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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한 개로 1년치 연봉 벌기

대박 나는 강연은 모두 이것을 가지고 있다

나는 어쩌다가 강사가 되었을까?



내 생애 첫 강의의 이름은 '심리학, 게으름을 말하다'였다. 대학원을 다니며 읽은 학습심리학 논문들을 바탕으로 미루기procrastination에 관한 글을 종종 올렸는데, 이 내용을 엮어서 나처럼 게으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나누면 어떨까, 하는 작은 호기심이 출발점이었다.





단언컨대 이 강의가 망했다면 나는 지금 강사 안 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준비하던 GRE 다시 붙잡고 해외 박사 유학이나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신기하게 나는 연구 적성이 잘 맞았다. 실험하고 논문 쓰는 게 너무 재미있었고 성과도 잘 났던지라, 연구자의 길이 아니면 안 된다고 믿던 시기도 있었다).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게으름 강연이 말 그대로 대박이 나버렸다. 온오프믹스에 수강생 모집 글을 올리면 십중팔구 신청이 꽉 찼다. 개설하고, 또 개설하고, 또 개설해도 내 강의를 듣겠다는 사람들이 계속 찾아와 주셨다.


그러던 중 드디어 첫 강연 섭외도 들어왔다. 부천의 한 작은 도서관이었는데, 일전에 강사님의 게으름 특강을 잘 들었다며 직접 오셔서 학생들에게 강연해 주실 수 없겠느냐는 요청이었다. 순수한 내 노력으로도 이렇게 사람을 모으고, 섭외를 받아, 돈을 벌 수 있다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묘한 고양감 덕분에, 그렇게 나는 강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부천 작은 소피아 도서관에서 강연했을 때 찍은 사진. 따뜻한 환대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첫 강연을 시작으로 게으름 강의는 본격적으로 내 '밥줄'이 되어주기 시작했다. 정기적으로 무료 강연을 꾸준히 열면서도 학교, 기업체 등에 출강을 나갔다. 신문 인터뷰도 하고, 유튜버의 인터뷰에도 나갔다. 그리고 평소처럼 강남 어느 강연장에서 특강을 마친 다음 날, 내 강의를 들었다던 어느 분께서 메일을 보내오셨다.



책 내실 생각은 없으세요?



알고 보니 그분은 출판사 관계자셨고,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출판사 1층 로비에 있는 카페에서 출간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있었다. 게으름 강연의 정수를 눌러 담은, 내 나름의 혼신의 집필을 했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주관, 2017 우수출판콘텐츠'에 선정되며 내 책은 화려한 데뷔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절판





자존감, 행복, 편견/고정관념, 완벽주의, 글쓰기, 동기부여, 목표관리, 스트레스대처, 승부욕 등 그 이후로 나는 다양한 심리학 강연들을 선보였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자평이지만 강의마다 나름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주제로 강연을 다니며 충분히 생계를 꾸렸고, 돈도 열심히 모아 결혼도 했다.


하지만 게으름 강연만큼

순식간에 1년 치 연봉을 벌어다 준 강연이 아직 없다.


왜 게으름 강연이 유독 대박이 났을까? 주제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물론 그럴지 모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근면성실한 편이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부지런하게 살지 고민한다. 그래서 게으름 극복을 도와드리겠다는 말에 혹하신 분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주제도 중요성이나 화제 면에서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게으름 극복'이었기에 위기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에 윤홍균 선생님의 <자존감 수업>을 시작으로 우리 사회에 얼마나 자존감 열풍이 불어댔는가. 게으름 극복? 당시 분위기로는 '혼날 소리'였다. 게으름은 극복/타파의 대상이 아니라 감싸 안아야 할 대상이었다. '게을러도 괜찮아. 미루면 어때. 그래도 넌 예뻐'.



결국 스토리텔링이다.

다른 강연에는 없었고 게으름 강연에만 있던 것. 그것은 바로 진솔한 스토리텔링이었다. 유독 게으름 강연만은 100% 실화 투성이였다. 누구보다 내가 게으름으로 고통받았고 할 일을 미루려고 온갖 사고를 쳤기 때문에, 그 생생하면서도 처절한 경험담을 대중에 소개할 수 있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눈높이 수학이 너무 하기 싫어서 무슨 짓까지 저질렀는지 강연에서 고백하고 나면, 여지없이 대중들의 폭소, 그리고 '너도 그랬냐'는 듯한 공감 어린 시선을 받을 수 있었다. 강연 시작 전만 해도 팔짱을 끼며 '네가 강사야? 어디 한번 날 만족시켜 봐' 하는 표정으로 노려보던 청중이 내 100% 실화 경험담을 듣고, 그제야 경계를 푸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아 왔다.






