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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릿GRIT의 숨겨진 속사정들

그릿이란 게 도대체 뭘까요?

심리학이나 자기 계발에 관심이 있다면 그릿GRIT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릿이란 무엇일까? 정말 초간단하게 설명하면 '열정과 흥미를 곁들인 끈기' 정도일 것이다. 그릿을 주장한 Duckworth 교수에 따르면, 재능이 없거나 지극히 평범함에도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릿이라는 특성이었다고 한다.



그릿은 머리 탓을 하지 않았다. 엉덩이 탓을 했지.



왜 그릿이 난리였을까? 그릿 강연이 유명세를 타고, 그릿 책이 불티나게 팔렸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상당 부분은 '노력 신화'의 감미로운 포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노력 신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 노력만 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등등 비록 조건이 붙지만 '나도 노력한다면', '나도 끈기 있게 버틴다면' 뭐든 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것이 그릿 담론을 통해 표출된 것이었으리라.



축구 천재, 수학 천재, 그림 신동 이런 건 못하겠는데, 왠지 '노력의 천재'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






잠시 심리학 이야기를 해보자. 여러분은 심리학 이론이나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가? 인지부조화, 애착 이론, 귀인 이론, 정신분석학, 성격 5요인, 자아존중감, 공포 관리 이론 등등 심리학을 좋아한다면 들어봤을 유명한 이론이나 개념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사실 개념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개념을 제안하는 것은 의외로 별로 어렵지 않다. 단지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관찰력, 그리고 내가 발견한 현상에 과감히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자신감이면 된다. 예를 들어볼까? 필자의 전 여자친구(이자 현 아내)는 이따금씩 신경이 곤두설 때가 있다. 이럴 때 잘못 한 마디 했다가는 바로 따가운 시선을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때, 신기하게도 초콜릿이나 사탕을 먹이면(?) 순식간에 감정이 누그러드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이 현상을 가리켜 '사탕-기분전환 효과candy-change effect' 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사탕-기분전환 효과



뭔가 그럴듯한가? 여러분도 하면 된다. 만약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다면 여러분의 본명을 따도 된다. 사탕-기분전환 효과 역시 필자의 이름대로 '용회 효과yonghoe effect' 라고 해도 됐을 것이다. 실제로 현재 심리학계에서 통용되는 다양한 '~효과' 들은 이런 식으로 심리학자가 관찰력을 바탕으로 알아낸 현상들에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가령 아래와 같은 식이다.



도도새 효과

로빈후드 효과

로젠탈 효과

링겔만 효과

립스틱 효과

바넘 효과

언더독 효과

스크루지 효과

에펠탑 효과



에이, 그렇게 해서 될 거였으면 나도 심리학자나 하지



예상했던 반응이다. 하지만 정말로, 개념을 만들어 활용하는 건 여러분의 자유다. 다만 여러분이 만든 개념을 다른 심리학자들에게 소개하고 그것을 학술적인 의미를 갖도록 인정받고자 할 때, 그때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존재한다. 이는 변별타당도의 문제, 즉 새로운 개념이 기존의 다른 개념들과 의미상으로나 조작적 정의 상으로나 실제로 구분이 되는, 고유한 지분을 갖고 있느냐 하는 부분이다.


이미 심리학계에 통용되고 있는 개념들은 셀 수 없이 많아서 도통 끼어들 자리가 없다. 새로운 개념을 학문의 영역에 집어넣고 싶으면 이 개념이 다른 개념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다시 돌아가자. 그릿GRIT 역시 예외일 순 없다. 그릿과 비슷해 보이는 기존 개념들, 이를테면 성실성이라든지, 자기 통제라든지, 자기 효능감이라든지, 성장마인드셋이라든지, 자기 결정성 이론이라든지, 그런 개념들 틈바구니에 어떻게든 낑겨야 한다. 그리고 이들 개념과 그릿이 왜 다른지, 그릿만의 차별화된 특징을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심리학 공부하다 보면 자주 느낄 것이다. 이건 또 뭔 용어야? 비슷한 게 뭐가 이리 많아



