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진로를 잘 정한다는 것의 의미

진로(태도)성숙 개념에 대해

진로탐색, 진로상담, 진로선택, 진로준비 등



  학교 다닐 때 아마 누구나 질릴 정도로 많이 들어 본 개념들이 아닐까 싶다. 당시에는 앞으로 직업 고르고 먹고 살 일보다는 다른 것들이 중요한 것 같아 크게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중학교 다닐 적에 무엇보다 가장 큰 관심사는 '학교 끝나고 뭐하고 놀까?' 였고, 고등학생 쯤 되었을 적에는 그래도 좀 컸다고, '어느 대학에 갈 수 있을까?' 였다. '진로란 뭘까?', '무슨 직업이 나에게 적합할까?' 등등 적어도 학교 다닐 무렵의 내게는 상당히 먼 그런 질문들이었다. 아마, 열심히 놀며 크다가 대학에 가고, 대학 졸업을 앞두게 될, 한창 어른이 되었을 때에나 다가설 법한 문제같았달까.


  생각해보면 그렇다. 이미 살아 본 사람들이 겪어보고 검증한, 인생의 중요한 것들이 참 많은데 꼭 그 나이가 되어 보기 전에는 그것들에 대해 모른다. 직업, 진로 등 먹고 산다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일찍부터 충분한 시간을 두고 준비할 수 있었던 과거에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나이가 든 지금에 와서야 그 때의 허송세월을 아까워할 뿐이다. 대학이 사회로 나가라고 등 떠밀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생각해본다. 옛날에 어른들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진로'라는 건 도대체 과연 무엇이었을까?



앞으로 나아갈 길



  국어사선에서 찾아본 진로(進路)의 의미다. 이렇게 짧고 막연한 정의를 보고 나니, 진로를 탐색하고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이 왜 언제나 막연하기만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넓은 의미로 치자면 진로란 우리가 '살아있다면' 갈 수 있는 그 모든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엇이든. 어쨌든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 아니라면 우리는 누구나 진로를 앞두고 있고, 진로 위에 서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진로' 이야기를 할 때 염두에 두는 몇 가지 특성들이 있다. 내가 가진 적성, 흥미와 맞아야 한다든가, 직업(jop)이라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나와줘야 한다든가, 돈을 벌거나 가치를 버는 등 생산성이 있어야 한다든가 등의 특성 말이다. 즉, 정리하자면 '스스로 적당히 만족하며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이것이 우리가 현실적으로 짐작하고 있는 진로의 뜻일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진로는 중요하다. 그래서 어른들이 강조해온 것이고 심리학계에서도 진로에 대한 셀 수 없이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 온 것이리라. 그리고 그 온갖 노력의 결과물이 당시 우리가 학교나 학원, 혹은 어느 교육 기관에서 받았던 온갖 진로 탐색 관련 활동들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어떤 연구를 해 왔을까? 특히 진로를 잘 찾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기 참고해볼 만한 흥미로운 심리학적 개념을 한 가지 소개해보고자 한다.



진로(태도)성숙[career (attitude) maturity]



  진로(태도)성숙의 개념은 Super(1955)와 Crites(1961) 등의 연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인간의 발달에도 단계가 있고 각 단계마다 해내야 하는 과업이 있듯, 마찬가지로 진로에도 발달 단계가 있고 각 단계에 맞는 과업이 존재한다는 발상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성숙 상태를 판별하는 요건은 학자들마다 상이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중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이기학 교수님이 제안하신 진로(태도)성숙의 하위 요건이 무척 요긴한 듯 싶다. 총 5개로 구분되어 있는 하위 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결정성: 진로가 얼마나 결정되어 있는가?

 - 목적성: 생계 등 외재적 목적과 가치 등 내재적 목적을 얼마나 잘 타협시키고 있는가?

 - 확신성: 진로선택에 대한 믿음과 확신은 어느 정도인가?

 - 준비성: 성실성, 논리적 의사결정, 현실 인식 등의 능력 및 실제 진로 탐색의 준비/성과는 어느 정도인가?

 - 독립성: 진로선택의 과정을 주체적으로 이행하는가, 타인에 보다 의존하는가?



  기존 연구들을 살펴보면 진로(태도)성숙는 개인의 자아정체감이나 성역할정체감 등 '나' 자신에 대한 또렷한 지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비교적 많이 고민해보고, 분명한 그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야 흔들림없이 진로 탐색 과정에 나설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진로(태도)성숙은 양육환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모가 얼마나 지지적이었는가, 부모와의 애착 관계는 얼마나 안정적이었는가 등의 요소는 자녀가 성숙한 진로에 대한 태도를 기르는 데 영향을 미치는 중요 변수다. 그밖에도 심리학자들은 자기효능감, 정서지능, 완벽주의, 낙관성, 자기주장성, 심리적 독립, 멘토 경험 등 진로(태도)성숙과 관련된 다양한 변수들을 제안해 왔다.


  위 기준에 따르자면 결정성, 목적성, 확신성, 준비성, 독립성이 낮다면 진로발달이 더딘, 상대적으로 미성숙한 단계에 놓여 있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런데 '미성숙에 대한 책임소재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미성숙에 대한 책임소재는 개인에게만 캐물을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개인이 독립적으로, 진로탐색의 목적과 그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준비하며 결정할 수 있도록 '환경'이 제대로 갖추어졌는지를 따져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약 10여 년 전, 한창 대학에 다닐 무렵부터 취업 힘들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당장 써먹을 곳이 없는 학문을 배웠다는 이유로 특히 문과생들이 취업 전선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신다는 이야기를 여기 저기에서 주워 들었다. 그나마 회계, 법, 아니면 제2외국어. 그것이 아니면 문과생이 딱히 내세울 만한 전문성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내 주위 문과생들은 하나같이 다 힘들어 했다. 매체를 봐도 비슷한 얘기가 끊이지 않으니, 취업이라는 것이 지금 얼마나 힘들고 제한적인가를 다시 한 번 실감해본다. 그리고 고민해본다. 그런 상황 속에서 진로(태도)성숙을 논한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서도.



Q. 진로를 확실하게 정하고 싶어
A. '결정'은 하지말고 일단 여기저기 원서 다 넣어(결정성 탈락)
Q.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 가치있게 느끼는 일을 하고 싶어
A. 직업 안정성, 연봉(인상률) 좋은 곳으로 가야 해(목적성 탈락)
Q. 나는 이 진로를 택하면 성공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어
A. 무한경쟁 사회, 승자독식 사회라서…(확신성 탈락)
Q. 충분한 시간을 들여 내 진로를 고민하고 준비하고 싶어
A. 학력, 학점, 어학점수, 공모전 등 남들 다 하는 스펙을 일단 열심히 갖추자(준비성 탈락).
Q. 나 스스로 직접 진로를 알아가고 결정하고 싶어요
A.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게 어때? (독립성 탈락)





** 참고

1. 이기학, 한종철 (1998). 고등학생의 진로태도성숙과 개인적 특성 및 심리적 변인들과의 관계.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10, 167-189.

2. Crites, J. O. (1961). A model for the measurement of vocational maturity. Journal of Counseling Psychology, 8, 255-259.

3. Super, D. E. (1955). Dimensions and measurement of vocational maturity. Teachers College Record, 57, 151-16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