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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하는 이유

'최소 경험 법칙'을 기억하세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모르겠어요.



  '진로 탐색'은 꾸준히 잘 팔리는 주제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전국의 학교에서는 마치 통과의례인 것처럼 Holland 적성검사를 학생들에게 실시하고 있다(참고로 Holland 검사는 현실형R, 탐구형I, 예술형A, 진취형E, 봉사형S, 관습형C 여섯 가지 대표 코드를 기반으로 개인의 적성을 탐색한다). 성인 교육 시장에서도 취업, 이직, 창업과 맞물려 늘 '진로 탐색'이 화두다. 가령 다음과 같은 제목들, 아마 익숙하실 것이다.



가슴 뛰는 나만의 일 찾기
OOO에 나만큼 한번 미쳐 봐
여러분에게 딱 맞는 창업 아이템 추천
평생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 찾기
내 강점 발견하기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은 뭘까?
좋아하는 일 하면서 월천 벌기
나는 내 취미 활동으로 1년에 10억을 번다 등등
(...)



  매우 높은 확률로, 여러분들도 진로/적성에 대해 고민해 보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과연 뭘까?', '평생 해도 질리지 않을 일은 없을까?', '내 천직은 과연 존재하는 걸까?', '내 진정한 재능은 어디에 있을까?' 대략 이런 질문들이다. 이쯤에서 여러분에게 질문을 한 가지 드리고 싶다. 혹시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으셨는지 말이다.



아직 모르겠네요. 너무 어려워요.



  여러분의 고민을 주의 깊게 듣고 있던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은 아마 여러분의 처지나 상황, 조건 등에 대해 공감하면서 몇 가지 선택할 수 있는 진로에 대해 성심성의껏 조언을 해주었을 것이다. 어떤 전공이 어떻다더라, 어디 회사에 지원해 볼 생각은 없냐거나, 어떤 업종으로 창업을 해보라거나, 이 자격증을 한번 알아보는 것 어떠냐 등등 진로에 대한 여러 가지 제안들을 받았을 터이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혹시 주변 지인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실행에 옮긴 적은 얼마나 있는가? 혹시 이런 식으로 손사래 친 적은 없는가?



음, 별로일 것 같은데
나랑 안 맞아 보여
글쎄, 그게 잘 될까?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내가 좋아하는 일이 맞나?



  사실 많은 사람들이 위와 같이 반응하고는,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 버리고 만다. '왠지 느낌이 오지 않아', '왠지 끌리지가 않아', '별로일 것 같아' 그러므로 내가 가야 할 길은 아닐 거야, 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원래의 고민으로 돌아온다. '아~ 내가 좋아하는 일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답답하다, 답답해.'



'필링'만으로 그 일을 내쳐도 되는 걸까? 왠지 안 맞을 것 같다는 느낌만으로?



  속단하지 말 지어다. 여러분은 그 길을 가본 적이 없다. 그저 지레짐작했을 뿐, 정말 여러분과 잘 맞을지 경험해 본 것은 아니다. 잠시 심리학 이야기로 넘어오자. 사람들이 하도 진로/적성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심리학 분야에서도 진로/적성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특히 남들이 시키지 않아도 열정적으로 일에 몰두하며 재미와 보람과 유의미한 성취를 느끼는 사람들의 특성이 무엇인지 밝혀내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다. 그 유명한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역시 그러한 시도 끝에 이뤄진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결정성 이론에서는 인간의 동기motivation를 외적인 것과external, 내적인 것internal으로 구분한다. 간단히 말해 돈이나 재물, 주변의 인정, 평판 등으로 움직이는 상태를 외적 동기, 본연의 흥미와 즐거움, 호기심 등으로 말미암아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상태를 내적 동기라고 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외적 동기보다는 내적 동기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 더 오래 특정 과업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고, 그 경험을 재밌어하며, 실제 성과 또한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내적 동기는 어떻게 얻어지는가?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자기결정성 이론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내적 동기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조건이 있다고 이야기한다(그렇다. 조건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이 점 기억하면서 다음 글을 읽어나가자). 크게 세 가지 조건이 자주 언급되는데 그것은 각각 유능감, 관계성, 그리고 자율성이다. 쉽게 풀어내면 내가 만족할 만큼 능력 발휘를 할 수 있으며, 과업을 통해 칭찬이든, 인정이든, 유대감이든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내가 스스로 알아서 목표와 방법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어야지만 비로소 궁극의 동기, '내적 동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칙센트미하이의 몰입flow 개념을 보자. 시간개념, 공간개념을 잊고 주어진 일에만 푹 빠져서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상태를 가리켜 몰입이라고 하는데(이 정의야 말로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찾고 있는 '내가 정말 미쳐서 할 수 있는 일'에 딱 부합하는 것 같다),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몰입에 도달하기 위해 갖춰야 할 두 가지 조건이 있다(그렇다. 여기서도 조건을 언급하고 있다). 바로 난이도와 자신의 실력이다. 칙센트미하이는 과업의 난이도와 자신의 실력이 적당히 엇비슷하게 매칭되어야 몰입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자신의 실력보다 과업의 난이도가 아주 살짝 높은 정도일 때 적당히 도전의식이 생기면서 몰입이 쉽게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난이도와 능력 사이의 줄다리기가 핵심이다(그림 출처: 내 책)



