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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심리학에 대한 오해

과연 무엇이 '사회적 상황'인가?

사회(社會, Society)



  위의 단어를 한 번 보자. 그리고 눈을 감고 딱 몇 초 동안만, 어떤 것들이 떠오르는지 곰곰이 훑어보자. 그럼 질문이다. 떠오르는 것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다음 질문을 해볼까 한다. 여러분이 떠올린 것의 '크기'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말하자면, 그것은 미시적이었는가, 거시적이었는가?



구글에 'Society'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위와 같은 이미지들이 나온다. 사회, 하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전형적'인 이미지다.



  흔히 사람들은 거시적인 모양새를 떠올린다. 군중, 무리, 집단, 조직, 관료제, 제도, 국가, 민족, 세계, 인류 등등. 사실 그렇긴 하다. 보통 '사회적'이라는 표현은 개인(individual)을 넘어선 '규모'의 문제를 다룰 때 사용된다. 사회적 맥락, 사회적 딜레마, 사회적 판단, 사회적 함의, 사회적 제도, 사회적 화합 등등 사회라는 말을 거론하며 우리는 큰 그림을 보려 애쓴다. 오직 개개인들만을 봐서는 보이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독특한 현상과 역동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오묘한 사회(society)라는 개념을 주도적으로 탐색하고 이해하려 힘썼던 학문은 단연코 사회학(Sociology)이었다. 그러나 19-20세기 무렵, 마찬가지로 사회를 다뤄보겠다며 '요상한' 학문 하나가 출현하게 된다. 바로 사회심리학(Social Psychology)이다.






  1898년에 '사회적 촉진(social facilitation)'이라 하는, 사회심리학만의 독자적 연구 주제가 있었다. 그리고 1908년에 맥두걸(McDougall)이 저술한 사회심리학 교과서는 사회심리학의 역사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이정표가 되었다. 물론 맥두걸은 당시 본능이라는 개념에 입각한, 충분히 '설명적이지' 못한 내용들을 주장하고 있었기에 오늘날의 사회심리학과는 그 형태가 사뭇 달랐다. 그러나 사회심리학이라는 명칭을 전면에 내 걸고, 책을 썼다는 사실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연구되고 있던 사회적 마음(social mind)에 대한 논의들을 한 곳으로 모아주고 '독자적 연구 영역'의 선포를 가능케한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만은 틀림이 없으리라.


  사회심리학에서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의 속성에 대한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심리학이기에 사회, 집단, 범주 등의 개념에 주목하되 상당히 미시적인 분석 단위를 가지고 있다. 종합하자면 사회심리학은 사회적 상황에 처한 개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또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흔히 사회학이 제도, 규범, 구조 등 사회적인 구성물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사회심리학에서는 그 사회적 구성물의 존재, 영향력으로 인해 무엇보다 '개인'이 어떤 심리적, 행동적 변화를 보이는가를 탐구한다. 혼자 있을 때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인간은 과연 무엇이 다른가? 모든 사회심리학 연구들이 밝히고자 하는 핵심 주제다.


  문제는 '사회심리학' 속에 담긴 '사회'라는 표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과 오해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는 '사회', 하면 으레 규모의 문제를 떠올린다. 그러나 사회라는 개념은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을 뛰어넘어, 매우 방대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국가, 민족 등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개념은 분명 사회적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너와 내가 만나 교류하는 사건 또한 분명 사회적인 것이다. 그리고 사회심리학이 주목하는 것은 아무래도 전자보다는 후자다. 단 두 명 이상. 한 명만 아니라면 그것은 곧 사회적 상황(social situation)이다. 혼자 있을 때와는 분명 다른 심리와 행동 패턴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 번 상상해보자. 지금 여러분의 옆에는 여러분이 잘 아는 누군가가 서 있다. 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존재를 마음속에서 지워내고, 마치 혼자 있는 듯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 장담컨대 그것은 불가능하거나 극도로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심지어 폐쇄적인 공간에 오롯이 나 혼자 틀어박혀 있다 할지라도, 그것 또한 사회적 상황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일견 이상한 일이다. 분명 나 혼자 있는데, 외부에서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는데. 이 방 안에서 그 어떤 미친 짓을 하더라도 아무도 그 일을 모를 텐데. 그것이 어떻게 '사회적'인가? 여기에 대해 사회심리학자들은 단 하나의 조건만을 제시할 뿐이다. '지금부터 이 방에 있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다른 사람'의 존재를 머리 속에 떠올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혼자입니다.'


