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본질을 이해해야 할 필요
블로그/브런치에 한 편의 글을 올리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나의 경우 짧으면 30분, 길면 1~2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어느 날은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 궁금해서 글을 쓸 때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목록으로 정리해 봤다.
- 주제 선정
- 개요 구상하기
- 작성 개시
- 고치고, 수정하기
- 문단 나누기
- 강조해야 할 지점 찾아 표시하기
- 무료이미지 검색 & 삽입
- 제목 짓기
- 포스팅
으레 글 하나 '띡' 올리는 것,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해 왔지만(그래서 자책도 많이 했다. 글 그까짓 껏 휘리릭 얼른 쓰면 되는데 왜 자꾸 미루냐고 자신에게 뭐라 뭐라 했다), 막상 글을 쓸 때 내가 하는 일들을 정리해 보니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새삼 자기 자신을 비난한 것이 미안해졌다.
아무튼 이렇게 고생해서 정성스럽게, 한 편의 글을 올리게 된다는 거다. 나처럼 그걸 이제 깨달은 분도 있겠고, 처음부터 자신의 한 편 한 편을 공들여, 시간 들여 작업해 오신 분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글에 노력이 많이 들어갈수록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내미는 심리가 있다.
보상 심리
그렇다. 나는 글을 열심히 썼다. '오, 이만하면 제법 잘 쓴 것 같은데' 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기분이 들수록 기대감도 커진다. 사람들이 내 글을 많이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조회수도 잘 나오고 '좋아요'도 많이 눌렸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브런치 메인, 포털 메인에도 실렸으면 좋겠다 하고 바라게 된다.
보상 심리가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여러분과 나는 분명 열심히 글을 썼다. 보상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편의 글이 유명해지는 경우는 정말 보기 드물다. 대개 인기라는 게 '누적'에서 오는 법이라 몇 개월이든 몇 년이든 꾸준히 글쓰기를 반복해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하지만 문제는 저 몇 개월, 몇 년을 도대체 무슨 힘으로 버티냐는 말이다.
소중한 시간 내어, 공부하고, 자료 조사하고, 이미지도 넣고, 정성스럽게 편집해서 글을 올렸는데 맙소사! 아직 아무도 내 글을 읽지 않았다! 보상 심리는 보기 좋게 배반당하고, 어느새 내 블로그/브런치는 방치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글 안 올리냐고? 어차피 아무도 안 볼 걸 뭐 하러 써'
사실 나는 글쓰기가 대화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이렇게 '글쓰기를 포기하게 되는 이유'라는 제목을 달고 여러분에게 말을 걸고 있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대화한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대화라는 것은 서로 오고 가는 것이 있어야 한다.
대화 장면을 한 번 상상해 보자. 여러분이 신이 나서, 혹은 오래도록 생각한 끝에 의견에 확신을 가지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름 생각한 예시도 곁들이고, 상대의 눈높이도 고려하면서 열심히 말을 건다. 그런데 상대방이 전혀 내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내 말에 아무런 반응도 없다. 상대가 반응을 보이지 않는데 혼자 떠들면 재미있을까? 아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여러분은 오늘도 블로그/브런치에 글을 쓰며 내 글을 읽게 될 누군게에게 대화를 신청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내 글을 읽지 않는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상대방에게 '무시'당하니까 풀이 죽는다. 더 이상 말할 의욕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블로그/브런치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우리는 일기 쓰기에 대해 배웠다. 일기를 쓰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활동인지에 대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일기를 잘 쓰지 않는다. 일기 쓰는 것이 너무 귀찮고, 부담스럽기만 하다. 왜 그럴까? 마찬가지다. 글쓰기가 대화라면, 상대의 반응이 있어야 내 보상심리가 충족된다.
그런데 일기는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행위일 따름이다. 혼자 막 써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그러니 재미가 없다(그런데 놀랍게도 일기를 즐겨 쓰는 사람들은 일기 쓰기를 '독백'이 아닌, '대화'로 여긴다. 누구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일기 쓰기를 가리켜 '자기 성찰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정리해 보자. 여러분이 만약 꾸준한 글쓰기 습관을 만들지 못해서 힘들다면 글쓰기가 대화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화라는 것은 상대방의 맞장구가 있어야 재미가 생긴다. 혼자만 끄적이는 글쓰기는 오래가기 어렵다. SNS이든 블로그/브런치이든 공개된 영역에 소개, 상대방의 반응을 들어야 재미있어진다.
자신 있게 올렸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없다? 주변 사람들에게라도 공유하고 반응을 듣자. 친구, 가족, 동료 등 여러분의 글을 성의껏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자. SNS에 글을 게재하는 것은 그런 면에서도 좋다.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용이하고, 친구의 친구, 친구의 친구의 친구까지 내 글을 보여줄 수 있으니 말이다.
아예 글쓰기 모임을 만들고 서로가 쓴 글을 돌려보는 것도 방법이다. 글쓰기 모임은 인원이 한정적이라 많은 독자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신 내 글에 대한 깊이 있는 피드백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같이 글을 써 나가다 보니 동료의식도 싹트고,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서로를 지지해 주는 역할도 해줄 수 있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글을 쓰지 않은 날에는 내 블로그/브런치에 접속하지 않는다. 글을 올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한 편이라, 글을 쓰지 않았을 때는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어서 차마 접속을 못한다. 하지만 내가 정성껏 작성한 글을 올린 날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도 때도 없이 새로고침을 하거나 접속을 반복하며 조회수가 올라갔는지,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보게 된다. 그러다가 드디어 좋아요 하나라도 받게 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나의 글쓰기(=대화)가 누군가에게 드디어 전달된 것이다. 내 말을 듣고 상대가 반응을 해 온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요즘은 블로그/브런치에 접속하면 최신 글을 본다. 갓 나온 따끈따끈한 글을 읽으며 좋아요 와 댓글을 달며 작가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댓글 하나, 좋아요 하나가 갖는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내 반응에 기분이 좋아지셨다면, 그건 나에게도 기쁜 일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