바로 그런 이유로 그릿은 수많은 심리학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지속적으로 끈기 있게 행동하는 것? '끈기'라는 멀쩡한 단어를 놔두고 굳이 '그릿'이라는 말을 추가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성실성'과 비슷해 보이는데 '그릿'은 뭐가 다른 건가? '통제력'이라는 개념을 통해서는 그릿을 설명할 수 없는 건가? 불확실성 인내 개념과 다른 점은 뭔가? 그냥 인기 좀 얻어보자고 내놓은 마케팅 단어는 아닌가?



그래서 그릿만의 특징은 뭘까?

아직 논란이 거세지만 그래도 심리학계에는 그릿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들이 가장 먼저 착수하기 시작한 과업 역시 '그릿만의 특징'을 주변 심리학자들에게 설득하는 일이었다. 그릿이란 과연 어떤 독특한 지분을 갖고 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려 한다.


1) 그릿은 '장기적인 목표'에 대한 것이다.

그릿과 가장 자주 비교되는 것이 성격 5요인 중 하나인 성실성conscientiousness 이다. 성격 5요인 검사를 제안한 코스타와 맥크리의 연구에 따르면 성실성은 유능감, 질서(정연성), 책임감, 성취지향, 절제, 숙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 성실성이 높은 사람도 힘든 것을 잘 참는다(절제, 숙고). 그리고 목표지향적이고(성취지향), 목표 달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질서, 책임감). 그릿이 높은 사람들이 그럴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릿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그릿은 '장기적인 목표' 추구에 특화된 개념이다. 즉, 성실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장기적인 목표에 강하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릿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장기 목표를 설정하고 길게 꾸준히 노력하는 데 능한 사람들이다.


또 한 가지 차이. 성실성이 높은 사람들과 달리 그릿이 높은 사람들은 대체로 한 가지 목표에 '꽂히는' 특성이 있다. 성실성이 높은 사람들이 두루두루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일들에 평균적으로 성실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릿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꽂힌 원대한 목표를 향해 끈기 있게 질주할 줄 아는 이들이다.


2) 그릿은 '식지 않는 열정', '적절한 자기 관리'를 동반한다.

그릿과 자주 비교되는 또 하나의 개념이 자기 통제이다. 그릿이 끈기를 잘 견디고 목표를 향해 견뎌 나아가는 힘이라면, 그게 자기 통제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는 다른 심리학자들의 반론이다. 이에 대해 그릿 연구자들은 통제의 강도/지속적, 맥락을 비교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통제능력은 순간적인 유혹이나 고통에 견디는 힘이다. 하지만 그릿이 높은 사람들은 순간적인 통제력이 강하다기보다는, 장기간에 걸쳐 적정 수준으로 열정을 유지하며 목표가 망가지지 않도록 개인적인 욕구나 환경 변화를 적절히 조절하는 '관리의 대가'들이다.






사실 그릿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필자 역시 의구심이 가득했었다. 그릿이라는 게 고유한 개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그릿만의 고유한 특성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하지만 그릿의 잠재력을 믿는 일부 학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릿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이번에 칼럼을 작성하며 이런저런 그릿에 관한 학술자료를 찾아보며, 필자가 개인적으로 갖게 된 생각은 이렇다.



그릿 → 먼 미래에 대한 예언



그릿은 상당히 먼 미래를 내다보는 개념이다. 당장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그런 습성만으로 10년 뒤, 20년 뒤 성공을 쟁취할 수 있을까? 성공은 대단히 가변적인 개념이고 또 장기적인 목표에는 이리저리 수많은 변수가 끼어들 텐데. 성실성과 통제력만 가지고 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 그릿은 바로 이럴 때를 위해 등장한 개념이다(이렇게 생각해 보니 마시멜로 효과도 떠오른다. 그럼 그릿은 마시멜로 효과, 즉 지연된 만족감 개념과 또 뭐가, 어떻게 다를까? 이래서 심리학 공부라는 건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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