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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메일에 왜 이런 표현을 쓸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업무 메일을 주고받을 때 내가 자주 쓰는 말이 있다. 특히 누군가에게 심리학 대학원 가는 법에 대한 조언, 작가가 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조언, 기타 심리학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을 드려야 할 때 더 자주 쓰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최소한의 성의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니 참고 목적으로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와 같은 표현들이다.


    어떻게 보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흔히 쓰는 겸손의 표현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 위와 같은 표현을 남긴다. 뭐 내가 대단히 겸손한 사람이라거나, 예절 바른 사람임을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내가 생각하는 방향성과 의견이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늘 고려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노력과 성의를 다해 결과물을 넘겨도 상대방은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정녕 상대방을 위한 배려였을까? 아니면 나를 위한...?



    하지만 요즘 들어 깨닫는 바는, 어쩌면 내가 즐겨 사용했던 겸손의 표현들이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다. 심리학에는 방어적 비관주의defensive pessimism이라는 개념이 있다. 방어적 비관주의는 불안을 관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인지적 전략의 일종이다. 방어적 비관주의자들은 자신, 혹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다. 왜? 기대하는 바가 적을수록 내게 실망할 일도 적을 테니, 마음의 상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방어적 비관주의자들은 가능한 부정적인(어쩌면 최악의) 결과를 예측한 다음, 이를 피하기 위한 대책을 모색한다. 어쩌면 업무 메일에서 내가 '최소한', '조금이라도'와 같은 낮은 기여의 가능성을 감안해 주십사 요청드리는 것은 부정적인 피드백이나 비판을 피하고자 타인의 기대치를 낮추려는 무의식적 노력의 징후일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재미있는 점은 방어적 비관주의자들은 낙관주의자들과 달리, 불안을 원동력으로 업무 능률을 끌어올린다는 점이다. 방어적 비관주의자들은 리스크 관리의 달인들이다. 언제나 최고의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을 망치는 경우도 별로 없다. 늘 부정적인 결과를 염두에 두며, 이를 방지하고자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관련된 심리학 연구에서는 방어적 비관주의자들에게 긍정적인 기대, 환상을 심어주고 독려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를 환기시켰을 때 과업 수행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보였다.(관련 링크)



위태로울 때 더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게 되더라



    겸손의 표현을 자주 쓰면서 가끔 또 다른 불안을 느낄 때가 있다. 지나친 겸손이 오히려 독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새삼 생각해 보니 이러나저러나 불안 요소가 있기는 매한가지인 듯하다. 겸손해도 문제고, 겸손하지 않아도 문제이니, 이놈의 불안을 어찌하나). 사실 나는 완벽주의 성향도 조금 갖고 있어서,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대충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고백하건대 겉으로는 겸손의 표현을 내비치지만, 정작 속으로는 내심 인정받고 싶다는 바람을 갖는다. 그만큼 성의 있게 고민하고 열심히 준비했으니, 상대방이 좋게 봐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이다.


    다행스럽게 지금껏 내가 같이 업무를 진행했던 많은 분들은 내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주셨다.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무시받는 일은 없었고, 감사하게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늘 메일을 주고받을 때면 방어적 비관주의자인 나는 겸손의 표현을 적는다. 상술했듯 기대치를 낮추고, 부정적 피드백을 피하기 위한 조금 속 보이는 행동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부족할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두며 스스로 자만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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