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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면

앉아서 어떻게든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왜 첫 줄이 안 써질까?



오늘도 같은 고민을 들고 왔다. 이번에는 앞선 글에서 완벽주의, 비합리적 신념, 자기 교정 등의 '개인적' 이유가 글쓰기를 미루고,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첫 줄이 안 써지는 이유에 대해 조금 다른 관점에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글쓰기 활동' 자체가 '글쓰기'를 방해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글쓰기가 글쓰기를 방해한다니. 말장난하는 거냐고 화내시기 전에 먼저 이야기를 들어달라. 정말이다. 인지심리학적으로 볼 때, 여러분의 자유로운 글쓰기 활동을 방해하는 원인은 다름 아닌 여러분이 글쓰기라고 명명하는 활동 그 자체다.


이제부터 여러분의 행동 스크립트를 되짚어 보려 한다. 여러분은 어떤 절차를 거쳐 글을 쓰고 있는가? 글쓰기를 위해 따로 준비하는 것들이 있는가? 십중팔구 글쓰기의 시작점은 종이를 펴던지, 노트북을 열고 워드프로세서를 열든지, 브런치/블로그의 '새 글 쓰기'를 누르는 시점일 것이다.



여백의 압박. 이걸 보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절대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여러분의 의무감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자, 여러분은 브런치 글을 쓰기 위해 과감하게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글쓰기 버튼을 눌렀을 때 가장 먼저 뭐가 보이는가? 필자는 제목 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제목을 입력하세요', '소제목을 입력하세요' 라니, 명령을 받으니까 왠지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은 의무감, 묘한 압박감이 들기 시작한다.


오른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이콘들도 무섭다. 이걸로 해볼래? 그림 넣어볼래? 동영상은 어때? 여기서 문단 나눌 거야? 왠지 저 다양한 기능들을 써서 글을 '잘' 꾸며야 할 것 같다는, 가독성을 높여야 할 것 같다는 2차 압박감이 생겨 난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사실 시선을 구석으로 돌리며 외면하려 했건만 그러기에는 너무 광활해서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새햐얀 여백이 우리 눈앞에 '따악' 펼쳐진다. 여백의 압박. 이걸 보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해석할 때, 절대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필자는, 마치 여백이 말을 거는 듯한 기분마저 느꼈다.



자, 이제 부지런하게 채워야겠지~?
적당히 써서는 내가 채워지지가 않겠지~?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우리는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여백', 정확히는 '여백이 주는 심리학적 부담감'을 간과하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듯 워드프로세서를 켜고, 새 글쓰기 버튼을 눌러대지만 그 이후 찾아오는 저 여백의 압박에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여백의 압박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 글쓰기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여백의 압박을 피해야 하는 중요한 설명들을 제공해주고 있다. 다음의 설명을 참고해 보자.



① 정보 처리의 부담(information processing overload): 비어 있는 큰 여백은 역설적으로 '비어 있다'는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 인지 처리의 부담 및 과부하가 발생. 굳이 비유하자면 글쓰기 계의 화이트아웃 whiteout 현상이랄까.

② 적절한 프레임의 부재(lack of appropriate frame): 비어 있는 여백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구조화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나 프레임이 없음을 의미. 이는 작업의 방향성을 잃게 하며 불안과 부담을 가중시킴.

③ 즉각적 목표 달성의 부재(lack of immediate goal attainment): 큰 공간을 한 번에 채우는 것은 어렵고 오래 걸리는 과정임. 즉각적 보상이나 긍정적인 피드백이 결여되어 있으며 부담감 증가로 이어짐



하… 언제 다 쓰지, 뭐라고 채우지


이런 이유로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여백을 마주해야 하건만, 바로 그 여백 때문에 글을 써 보겠다는 의욕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글쓰기 활동'이 '글쓰기'를 방해하는 상황이다.



여백의 압박을 피하자!


막힘없이 글을 쓰고 싶은가? 목표한 분량의 글을 쓰고 싶은가? 그렇다면 '글쓰기 활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앞서 보았듯 여백의 압박이 여러분을 주눅 들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글쓰기'를 위해 뭐를 하란 말인가? 필자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글쓰기 활동'으로 '글쓰기' (X)

'메모하기'로 '글쓰기' (O)

'설명하기'로 '글쓰기' (O)



1) '메모하기'로 '글쓰기'

일명 메모지법이라고 불리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시전 하기 위해서는 작은 크기의 떡메모, 혹은 휴대전화-손가락으로도 금세 화면을 다 채울 수 있게 만드는 메모 애플리케이션이 필요하다. 메모지가 아이디어만 간단히 스케치하듯 메모하는 공간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자. 메모지는 여백의 압박을 줄여주면서 여러분의 글쓰기 욕구를 촉진하는 훌륭한 생산 도구가 될 수 있다.



필자는 네이버 메모에다가 바로 글을 쓴 뒤, 이걸 브런치/블로그로 옮겨 온다.



일단 메모지를 통해 빠르게 하고 싶은 말, 써야 할 말들을 토해낸 뒤에, 여백의 압박 없이 훌륭하게 빈칸을 다 채웠다는 '뿌듯함'을 느낀 다음에 마치 식물 분갈이 하듯, 조심스럽게 메모에 적은 글 뭉치를 가져와서 워드프로세서나 브런치/블로그와 같은 큰 여백으로 옮겨 오면 된다.



2) '설명하기'로 '글쓰기'

이전에 쓴 글과 관련이 있는 주제다(링크). 같은 내용이더라도 우리는 친구에게 말로 설명하는 것을, 글로 남기는 것보다 훨씬 더 쉽게 생각한다. 글을 쓸 때는 배열의 문제 같은 것을 신경 쓰느라 진도가 잘 나가지 않지만 말을 할 때는 알아서 자가 교정을 하며 해야 할 말을 이어 간다.


바로 그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게 잘 안된다면 차라리 열심히 말로 설명이라도 해라. 여러분의 목소리를 녹음한 뒤에 그걸 직접 받아 적든 STT 기술을 활용하든 글로 옮기면 된다. 혹은 글로 쓰더라도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것을 전제로 한 듯, '대화문', '연설문', '발표스크립트' 등의 형식으로 적어보라!


참고로 필자가 지금까지 쓴 책들 중 일부는 구두발화, 즉 필자가 직접 강연 당시 했던 말들을 녹음하고 편집해서 원고의 대부분을 마련한 것이다. 여러분도 할 수 있다. 말하듯이 글을 쓰면 손쉽게 책을 만들어낼 정도의 분량을 확보할 수 있다.


https://cloud.google.com/speech-to-text?hl=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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