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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판타지는 왜 재밌을까?

'상태창'이라고 들어봤는가?

    때는 2000년대 후반, 필자가 군대에 있을 때 이야기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놀 게 정말 없었다. TV, 사이버지식정보방(건전한 PC방쯤 된다), 병영문고, 영내 오락실/노래방, PX, 바둑/장기, 헬스 정도가 있었는데 나열하고 보니 많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정말 별 것 없었다. 맨날 하던 게 하던 거라 지겹기 짝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군생활의 지루함을 달래 줄 구원투수가 등장했으니, 그게 바로 게임 판타지 소설이었다.


    게임 판타지 소설이란 가상의 (온라인) 게임을 소재로 하는 소설의 하위 갈래이다. 대충 내용을 보면, 주인공이 현실 같이 리얼한 게임 세상 속에서 스탯을 쌓고 레벨업을 하고, 퍼즐을 풀어 가는 그런 장르다. 군생활 도중 특히 즐겨 읽었던 작품은 <달빛조각사>였는데, 군대에 있어 게임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훌륭한 대리만족이 되어 주었다. 



게임 판타지의 매력은 무엇일까?



1. 상태창

    게임 판타지 = 상태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과 게임을 잇는 가장 대표적인 기능이 바로 상태창이다. 주인공이 상태창! 이라고 외치면 '팟' 하고 눈앞에 화면이 뜨고, 거기에는 주인공의 능력치, 소질, 특기 등이 수치화되어 일목요연하게 제시된다. 공격력 얼마, 방어력 얼마, 지능 얼마, 행운 얼마, 특기 뭐뭐 하는 식으로 명확하게 보여준다.


    게임 판타지에서는 상태창! 만 외치면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나의 객관적인 능력치를 알기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내가 진정으로 잘할 수 있는 건 뭘까?', '어떤 전공이 잘 맞을까?', '이 직업을 가지면 나는 만족할까?' 맨날 물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상담도 받고, 조언도 받고 그래야 한다. 그전에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한다. 나보다 잘난 놈, 못난 놈과 비교해 보며, 서로 수입과 재산, 학위 등을 비교해 보며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 보는 것이다.


2. 레벨 업

    '축하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OO 능력치가 OO만큼 증가했습니다' 게임 판타지에서는 레벨 업이 명확하다. 뭘 해야 레벨 업이 일어나는지, 레벨 업을 위한 필요 경험치가 얼마인지, 레벨 업을 했을 때 정확히 얼마만큼 내 능력이 상승하는지 상태메시지를 통해 빠르고 확실하게 알려준다.


    하지만 현실 속 자신에게 한번 질문해 보자. 여러분의 현생 레벨은 얼마인가? 레벨이 올랐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만약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실력이 느는 것 같지 않아',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열심히 하다 보면 분명 나아질까', '난 얼마만큼 성장한 걸까' 이런 고민이 많은 까닭은, 현실에서의 레벨 업이 그만큼 모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3. 부활

    '사망하였습니다.', 'O초 뒤 OOO에서 부활합니다' 게임 판타지에서는 죽어도 '확실하게' 부활한다. 일정 페널티를 받을지라도 부활하여 이전 시점부터 재시작할 수 있다. 심지어 어떤 혜자로운 게임 판타지에서는 세이브 기능까지 지원한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세이브하고 과감히 내질렀다가,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로드 기능을 통해 다시 돌아올 수 있다.


    현실에서는 어떨까? 당연히 물리적 부활은 불가능하다. 인생의 중요한 도전에서는? 물론 재도전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몇 년이고 같은 회사에 이력서를 낼 수 있고, 전문직 시험이면 계속 응시해도 된다. 사업 실패해도 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게임 판타지에서만큼 부활이 확실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게임 판타지에서는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나서 도전하지만, 현실에서는 실패로 인한 제약, 부담이 크다.



게임처럼 다시 도전할 수 있을까?



    게임 판타지는 현실의 많은 아쉬움을 채워준다. 현실에는 상태창도, 레벨 업도, 부활도 없지만 게임 판타지에서는 '마치 현실에서 그런 것이 가능한 것인 양' 보여준다. 순수한 게임에서 얻은 보상은 게임 내에서의 혜택으로 한정되지만 게임 판타지에서는 게임에서의 성과, 보상이 현실에서의 성과, 보상으로 연결된다. 즉, 게임을 잘 풀어가는 주인공(=나)이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번다.


    가끔 인생도 게임 판타지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첫째, 상태창! 이라고 외치면 내 능력이 한 번에 펼쳐졌으면 좋겠다.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면 그 방면으로 직업을 가지면 된다. 내가 어떤 능력치가 부족한지 알면 자기 계발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으면 된다. 


    둘째, 현실에서도 레벨 업이 확실했으면 좋겠다. 뭘 해야 레벨 업이 되는지 알고 싶다. 내 행위 하나하나가 레벨 업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빠른 피드백을 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 노력에는 피드백이 뒤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늘 고민한다. '이거, 잘하고 있는 거 맞지?', '이게 도움이 될까?'


    셋째, 현실에서도 무한 재시도가 가능했다면, 난 세계 대통령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세계 대통령은 커녕, 당장 뭐 먹을지, 어디로 여행 갈지, 이직을 할지 말지, 만약 잘못 골랐다가 실패할까 봐 겁나서 벌벌 떠는 것이 현실이다.


    차라리 순수한 게임을 즐기고 있을 때는 현실의 고민이 사라지곤 한다. 일단 제쳐두고 게임 속 세상으로 가서 즐기다 빠져나오면 된다. 그런데 게임 판타지에서는 자꾸 '현실'이 언급된다. 현실이 게임 같고, 그래서 현실이 쉬워 보인다. 내 인생도 게임 같았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뭐, 어쩌겠나. 대리만족이라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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