어 당장 큰 그림이 보이지 않더라도, 작아 보이더라도 심리학에서 다루는 용어 하나하나는 '확실해야만' 합니다.
다시 YTN의 보도 내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중에 20대 행복한 남자들의 특징으로 언급된 세 가지(최신 유행에 민감, 운동 등 자기관리 철저, 연애에 관심이 많음)에 주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심리학자라면 누구나 여기에 대해 (예를 들어) 이러한 질문들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애매한 것은, 아직 믿을 수 없으니까요.
'최신'이라는 말은 어느 기간을 의미하는가?
'유행'의 조작적 정의는?
'민감하다'라는 상태는 어떻게 측정했는가?
'운동 등'에서 '등'안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가?
'철저한 것'과 '철저하지 않은 것'의 경계는?
어느 정도여야 관심이 '많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행복'의 정의는 무엇인가? 어떻게 측정했는가?
연구 결과라면, 상관 분석 연구인가 실험 연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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