  마지막으로 사회심리학이다. 이번에는 이론은 아니고, 사회심리학에서 가정하는 매우 중요한 전제를 한 가지 살펴보려고 한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상황의 힘'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존재라고 가정한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스탠리 밀그램 교수의 복종 실험 장면에 노출되면 무고한 타인에게 최고 수준까지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고, 1+1=2와 같이 뻔한 질문이라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1+1='창문'이라고 하면, 나 역시 '창문'이라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사회심리학의 중요한 가정이다.


  이 가정은 진로/적성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도 당연히 적용될 수 있다. 어떤 일을 좋아하고, 몰두하도록 만드는 데에는 개인의 소질, 흥미 못지않게 상황적 힘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가령 예를 들면 '접근성'과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의 원리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자주 접할 수 있는 활동일수록 의외의 매력을 발견하기도 쉽고, 자주 보다 정情들기도 쉽다. 왜 국민 대부분의 취미가 유튜브, 넷플릭스일까? 유튜버는 또 왜 그렇게 많을까? 답은 간단하다. 접근성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잘할 수 있는 일에 관한 심리학자들의 답변을 살펴봤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일에 푹 빠지게 되기 위해서는 모종의 조건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자기 결정성 이론에서는 유능감, 관계성, 자율성을 이야기했고, 몰입 이론에서는 난이도와 자기 수준을 언급했다. 그리고 사회심리학에서는 상황의 힘이 뒷받침되어야 꾸준히 어떤 일에 빠져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와 같은 반응들이, 여러분의 진로 탐색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음, 별로일 것 같은데
나랑 안 맞아 보여
글쎄, 그게 잘 될까?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내가 좋아하는 일이 맞나?



  그 어떤 활동이든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는다면 내적 동기나, 몰입의 조건에 부합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특히 내가 좋아할 만한 어떤 조건을 갖추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최소 경험 법칙', 즉 최소한도의 노력-보상의 과정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일단 작게라도 시도해 보고, 어떤 반응이 오는지를 보고,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감정을 경험하는지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실제로 경험하면서 감당할 만한지, 아닌지를 따져보고, 물질적/정서적 보상이 만족스러운지를 몸소 느껴야만 한다. 이러한 검증 과정을 무시한 채, 그저 '느낌이 안 온다', '왠지 끌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분야를 함부로 내쳐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느낌만 따지고 있다가, 그동안 어쩌면 여러분과 정말로 찰떡궁합이었을지 모를 수많은 가능성들이 허무하게 사라져 갔을지도 모른다.



'최소 경험 법칙', 

즉 최소한의 노력 투입 - 반응 보기 - 보상 음미 라는 조건을 기억하자.


  필자는 '막상'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여러분도 과거의 경험을 떠올려 보자. 막상 하다 보면 재미있고, 잘 되는 것 같고, 의외로 몰두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 않던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예상하는 것과 경험하는 것 사이에는 언제나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큰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무엇이든 막상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최소한의 작은 성취를 이룰 만큼은 도전해 봐야 한다. 이른바 '최소 경험 법칙'을 기억하자. 최소의 경험 이후, 다시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도 괜찮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혹시 있었을지 모를, 여러분의 소중한 천직을 함부로 날려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곤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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