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다리 효과의 진짜 교훈은?
연구자(실험자)가 임의로 구분한 두 집단의 실험 참여자들이 있다. A집단의 참여자들은 한 명씩 차례로 위태위태한 흔들다리 위에 서게 됐고, B집단의 참여자들은 떨어질 걱정 없는 평지 위에 서게 됐다. 이윽고 흔들다리, 혹은 평지에 서 있는 참여자들은 자신이 있는 곳으로 이성의 조사원이 걸어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몇 가지 간단한 조사가 마무리된 후, 조사원은 추가적인 문의사항이 있다면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주고 자리를 떠난다. 이 첫 번째 실험 결과, 흔들다리 위에 있던 A집단의 사람들 중 약 50%가 전화를 걸어온 반면, 평지에 있던 B집단의 사람들 중에서는 불과 약 12.5%만이 전화를 걸어왔던 것으로 확인되었다(Dutton & Aron, 1974).
위 내용은 흔히 심리학에서의 흔들다리 효과(Suspension Bridge Effect)라는 명칭으로 매우 잘 알려져 있다(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으리라 짐작된다). 그렇다면 흔들다리 위에 서 있었던 사람들은 왜 조사원에 대한 이성적 관심을 품게 되었는가? 심리학자들은 이를 '흥분의 전이', 혹은 '귀인 오류'의 관점으로 설명한다. 위태로운 장소에서 흥분을 느낄 때나,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을 때나 마찬가지로 교감신경계 각성을 촉발하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흥분'에 대한 해석을 위해 우리가 상당 부분 상황 맥락적 단서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위태로운 장소와 이성의 접근. 흥분을 유도하는 상황 맥락이 두 가지나 동시에 나타나 버리니 내 흥분이 무엇에 의한 것인지 확실히 단정 짓는 것이 어렵고, 따라서 결국 '착각'을 일으키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흔들다리 효과 실험이 심리학계에 주는 파장은 컸다. 이 실험 결과가 결혼, 데이트 산업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되어서? 마음에 드는 이성의 호감을 살 수 있는 멋진 방법을 발견했다는 흥분 때문에? 아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당시 심리학자들은 그 자신들이 아닌, 종(種)으로서의 우리 인간들이 상처 입게 될 자존심을 걱정했다. 소설, 영화, 드라마, 그림, 음악 등 각종 매체들을 통해 그토록 사랑의 위대함과 그 사랑 속 개개인들의 절묘한 운명을 찬양해 왔건만. 어쩌면, 적어도 절반 쯤은 지구 상에 존재하고 있는 연인들이 연인으로 거듭나게 된 이유가 '우연'이자 '실수', '착각'에 의한 것일 수 있다니. 어떻게 우리들 자신의 몸 속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정작 우리 자신들이 모를 수가 있는지. 참으로 황망한 일이다.
흔들다리 효과는 단지 짧은 연애 꿀팁 같은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내게 벌어지는 생각과 감정의 흐름에 관한 자만심을 일부 내려놓아야 한다는 암시로 받아들임이 보다 통찰적이다. 흥분이 일어난다. 그런데 나는 그 흥분이 무엇 때문인지 본질적으로는 잘 모른다. 단지 감각으로 받아들인 정보와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으로 만들어진 '상식'에 입각한 해석을 내릴 뿐이다. 그리고 이에 더해, 우리에게 흥분감을 안겨주는 사건이 일상에 얼마나 다양한지를 상기한다면 심리학자들이 지적하는 흥분과 전이의 프로세스는 우리의 일상 영역에 생각보다 방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따금씩 흠칫 놀란다. 긴장이 되거나 설렘이 찾아올 때,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다. '지금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흥분하고 있는 것인가?', '그저 내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 때문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해 버려도 좋은 것인가?' 등과 같은 생각을 종종 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나는 저 위에 써 놓은 '흔들다리 효과'에 대한 내용들을 떠올려본다. 과연 내 반응에 대한 내 해석은 옳았던 것인가, 하고 말이다. 외부 공개 강연을 다녀온 불과 최근에도 그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대학 중간고사 이후 5-6월은 축제철이다. 이제는 모교를 떠나온 지 오래라 내가 그 틈에 끼어 뭔가 같이 놀아볼 염치는 나지 않지만, 그래도 약 10여 년 전에 잠을 줄여가며 우리들끼리 아기자기한 축제들을 준비하며 가슴 설렜던 시절이 있었기에 매년 대학 축제 시즌만 되면 가슴 한켠이 그리워지고는 한다. 올해 5월도 바로 그런 마음을 안고 사회인들의 세계 속에서 그 멀어진 곳을 생각하며 살던 참이었다. 