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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너네 돈 잘 벌잖아?

의사의 소득 논쟁에 숨은 심리학적 의미

    안타깝게도(?) 필자는 부자가 아니다. 돈도 남들 버는 만큼만 적당히 번다(한 달 벌고 한 달 먹고 사는 수준이라 통장은 언제나 가난하다). 그래서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의 삶은 어떤지 잘 모른다. 무엇 때문에 행복하고, 무엇 때문에 불행한지 잘 모른다. 다만 이들이 자기 나름대로 가진 삶의 고충을 호소할 때,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안다.


그래도 돈 잘 벌잖아

돈도 많이 버는 사람이 뭐가 그리 힘든지?

그래도 부자니까 나보다 낫지

돈 많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뭐 하나 부족한 것 없는 사람이 아니 왜?

(부자 걱정은 하는 거 아니랬다)


    돈 잘 버는 사람들은 어디 가서 힘든 소리 하기 힘든 것 같다. 의대 정원 늘리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의사들은 의대 정원을 늘리면 어떤 문제점이 예상되는지 꾸준히 목소리를 내 왔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심해질 것이다, 의료재정 고갈이 커질 수 있다, 의사의 숙련도 문제가 있다, 의사는 지금도 충분한데 병원에서 채용을 안 하는 것이다 등등.



어쨌든 너네 돈 잘 벌잖아?



    물론 건설적인 토론도 많이 일어난다. 각 주장별로 조목조목 따져보는 사람도 있고, 자료를 들고 와서 논쟁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다. 타협점은 어디일지 고민해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늘 이런 부류의 논쟁에서 빠지지 않으면서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 주장이 있다. 바로 '어쨌든 너네 돈 잘 벌잖아?'이다.


    필자는 의료계 종사자도 아니고 관련된 전문 지식도 없다. 그래서 이 사안에 대해 더 깊이 들어갈 생각은 없다. 다만 의대 정원 늘리기에 대한 논쟁을 보고 있자면, 심리학적으로 무척 흥미로운 부분들이 엿보인다. 그중 하나가 바로 위에 언급했던 의사의 월급에 대한 논쟁이다. '어쨌든 너네 돈 잘 벌잖아?'라는 의견 이면에서는 한국인이 돈(물질)을 이해하는 방식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돈을 좋아하는가?



    솔직히 필자는 돈을 엄청 좋아한다. 돈 생각 안 하는 날이 없다. 어떻게 하면 생계유지가 될까, 조금이라도 더 벌고 아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통장에 돈이 너무 부족한 것 아닐까 등등 맨날 고민한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한 가지 착각을 갖고 있다. '부자가 되면 세상 편할 텐데', '로또만 당첨되면 행복하게 살 텐데', '돈을 잘 못 버는 나는 참 하찮구나' 이런 생각을 가끔 한다. 그리고 감히 추정하건대, 한국인 중에는 아마 필자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왜? 한국인의 물질주의materialism 수준은 세계 정상권이기 때문이다.





부자 = 성공 = 행복


    심리학자들이 다루는 물질주의 성향을 간단히 정리하면 위와 같다. 물질주의란 물질의 소유나 획득 그 자체를 인생의 그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관점을 말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물질주의자들은 오로지 돈을 잘 버냐, 부자인가 를 기준으로 인생의 성공/실패를 재단한다. 둘째, 소유 중심적 사고로, 물질을 얻는 것 그 자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다. '개같이 버는 것'에만 관심이 쏠려 있을 뿐, '정승처럼 쓰는 법'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셋째, 행복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다. 물질주의자들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어쨌든 너(네) 돈 잘 벌잖아'라는 반응 안에는 물질주의의 심리가 숨어 있다. 물질주의의 입장에서는 부자 = 성공 = 행복이어야 하는데, '성공'한 '부자'가 도통 행복하질 않다고 하니, 힘든 점이 있다고 나서니 기존의 물질주의의 등식과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람은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 신념에 맞지 않는 일이 벌어졌을 때, 현실에 맞게 신념을 수정하기보다는 일단 기존의 신념을 보호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쨌든 너(네) 돈 잘 벌잖아? (너네 성공했고 그러니까 행복하잖아, 뭐가 아쉬워서 그래?)'와 같은 반응을 하고 싶어 진다.



부자의 고민은 가볍고, 빈자의 고민은 무거울까?



    '물질주의에서 벗어나세요', '행복은 돈에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부자도 나름 힘들답니다' 이런 결론을 맺을 생각은 없다. 필자조차도 물질주의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온갖 심리학 책, 논문들에서 한결같이 돈의 한계효용체감을 이야기하지만, 행복의 조건은 돈이 아닌 다른 데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직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보다야 부자가 되면 당연히 행복하지 않을까', '돈만 많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엄청 많겠지', '돈 많이 벌어서 빨리 은퇴하고 싶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자기반성이다. 물질주의는 색안경을 만든다는 점을 깨닫는 요즘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돈이 인생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음은 자명하다. 그래서 빈자의 고민만큼 부자의 고민에도 가치가 있거늘, 색안경은 그 가치를 외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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