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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왕년에는 말야~ 왜 어른들은 이런 말을 할까?

심리학에서의 자기 가치 확인(Self-affirmation)에 대해

힘들고 우울할 때, 여러분들은 버티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 사람의 어엿한 독립된 성인으로, 세상 헤쳐나간다는 것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일'과 '사랑' 단 두 가지만 있으면 된다고 하던데, 그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붙잡기 무척 어렵습니다. 입시다 취업이다 일의 '문턱'에 가 닿는 것부터가 버겁고 갖은 고생으로 드디어 그 문턱을 넘었을 때, 내가 또다시 인내하고 넘어야 할 것들이 쌓여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어쩔 수 없이' 꾸지람을 들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도 실감하게 됩니다. '사랑'은 어떻던가요. 영원히 내 곁에서 든든하게 나를 지켜줄 것만 같았던 부모님은 점점 희미해지고, 세상살이의 고됨은 친구 관계도, 연애나 결혼조차 어렵게 만듭니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새로운 인연에 대한 설렘이나 희망보다는, 한 명 한 명 멀어져가는 '내 사람'들이 더 깊이 사무친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삶의 전부였다면 우리는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마주치는 갖가지 어려움들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우울하더라도, 그래서 나 자신이 한없이 못나 보일지언정 결국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살아갈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문득 생각해봅니다. 설사 한 번 두 번 쓰러져도, 결국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만드는 것, '한 번 해보자'라고 한 번 더 다짐하도록 만드는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걸어온 길 그 자체는 아닐까요. 가족이 있었고, 꿈이 있었으며 행복한 추억들이 함께했던 삶. 어울릴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던 이제까지의 삶 그 자체가 곧 여러분을 다시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희망이란 여러분 자신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잠깐만, 아주 잠깐만이라도 멈추고 돌아보세요



  심리학의 자기 가치 확인 이론(Self-affirmation Theory)에 따르면, 사람은 자기 가치(Self-worth)와 온전한(Integrity) 자아상을 유지하도록 동기화된 존재입니다. 그래서 취업 실패나 이별, 일에서의 실패 등 자기 가치가 위협받는 상황이 오면, 손상된 자기 가치를 회복하려는 생각과 행동들이 나타납니다. 스스로에게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주문을 거는 것, 여행이나 취미활동 등 기분 전환을 시도하거나 혹은 직접적으로 실패를 만회하려고 더욱 노력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자신이 가치 있다는 느낌은 삶을 지탱하는 데 있어서 무척 중요한 것이고, 부족하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채워져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부족하면 채우려 동기화되어 '자기 가치의 일정량'을 유지하는, 이른바 자기 가치 확인의 항상성(Homeostasis)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두 번의 실패로 자기 가치가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그 가치를 회복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거듭된 실패, 혹은 희망 없는 막막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감이 고개를 든다면 자기 가치 회복을 위한 노력은 쉽사리 포기되고 맙니다. 실제로 기존 연구들은 가난, 실패 등의 굴레로 자기 가치감이 크게 손상된 사람들은 인지적, 정서적 무기력을 경험하고 스스로 반등하려는 의지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가치 확인 이론(Self-affirmation Theory)을 다루는 연구자들은 '자기 가치의 확인' 과정이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도 실현될 수 있다는 다소 희망적인 결과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 Hall과 그의 동료들은 도심 내 무료 급식소에 찾아온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자기 가치 확인을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노숙인들 가운데 절반에게는 수 분 간 '성공적이었거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고 느꼈던 개인적 경험을 술회해볼 것'을 요청하는 인터뷰를 진행하였고('자기 가치 확인' 조건), 나머지 절반에게는 인터뷰에서 자기 가치 확인과는 관련이 없는, '자신의 하루 식사 패턴'에 대해 수 분 간 얘기해보도록 했습니다(통제 조건). 인터뷰를 마친 모든 참여자들은 무료 급식소를 나오면서 한 남자가 서 있는 탁자 옆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탁자 위에는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부 지원 재활 프로그램들에 대한 안내 전단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때 연구자들은 실험 참여자들이 (1) 탁자 앞에 서서 전단지 내용에 관심을 보이는지, (2) 탁자 옆을 지나가면서 전단지를 가지고 가는지를 측정했습니다. 연구 결과 자기 가치 확인이 유도된 참여자들이, 통제 조건에 비해 전단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고 또 더 많이 가져가기도 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더 커졌습니다




  문득 생각해보면 '내가 왕년에 잘 나갔다'는 누군가의 외침들이 단순한 자랑이나 허세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추억하는 것은 사실 지금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는 의미는 아니었을까요. 이는 사실 그 누구에게 들려주려는 말이 아니라,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고 이는 자신의 가치를 재확인하려는 '회복'의  과정이었을지 모릅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것은 퇴보도, 머무름도 아닌 앞으로 다시 한 번 '잘' 해보자고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자 다짐이었을 겁니다.


  삶이 너무 막막할 때, 도무지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우울할 때는 잠깐만이라도 시간을 내어 여러분의 '성공적이었고 자부심 넘쳤던' 그때로 돌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렸을 때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았던 그때, 어려운 처지에 있던 그 누군가를 돕고 뿌듯했던 그때, 열심히 용돈을 모아 끝내 원하던 것을 샀을 때, 혹은 하루하루 열심히 공부해서 갖고 싶던 자격증을 취득했을 때,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고백하고 처음 연인이 되었을 때로 잠깐만 돌아가 보는 겁니다. 때로는 행복했던 옛 시절 음악을 듣거나 과거의 기록들을 들춰보는 것도 좋고, 오랜 친구와 만나 그 당시 자랑스러웠던 기억을 다시 한 번 꺼내 보는 것도 좋겠지요. 애틋한 것은 덤이요, 나도 '왕년에는 잘 나갔던' 사람이니만큼 기죽지 말자는 다짐은 여러분을 다시 살게 하는 힘이 되어줄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 연구 출처: Hall, C. C., Zhao, J., & Shafir, E. (2014). Self-affirmation among the Poor: Cognitive and behavioral implications. Psychological Science, 25(2), 619-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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