나는 강사다. 가뭄에 콩 나듯 TV나 라디오 방송에 나가 유명한 척도 해봤지만 정말 유명하신 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길 가다가 흔히 발에 채일 만한 그런, 흔한 강사다. 강사로서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나보다 더 강연을 잘하시는 분들의 말씀을 보고 듣고 배울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유튜브를 켜면 으레 유명한 강사들의 영상을 찾아보곤 한다.


그런데 유명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더라. 몰입감이 끝내준다. 강사 본인의 이야기, 혹은 주변의 이야기에 넋을 놓고 있노라면 어느새 강사의 메시지에 설득당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니, 강연이 이렇게 스무스하게 진행될 수도 있나? 와, 정말 통찰력이 있네! 하면서 새삼 감탄하곤 한다.


하지만 (까일 각오를 하고) 과감하게 말하자면 소위 유명하다는 강연들, 조회수 높은 강연들 들어보면 결론은 별 게 없다. 목표관리? 해야 할 일을 작게 나눠서 쉬운 것부터 하라고 한다. 대인관계? 자존감을 높이고, 단호하게 거절할 줄도 알며, 상대에게 더 베풀라고 한다. 행복?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좇으며, 책도 더 많이 읽고 삶의 의미를 찾으라고 한다. 누구나 할법한, 당연한 조언들을 한다는 거다. 하지만 조회수가 잘 나오고, 사람들이 명강의로 치켜세워주고, 감동의 눈물까지 흘린단 말이다. 도대체 그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야기, 그리고 맛깔나게 이야기를 살리는 재능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평범한 강의와 팔리는 강의를 구분 짓는 지점은 새로운 지식이 아니라, 이야기가 아닐까. 고유한 나만의 솔직한 이야기(구체적인 날짜, 시간, 장소, 같이 있던 사람의 이름까지도), 사람들이 잘 안 들어봤을 경험담, 감동적인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 등등. 이야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흥미롭게 이야기를 경청하다 보면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어느새 입을 벌려 보니 강연의 메시지가 떠먹여 져 있는 상황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아마 이런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자기 계발 관련 강연들은 그럴지 모르지만 코딩 강연, 수학 강연, 영어 강연 등 명확한 목적과 배움이 필요한 강연은 아니라고. 어려운 내용을 쉽게 잘 풀어서 먹여주는 강연이 최고라고 말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강연에서조차 이야기의 힘은 중요하다.


유튜브로 강연 좀 보신 분들은 어쩌면 알고리즘에 이끌려 대학 입시 강사, 고시 강사 분들이 강연 도중 말한 '인생 썰', '학생들에게 하는 조언' 클립을 보셨을 것이다. 강의를 듣던 학생이 올려주기도 하지만, 강사 본인이 그 부분만 발췌해서 따로 올리기도 한다. 왜? 코딩 강연, 수학 강연, 영어 강연에서도 이야기는 잘 먹히기 때문이다. 강사들에게 있어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들은 브랜딩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내 머리를 쥐어뜯는다.

이제 스토리텔링, 이야기가 강연의 최고 재료임을 알았다. 남은 건 사람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내 안에서 길어 올리는 일뿐이다. 하지만 강연 준비에만 들어가면 나는 나 자신이 저주스럽다. 다른 강사들은 에피소드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왜 나는 이렇게도 평범한 인생만을 살아왔단 말인가. 사람들이 눈물 콧물 빼며 몰입할 만한 흑역사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뭐 엄청 대단한 업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웃기게도 나는 내 인생을 평범하지 않게 만드려 노력하는 중이다. 안 해본 것도 여럿 시도해 보고 가보지 않은 곳도 가 보고 안 먹어본 것도 먹는다. 내향인이지만 가급적 사람들도 많이 만나 본다. 대부분의 재밌는 에피소드는 결국 사람 사이의 일들 아니겠는가. 이렇게 열심히 인생을 살다 보면, 다양한 일을 겪으려 발버둥 치다 보면 종종 영감을 얻는 때가 있다. '앗, 이 경험! 강연에서 써먹어야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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