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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음'을 심리학적으로 이해하기

수줍음 = 내향성인가?

  고백하자면 필자는 수줍음이 좀 있는 편이다. 어른이 된 지금은 조금 나아졌을지 몰라도, 어렸을 때 수줍음이 정말 심한 편이었다. 기억하는 가장 인상적인 사건은 아직 유치원생이던 때의 일이다. 부모님과 차를 타고 큰 고모 댁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큰 고모가 사시는 아파트에 도착했고 아버지께서 주차를 마치시던 참이었다. 그런데 웬걸, 큰 고모께서 마중을 위해 주차장까지 내려와 계셨던 게 아닌가. 


  당연히 공손히 인사를 드렸어야 했건만, 그때 차의 뒷 좌석에 앉아있던 필자는 큰 고모를 보자마자 좌석 밑으로 몸을 구겨 넣고 숨어버리고 말았다. 큰 고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전혀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낯설고 부끄럽고, 화끈거리고, 잘 못 쳐다보겠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특별히 켕길 일도 없었는데 말이다.



어머니: 어머, 얘 수줍어하는 거 봐. 어서 나와서 인사드려야지!
큰 고모: OO이가 수줍음이 정말 많은가 보구나?



  그 외에도 필자는 적잖이 수줍음을 경험했다. 특히 명절이 고비였다. 명절 때만 되면 온갖 친척들을 다 만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어찌나 수줍은 기분이 들던지. 엄마 품에 숨거나, 애써 수줍음을 숨기려고 들고 있던 휴대용 게임기에나 더 얼굴을 파묻곤 했다. 친척 어른들이나 사촌 형 누나들이 반갑게 인사하는데, 좀 더 친근하게 다가설 수 없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때의 내 모습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그런 생각만으로 없앨 수 없을 만큼 수줍음이란 필자에게 일종의 불가항력적인 어떤 고난이었지만.






  수줍음이란 게 대체 뭘까? 일단 국어사전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다.


수줍다: 숫기가 없어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어렵거나 부끄럽다.


  숫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그럼 이번에는 숫기가 뭘까 검색해 봤다.


숫기: 활발하여 부끄러워하지 않는 기운


  뭔가 애매하다. 현재까지의 검색 결과를 정리하면 활발하지 않으며 부끄러워하여 타인 앞에서 서툰 모습을 보이는 것을 가리켜 수줍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좀 더 근원적인 설명을 찾고자 몇 가지 검색을 더 해봤다.


부끄럽다: 스스러움을 느끼어 매우 수줍다.


  스스러움을 느끼기 때문에 수줍다고 한다. 그렇다면 스스러움은 또 뭘까?


스스럽다: 수줍고 부끄러운 느낌이 있다.


  왠지 설명이 단어들 사이에서 맴돌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부끄럽다 → 스스럽다 → 수줍다 → 숫기 → 부끄럽다 → 스스럽다 → ... 이래서야 끝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국어사전 검색을 그만두기로 했다.



결국, '수줍음'이 뭐라는 거지?



  이제 심리학자들이 수줍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볼 차례다. 수줍음은 흔히 shyness로 번역되고 있으며, 대체로 1) 다른 사람의 존재로 인해 불편함을 느낌, 2) 수줍음이라는 감정으로 인하여 행동이 제약됨 이라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수줍음이 의미하는 바는 생각보다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설명이다. 단순히 부끄러움, 내성적인 면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지만 때로 수줍음은 '죄책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상대방에게 잘못을 저질렀다거나, 왠지 체면이 서지 않을 때는 평소 거리낌 없던 사람조차 수줍음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수줍음은 '겸손'의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만약 여러분에게 누군가 과분할 정도로 크게 칭찬을 했다고 하자.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설마 이렇게 반응할 생각인가?



하하하하! 맞습니다. 저는 칭찬받을 만큼 잘한 것 같습니다.
제가 봐도 저는 정말 훌륭하네요. 잘 아시는군요.

  


  아마 속으로는 진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정말 잘한 일이면, 뭐 어쩌겠나. 자부심과 뿌듯함이 차오르면 충분히 자기 '뽕'에 취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자화자찬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아유, 아닙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와 같이 말하면서 '수줍게' 그저 배시시 웃고 말 것이다. 수줍음이라는 태도가 '겸손'의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한편, 그밖에 수줍음은 때로 이성적 '매력'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간혹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런 대사가 등장하지 않던가. '그(녀)는 말없이 그저 수줍게 웃었다.' '수줍어하는 모습이 왠지 선하고 예뻐 보였다.' 정리하자면 수줍음 = 부끄러움으로 단순히 정리하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쓰임새가 있다. 수줍음은 기본적으로 부끄러움이지만, 때로는 '죄책감'이고, '겸손'이고, '매력'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수줍음을 성격과 연관 지어 설명해 보자. 많은 사람들이 수줍음을 가리켜 내향성introvert의 동의어로 생각한다. 물론 내향적인 사람들이 외향적인 사람들에 비해 더 수줍음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수줍음과 내향성은 서로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수줍음과 내향성의 결정적인 차이는 뭘까? 쉽게 표현하자면 굳이 숨느냐, 숨지 않느냐의 차이로 보면 될 것이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들은 숨는다. 수줍음을 느끼는 어린아이는 낯선 사람이 다가왔을 때 엄마, 혹은 아빠의 뒤로 숨는다. 큰 고모를 보고 수줍음을 느꼈던 필자는 차의 좌석 밑으로 숨었다. 명절 때 친척들을 만나면 인사만 간신히 건넸을 뿐 책이나 게임 속으로 숨어버렸다.


  하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이 반드시 숨는 것은 아니다. 내향적인 사람들이 혼자 있는 시간을 선호하여 가급적 교류에 잘 끼지 않으려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건 피한 것이거나 의도적으로 거절한 것이지, '숨었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내향적인 사람이라도 막상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 수줍어하지 않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다. 단지 말수가 좀 적거나, 어느새 사라지고 없을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 


  실제로 심리학자들은 내향적인 사람들보다 수줍음을 겪는 사람들이 낯선 사람에 대한 공포, 사회적 상황에서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더 강하게 경험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점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수줍음이 높은 사람들이 외향성이 낮을 뿐만 아니라 성격 5요인(big 5) 가운데 신경성neuroticism(혹은 반대로 하여 정서안정성이라고도 함)이 높다고 설명하고 있다.


수줍은 사람들 = 굳이 숨는다.
내향적인 사람들 = 그냥 피한다.






  사회적 괴로움, 낯선 이에 대한 수줍은 감정, 자기주장을 하기 어려워함, 사람들을 피함, 특히 높은 사람을 만났을 때 더 어려워함 등등 '수줍음'만의 고유 특성을 밝혀내기 위해 심리학자들은 지금까지 다양한 주장을 펼쳐 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줍음이 결국 무엇인가에 대한 확실한 정의는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다만 필자가 수줍음에 대해 회상하고, 공부하면서 내린 나름의 정의는 있다. 부끄럽기도 하고, 겸연쩍기도 하고,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예의인 것 같기도 하고, 불안한 것 같기도 한 어떤, 그런 기분. 뭔가 속 시원하지 않은 정의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수줍음만의 '개성'인 것 같기도 하다.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애매한, 하지만 분명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수줍음이다.



※ 참고 논문: 이서희, 안정광 (2023). 한국판 수줍음 척도(RCBS) 타당화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35(2), 471-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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