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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가짜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 조작 논란

  약 일주일 전, 미국 SNS 미디엄(Medium)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압도적인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한 심리학 연구에 대한 충격적인 폭로가 나왔다. 벤 블럼(Ben Blum) 박사가 쓴 'The Lifespan of a Lie'라는 제목의 글로, 스탠퍼드 대학의 유명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 '스탠퍼드 감옥 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이 사실은 조작되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예를 들어 교도관 역을 맡았다는 이유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그런 가학적인 행동을 저지른 것이 아니었으며 단지 연구진들이 그렇게 하라고 '시켜서' 그런 행동을 연기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https://medium.com/s/trustissues/the-lifespan-of-a-lie-d869212b1f62


http://www.kormedi.com/news/article/1227763_2892.html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 교도관/죄수 역을 나누어 맡은 일군의 평범한 실험 참여자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몰두한 나머지, 지나치게 가학적이거나 순종적인 행동을 보여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교도관 역할을 맡은 참여자들은 원래 나쁜 심성을 가지고 있었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죄수 역할을 맡은 참여자들이 과할 정도로 순종적인 심성을 가지고 있어 '얕잡아 보였던' 것인가? 그것 또한 아니다. 그들은 우리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단지 실험을 위해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교도소에 있었으며 죄수, 혹은 교도관의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주어진 역할에 따라 '소임'을 다 할 것을 지시받았을 뿐이었다. 가짜임을 너도 나도 알고 있던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와 같은 기이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인가?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 그토록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 어떤 실험이던가. 수십년 동안 각종 심리학 교재, 서적, 프로그램 등에서 내려올 줄 모르던, 말 그대로 '스타급 실험'이 아니던가. 심리학자들은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즐겨 인용해왔다. 심리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인간 본성이 우리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혹은 인간의 주체성이나 이성은 상황의 힘, 만들어진 권력 앞에서조차 얼마든지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 때로는 말 그대로 종잇장 수준의 단단함에 불과한 것이라고 설파했다. 그런데 그 실험이 사실은 필립 짐바르도 박사를 포함한 스태프들의 인위적 개입으로 인해 만들어진 가짜 쇼였다니. 벌써부터 뒷목 잡을 심리학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최근 심리학계에 재현, 반복검증에 대한 이슈가 핫하다.



  이론으로 무장하고, 데이터와 가설을 통해 입증된 연구 결과들은 모름지기 반복적으로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특수한 사례에 머물지 않고 보다 넓은 차원에서 적용될 수 있는 일반 지식으로 누적될 수 있게 된다. 누군가는 '새로운 연구'에 집착하지만 사실 그에 못지 않게,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재현과 반복검증 과정을 통한 철저한 지식의 축적 과정이다. 새로운 연구라는 것은 기존에 검증되고 다져진 연구들을 토대로 삼아 꽃을 피운다. 그말인즉슨, 기존에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인용해 온 연구의 타당성/신뢰성에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면, 그 연구를 토대로 삼은 이후의 수많은 연구들이 가진 타당성/신뢰성마저도 모조리 의심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의미가 된다. 연구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모조리 수포로 돌아감은 물론이요, 한 번 휘청인 학계는 다시 신뢰를 쌓기 위해 더더욱 많은 시간과 고난의 길을 감내해야 한다.

  이번 스탠퍼드 감옥 실험 조작 폭로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현재로서는 짐작하기 어렵다. 결단코, 정녕 폭로자의 주장이 사실인지에 대한 수사나 검증이 이뤄져야 하기에 예단은 쉽지 않다. 또한, 스탠포드 감옥 실험이 거짓으로 판명난다 하더라도 해당 실험이 품고 있는 함의점 자체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의 우려가 그저 작은 설레발로 남게될지도 모를 일이다. 스탠포드 감옥 실험이 거짓이라도 인간의 본성은 우리가 믿어온 것만큼 그렇게 선하지는 않다. 또한 스탠포드 감옥 실험이 거짓이라도 인간은 언제든 상황의 힘, 조작된 권력 앞에서 휘둘릴 수 있다. 인지부조화, 복종, 권위, 등에 대한 수많은 인문학적 통찰과 사회과학 연구들이 일관된 지점을 가리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폭로는 심리학계에 분명 악재가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단지 그 정도의 문제일 뿐, 심리학 연구를 대하는 대중의 관심이나 시선은 지금보다 더 싸늘해질 가능성이 있다. 심리학자들이 그간 대중의 신뢰를 얻고자 얼마나 분투해왔던가. '심리학은 독심술이 아니다' 라며 손사래 치고, '심리학은 엄격한 과학이다'라고 끊임없이 주장해오지 않았던가. 부디 이번 일로 인해 그 정직한 노력들 전체가 폄하되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심리학자들이 마냥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또' 이런 일은 없을지 과학자로서, 학계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시금 돌아봐야만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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