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가 떨리고 긴장되는 심리학적 이유
필자는 강연활동을 주업으로 삼고 있다. 전국 여기저기 다니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심리학을 알리는 일을 한다. 대학원을 마치고 본격적인 강연활동에 나선 지 약 7~8년 정도 된 것 같다. 잠시 연구원으로 변신하여 연구 활동에만 더 몰두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강연에 나가며 사람들을 만나 왔다. 일일이 강연 횟수를 세어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적어도 수백 번은 무대에 섰던 것 같다.
아무리 하고 또 해도, 강연은 늘 떨리게 마련이다.
강연을 많이 했어도 이 '떨림'만은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왜 강연은 떨리는 걸까?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해봤다. 첫째, 강연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다. 그것도 내향적인 필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때문에 '강연'이라는 말을 뺐어도 여전히 떨렸을 것이다.
둘째, 기브 앤 테이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무료 봉사 강의는 손에 꼽으며, 대개 나는 강연의 대가로 강의료를 받는다. 그러니 떨릴 수밖에 없다. 돈을 받았으니, 그 액수에 걸맞은 활약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자칭 프로 강연자로서 고객으로부터 '돈이 아깝다'는 평을 들을 수는 없다.
셋째, 무슨 반응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강연은 늘 예측할 수가 없다. 같은 주제를 놓고 강의해도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일단 나 자신부터도 지난주의 나와 이번 주의 내가 다르다. 그 사이 새로운 경험이 더해지고 통찰이 만들어졌기에 동일한 주제의 강연이더라도 사례라든지, 일상 경험이라든지 등등 구체적인 맥락은 달라진다. 그리고 강연을 마치고 나면 정말 예기치 못했던 의견, 질문을 받는 경우도 많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의 생각은 정말 다양하다. 늘 변화하며 예측할 수 없는 강연의 속성은 늘 필자를 떨리게 만든다.
실제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발표를 앞두고, 혹은 무대 위에서 긴장하며 불안감을 느낀다. 정말 아무렇게나 대충 해도 되는 것이었다면 모르겠는데, 대부분의 발표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직장인이라면 발표를 듣는 상사나 클라이언트가 있고, 필자와 같이 출강 강사라면 발표를 듣는, 날카롭게 눈을 빛내고 있는 청중들이 있다. 대학(원)생이라면 여러분의 연구 주제를 가차 없이 비판할 교수님이 있다. 그렇게 우리는 고정관념을 암묵적으로 학습하게 된다.
잠시 눈을 감고 여러분의 발표 인생을 돌아보자. 가벼운 발표라는 것이 있었는가? 쉬웠던 발표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했는가? 아마 쉽게 떠올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랬다. 여러분이 경험해 온 발표는 늘 어렵고 부담스러운 자리였을 것이다. 수많은 학생들이 보는 와중에 손을 들고 답해야 했던 경험, 앞에 나와서 칠판에 적힌 문제를 풀어야 했던 경험, 학급회의 진행/참여해야 했던 경험, 면접을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했던 경험, 조모임을 하고 조별 발표를 해야 했던 경험 등등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일생의 경험들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발표'라는 단어에 부담을 갖게 만든 것이다. 여러분이 발표를 앞두고 손이 떨리고, 침이 바싹 마르고, 잘 될까 내내 걱정하는 모습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여러분은 '즐기는 발표'를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여러분이 발표에서 조금이라도 덜 긴장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발표 = 중요한 자리'라는 고정관념이 내 안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차피 떨린다. 나만 떨리는 것 아니다. 남들도 다 떤다. 앞으로도 떨 것이다.'라는 점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발표에서 덜 긴장하기 위한 효과적인 팁을 한 가지 소개할까 한다. 바로 '자기 공개self-disclosure 기법'이라는 것인데,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발표가 시작되면 바로 PPT 화면으로 눈길을 돌리지 말라. 그전에 여러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대중들을 쓱 훑어보라. 그리고 목소리도 좀 떨고, 몸도 좀 떨어라. 긴장한 티를 내 보여라. 그리고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떨린다. 긴장된다.
오랜만에 한다.
