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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삼겹살만큼은 특별하게

행복하게 살기 위한 나만의 실천법

삼겹살의 맛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필자는 삼겹살을 정말 좋아한다. 아직 필자가 뱃속에 있을 당시, 어머니께서 삼겹살을 그렇게 즐겨 드셨다고 했다. 뱃속에서 맛본 그 삼겹살의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아저씨가 된 지금도 그렇게 삼겹살을 찾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삼겹살이 무슨 맛이었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잘 기억이 나질 않는 경우가 많다. 삼겹살로 실컷 배를 채워놓고도, 뭔가 덜 먹은 듯한 헛헛함을 느끼기도 했다. 왜 나는 삼겹살을 실컷 먹고도 만족하지 못했던 걸까?


    사실 삼겹살을 먹는 자리만큼 바쁘고 정신없는 때도 없다. 첫째, 삼겹살은 곁들여 먹어야 할 것이 많다. 밥, 상추, 깻잎, 고추, 마늘, 쌈장 등등 최상의 즐거움을 위해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 손이 바쁘다. 둘째, 삼겹살은 실시간 라이브다. 서로 포개지지 않도록 고기를 잘 배치하는 한편, 적절한 타이밍에 뒤집어주려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기껏 구워놓으면 족족 사라지기 일쑤이기에, 고기가 끊기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새 고기를 불판에 올려야만 한다. 셋째, 삼겹살을 먹는 자리는 대체로 어수선하다. 삼겹살은 혼자보다 여럿이 먹을 때 제맛이다. 자연스럽게 시끌벅적하게 대화를 나누며 고기를 먹게 되고, 그 과정에서 소주 마시랴, 맥주 마시랴, 섞어 마시랴, 금방 취기도 오른다. 


    그래서일까, 삼겹살을 먹는 자리에서는 도무지 삼겹살 그 자체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금요일 저녁, 아내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술 약속을 잡고 친구들과 큰맘 먹고 들른 삼겹살 집이다. 기대하던 삼겹살을 맛볼 생각에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하지만 내가 정작 삼겹살에 집중할 타이밍은 없다. 첫 한 조각의 기쁨도 잠시일 뿐,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정신없이 입 속에 술과 고기를 들이붓고 있다. 어느새 배는 포만감으로 가득하고, 삼겹살의 그 맛을 충분히 음미하기도 전에 어느새 '축제'는 끝나 있을 따름이다.



처음 딱 세 조각에 집중하기로 했다.



    삼겹살을 굽고 드디어 첫 조각을 먹는다. 처음에는 삼겹살의 맛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 쌈장조차 찍지 않는다. 가장 맛있어 보이는 한 조각을 집어 입 속에 넣는다. 대화도 잠시 중단한다. 눈을 감고, 그저 입 속에서 퍼지는 삼겹살의 맛에만 집중한다. 여러 번 충분히 씹으며 삼겹살의 질감을 느끼고, 맛을 충분히 음미한다.


    두 번째 조각. 이번에는 가장 완성된 형태로 먹어본다. 상추에 깻잎을 포갠다. 작게 자른 고추와 마늘, 그리고 쌈장도 얹어준다. 기호에 따라 파채를 넣어도 좋다. 만약 필요하다면 소량의 밥을 넣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정성스럽게 쌈을 감싸고, 입을 크게 벌려 한번에 입 안으로 쌈을 가져간다. 그리고 쌈을 고르게 씹어 삼겹살을 포함한 여러 재료들이 모여 어떤 조화를 만들어 내는지 느껴본다.


    세 번째 조각. 맛의 경험을 공유하는 순간이다. 같이 삼겹살을 먹는 파트너와 오직 삼겹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맛이 어떤지, 어떻게 먹으면 더 맛있을 것 같은지, 어떤 즐거운 기분이 들었는지 서로 한 마디씩 주고받으며 황홀감을 서로 나누고, 서로 받쳐준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한눈을 팔지 않기로 했다.



    삼겹살을 음미한 만족감 때문이었는지, 지난날에 대한 반성이 몰려왔다. 치킨을 먹는 소중한 날, 그 맛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만 휴대폰을 들어 유튜브에 신경을 쏟고 말았던 것이다. 내 입 안에서는 '관행적인 즐거움'만 스치듯 남았을 뿐, 치킨의 감각은 남아있지 않았다. 단지 맛있는 것을 먹었다는 지식만 남았을 뿐, 내가 그것을 어떻게 먹었는지, 행복을 경험해야 했을 그 과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먹고 싶던 치킨을 다 먹었음에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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