그 때 갑작스레 날아든 모교 후배의 연락이 있었고 나는 졸업생이자 강연하는 작가의 자격으로 모교 축제 무대에 서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강연 당일, 나는 외부 특설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는 모교 대운동장으로 향했다. 사실 나는 실내에서 빔프로젝터와 PPT를 켜고 자리에 앉아 있는 청중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것에 워낙 익숙한 터라, 시야가 탁 트인 외부 특설 무대에서 강연을 한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긴장을 품고 있었다. 무대의 특성상 PPT를 띄울 수도 없었고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오로지 내가 준비한 머리 속 대본들에만 의존하여 토크 콘서트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평소라면 청중들이 분명 흥미 있게 생각해주실 만한 심리학 이야깃거리들을 준비했지만, 점잖기보다는 화려하고 신나야 하는 축제 무대였던지라 과연 내 아이템이 먹힐까? 하는 걱정이 컸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 나는 이내, 무대 앞에 도착하였고 곧 대기실로 안내받아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약 10여 분의 대기 시간, 나는 대기실 천막 틈새를 벌려 무대 위를 슬쩍 봤다. 왜? 지축을 뒤흔드는 음악 소리와 열광적인 사람들의 반응 소리 때문이었다. 아이돌 세계에 대해서는 잘 몰라 누구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무대 위 남자 아이돌 그룹이 격렬하게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그 덕에 무대와 현장의 분위기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뜨겁게 달아오른 상황이었다. 넋을 놓고 보고 있으려니 나는 내 심장이 어느새 심각하게 들썩대고 있는 것을 새삼 깨닫기 시작했다. 무대가 쿵쿵 울리고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압도적으로 거세어질수록 심장은 더 쿵쿵댔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강연을 앞둔 내 긴장감의 일부 원인은 바로 앞 무대의 분위기 탓이 아닐까.
조용조용한 순간이 이어졌다면 다음 차례에 무대에 서는 내 마음은 그리 쿵쿵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내 앞의 무대가 너무 강렬했기에, 정말 '대진운' 잘못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이라면 한 두 번 해본 것이 아닌데, 외부 무대라 해도 기본적으로 나는 무대를 즐기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었는데 이렇게까지 긴장을 하고 있다니. 막상 무대에 올라가 내 이야기를 풀기 시작하니 그제야 긴장은 덜해지고 평소의 모습들이 나왔으나 그전까지 덜렁 나 혼자 서 있던 대기실 안에서의 그 강렬했던 긴장감만큼은 무척 인상적인 경험으로 기억될 듯싶었다.
흔들리는 것은 내 마음이자, 내가 있는 곳 그 자체였더라.
지인에게 이 일화를 들려주자 그 역시 공감 가는 바가 있다 했다. 나와는 다른 목적이지만 그 역시 무대에 서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기에 내 이야기에 유독 공감이 갔다나. 가끔 앞선 무대가 흔들어놓은 분위기가 자신의 마음까지 흔들어놓는 통에, 그는 아예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가능하면 무대 먼 곳에서 마음을 정돈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한테 한 마디 덧붙였다. 그 '흥분'이 내 탓이 아님을 알았을 때, 그래도 기분이 좀 나아지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로지 무대를 앞둔 나의 긴장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의 일부 원인은 다름 아닌 내 '앞 사람'에게 있었다니. 그것을 알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외부 특설 무대에서, 그것도 열광적인 아이돌 공연 바로 뒤에 무대에 서 본 것은 내 강연 경력에서 잊히지 않을 매우 의미 깊은 경험으로 남게 될 듯싶다. 앞으로 언젠가, 문득 가슴이 떨리는 순간이 온다면 차분하게 상황을 짚어보게 되리라. 지금 내 가슴이 떨리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이냐고 말이다. 그러다 보면 겁나고 두려운 것이 오로지 내 탓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강연을 앞두고 초조해하는 자신을 비웃고 다그칠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 참고 문헌
Dutton, D. G., & Aron, A. P. (1974). Some evidence for heightened sexual attraction under conditions of high anxiet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0(4), 51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