밤새 열심히 준비했다.
부족해도 너그럽게 봐달라. 열심히 하겠다.
잘해보겠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와주신 것으로 안다, 아깝지 않도록 성실히 해보겠다.
부족한 부분은 질의응답에서 만회하겠다.
괜히 센 척할 필요 없다. 여러분이 애써 긴장한 것, 걱정하는 것 감추려고 애쓰지만 청중의 눈으로는 억지로 연기하는 것 다 보인다. 얼굴에 땀이 맺히는 것,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 시선이 정돈되지 않은 것, 괜히 헛기침 더 하는 것 다 안다. 그러니 억지로 숨길 필요 없다. 차라리 그냥 여러분의 현재 마음 상태를 솔직하게 오픈하는 것이 훨씬 낫다.
여러분의 상황을 스스로 공개self-disclosure 하면 어떤 점에서 이로울까? 바로 '인간적인 모습'의 어필이다. 긴장을 고백하는 순간은 상사 대 부하 관계도, 교수 대 학생 관계도, 영업자 대 고객님의 관계도 아니다. 여러분이 '인간적 약점'을 내 보이는 순간, 청중과 여러분의 관계는 순간적으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 탈바꿈되는 마법이 일어난다. 바로 이 순간에는 평가의 냉정함보다는 인간적인 연민, 공감에 관한 반응이 더 우세하게 나타난다. 심리학자들은 이걸 가리켜 보편적 인간성common humanity라고 한다. 그리고 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편적 인간성 상태에 놓인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한다.
고통, 불행, 긴장, 불안 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불가피한 경험이다.
인간은 애초에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것은 당신이나 나나 마찬가지다.
나라고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 앞에 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여러분의 상황을 오픈 → 보편적 인간성 상태로 유도하는 과정을 통해 여러분은 청중의 암묵적인 지지와 이해, 공감, 연민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운이 좋다면 힘내라고, 잘해보라는 의미에서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내주기도 할 것이다. 시그널을 받은 여러분은 이해받는다는 기분을 느끼며 1) 자신감 향상을 느끼고, 2)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까지 얻을 수 있다.
약해 보이면 어떻게 하냐고? 얕잡아 보인다고?
괜히 긴장되고 떨리는 모습을 보여줘서 '저 발표자 별 볼일 없군' 이런 인상을 심어주는 것 아닐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런 생각이 강한 사람일수록 소위 '센 척'을 많이 한다. 긴장해도 아닌 척, 떨려도 아닌 척, 기억이 안나도 능숙한 척 연기하려고 애를 많이 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실제 몸의 반응과 다른 모습을 연기할수록, 우리의 행동을 부자연스러운 방향으로 엇나가고, 결과적으로 예상치 못한 실수를 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발상을 바꿔보자. 사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공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약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강한 것이다. 진정한 강자는 자신의 여러 모습들을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낼 줄 안다. 왜? 그게 솔직한 자기의 모습이니까. 그런다고 내가 못난 건 아니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설령 비판을 받더라도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니까. 연습해도 떨린 건 떨린 거지, 뭘 어떻게 하겠는가. 너희라고 안 떨릴 것도 아니면서 왜 나한테만 그러나.
지금까지 발표에서의 긴장에 대해 소개하고, 두 가지를 언급했다. 먼저 생애 경험을 통해 '발표 = 중요한 자리'라는 고정관념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 소개했다. 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것의 존재를 빨리 인정하는 것뿐이다. 다음으로, 떨림을 완화시키는 기술로서 '자기 공개 기법'을 설명했다. 자기 공개 기법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 형성을 유도, 여러분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지지, 응원, 공감을 이끌어내는 매우 효과적인 기술이다.
여러분의 생각보다 청중은 더 착하다. 발표 못하는 사람들은 당신의 처지에 공감할 것이다. 발표 잘하는 사람들은 예전에 자신이 처음 발표하던 시절, 못했을 때를 생각하며 공감할 것이다. 만약 자기 공개를 해버리고 나면, 의외로 여러분을 지지하고 믿어주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해를 구한 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여러분이 준비한 것을 펼치자. 분명 좋게 봐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