  그렇다. 사회적 상황에 반드시 경험적 실재가 포함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혼자 있어도 사회적일 수 있는 이유, 그것은 인간이 혼자 있더라도 습관적으로 머리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지적 활동으로 인해, 혼자 있어도 타인을 의식했을 때 나타나는 생각과 행동의 패턴을 보인다. 실제로 사회심리학자들이 사회적 상황을 연구한다면서, 실험 참여자들에게 타인과 교류하는 장면이나 사회적으로 난처한 상황 속에 처해있는 모습을 '상상'하도록 지시하는 것은 실제로 그런 일을 겪지 않더라도 단지 그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유사한 신체적/정신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족, 연인, 친구, 이웃, 심지어 내가 속한 직장, 지역사회, 국가, 민족, 지구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들의 절대적 관심사 중 하나는 바로 나와 같은 종류의 인간들이 저지르는 천태만상이다. 인간은 절대로 다른 인간에 대한 관심을 끊을 수 없다. 괜히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겠는가. 이는 속세를 등지고 산간에 수십 년 간 틀어박혀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본능이다. 그렇기에 본질적으로 개인적인 상황들은 동시에 사회적인 상황들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사회심리학이 응용심리학이 아닌, 기초심리학(basic psychology)으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철학, 종교 등에서는 일찍부터 '인간이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니다'라는 훌륭한 통찰을 갖고 있었다



  과학적 실험과 검증을 지향하는 심리학의 특성상 사회심리학이 함부로 미시적인 것에서 거시적인 것으로 분석 단위를 넘나들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심리학은 분명 때로는 거시적인 사회 현상들에 대해 말한다. '전체 조직 문화'를 이야기하고, '거대 군중의 심리'를 이야기하고, '국민들의 심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회심리학 속 '사회'라는 말은 대개 미시적인 사회 현상들을 가리키는 용어이고 이 미시적인 사회 현상들이야말로 사회심리학자들이 제일 자신 있어 하는 영역이다. 실험과 검증으로, 보다 본질적이고 심층적인 사회심리적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이야말로 기초심리학인 사회심리학이 지금껏 걸어왔던 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심리학에 대한 기대 범위를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 집단, 국가, 사회적 이슈, 제도 등도 좋지만 너와 나의 문제, 혹은 사회 속 나 자신의 문제를 기대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실 사회심리학자들이 그간 매우 많은 공을 들여 연구해왔던 주제가 바로 자기(self), 대인관계(interpersonal relationships), 호감(attraction), 사랑(love), 인상관리(impression management) 등이었다. 우리가 흔히 임상심리학, 상담심리학(혹은 '힐링심리학'이라고 불리는 대중심리학의 한 영역)에서 기대하는 주제들이다. 그러나 임상심리학, 상담심리학 등 응용심리학(applied psychology)이 우리에게 주는 실천적 지침들의 근간을 구성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기초심리학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사회심리학이다.



인간의 대한 고민의 깊이를 더하다.



  기초학문은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깊이를 다지게 하고 그로부터 한 차원을 넘어선, 생각의 '질적 도약'을 가능케 한다. 나는 사회심리학이 기초심리학으로서 인간 관계의 역동에 관한 어떤 본질적 통찰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본질을 잊은 채, 확고한 정체성 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지는 않아야 할 텐데. 대중사회 속 사회심리학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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