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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할 것 같았는데 결국 성공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지구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

프리랜서가 되니 안 좋은 점이 생겼다.



그건 바로 엉덩이 오래 붙이고 앉아 있는 힘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회사를 다닐 때를 생각해 보면 정작 업무 틈틈이 다른 사이트 켜 놓고 딴짓을 한 적은 있었어도 그런 순간마저도 엉덩이는 제 자리에 딱 붙이고 있었다. 언제든 업무로 돌아갈 수 있게 스탠바이 해놓고 말이다.


하지만 퇴사하고 나서, 그것도 외부에 사무실을 차리지 않고 집에서 일을 하자니 지구력이 많이 떨어졌음을 느낀다. 물론 업무에 한 다리 걸쳐 있는 시간은 회사 다닐 때보다 압도적으로 늘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며 출근하기가 쉬워졌다. 퇴근의 경계는 흐려져서 여섯 시 넘기는 날은 거의 매일이고, 밤늦게까지 야근도 많이 한다. 그러나 문제는 효율이다. 강제로 앉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보니 자꾸 방을 들락날락, 일하다가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나갔다가의 반복이다.



나는 의지박약인가 보다


하루는 각 잡고 생각해 봤다. 나는 왜 자꾸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가. 콤팩트하게 업무를 끝내고 딱 쉬면 되는데, 하다 말다 하다 말다 질질 시간만 끌며 야근을 자처하는 이유는 뭔가. 맨날 야근할 것이었으면 굳이 퇴사는 왜 했단 말인가. 차라리 수당이라도 받으며 거기 가서 야근하지.


그러던 중 자연스럽게 내가 언제 가장 지구력을 발휘해 봤을까, 를 떠올리게 됐고 그런 기억들 중 하나가 바로 군대에서의 완전 군장-야간 행군이었다. 군대 가서 행군을 해 보신 분들, 혹은 행군에 대해 들어보신 분들은 알고 계실 것이다. 행군이라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포기하고 싶은 여정인지를 말이다.


못해도 12시간 이상을, MP3도 없이 걸어야 한다. 등에는 완전군장, 목에는 K2소총, 옆구리에는 방독면을 채웠는지라 무겁기도 하지만 또 더럽게 움직임이 갑갑하다. 다 같이 하는 것이니 속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행군길의 풍경은 또 어찌나 단조로운지. 특히 밤이라도 되면 앞사람 등을 보는 것 말고는 여흥도 달리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의 감각은 없어지고, 발에는 '살이 밀리는 느낌'과 함께 물집의 예감이 온다.


나는 그때 어떻게 버텼던가? 단지 지금보다 체력이 빵빵했기에? 젊은이다운 패기와 열정이 있어서? 물론 그런 이유도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간과하고 있던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야간 행군의 규칙적인 패턴이었다.


경험에 따르면 야간 행군은 50분 걷기 - 10분 휴식의 사이클을 철저히 지켰다. 50분을 반드시 걸었고, 시간이 되면 우리가 어디에 있든(포장도로이든, 산길이든, 쓰레기장 앞이든, 축사 앞이든, 어디든) 즉시 칼같이 10분 휴식 명령이 내려왔다. 그럼 군장 벗고, 철 모를 베개 삼아 자리에 드러눕는 거다. 그러다 정확히 10분이 되면 기상 명령이 내려오고, 다시 50분의 여정을 반복한다.


정말 별 것 아닌 것 같았지만 저 예외 없는, 행군과 휴식의 공수 교대가 12시간 이상 행군 완주의 기적을 불러왔던 것 같다. 휴식시간이 5분만 더 짧았더라면 내가 완주를 할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혹은 100분 걷고 20분 길게 휴식? 그랬어도 효율은 떨어졌을 것이다. 100분은 너무 길다. 또 20분은 늘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칼 같은 휴식의 힘


사실 처음 할 때는 휴식 없어도 할 만하다. 처음에는 체력이 쌩쌩하기 때문에 행군 시작 후 첫 50분 걷기가 끝난 뒤 휴식 명령이 내려왔을 때, 나와 내 전우들은 이런 생각을 했다. '행군? 할 만하네! 더 가도 되는데 벌써 쉬는 거야?', '차라리 휴식 시간 아껴서 더 걸으면 행군이 더 빨리 끝나지 않을까?!' 그러면 더 오래 못 가...


회사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다. 출근하고 나서 오전 업무는 2시간, 3시간 이상 쭉 자리에 앉아 일만 하는 경우도 많다. 아침이라 체력이 충분하니까 할 만하다고 느낀다. 오늘 할 일을 지금 미리 많이 해두면 오후에 여유로울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칼같이 휴식 시간을 지키지 않은 대가는 오후에 찾아오기 시작한다. 할 일은 또 생겼고, 나는 또 자꾸 늘어지고, 시계만 쳐다보게 된다.


퇴사하고 나니 예상외로 칼 같이 휴식을 찾아 지키는 건 더 어려워졌다. 5분 일하고 잠깐 물 마시러 갔다 오고, 다시 10분 일하다 화장실 가고, 다시 5분 일하고 옆에 침대에 몸을 던졌다가, 이번에는 힘내서 15분 일하더니 간식 찾아서 냉장고나 두리번거리고 있다. 업무와 휴식 간의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시간 관리법 중에는 뽀모도로 기법(Pomodoro Technique)이라는 것이 있다. 25분 공부/업무 집중 - 5분 휴식을 반복하며 공부/업무 중 집중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말한다. 25분 공부/업무 중에는 그 어떠한 딴짓도 금지된다. 잠깐 휴대전화라도 들었다 치면 그 즉시 무효다. 처음부터 다시 사이클을 돌려야 한다(참고로 사이클은 반드시 25분-5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여러분의 스타일에 맞게 조정 가능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야간 행군을 견디게 해 준 그 놀라운 지구력은 (변형) 뽀모도로 기법의 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50분 딱 집중해서 걷기만 하고, 10분간은 휴식. 50분 또 걷는 것만 하고, 10분은 휴식. 휴식 시간의 가치를 인정하고 철저하게 지킨 덕에 12시간 이상 버티는 '미친 짓'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뽀모도로 기법 자체는 집중력 확보가 주목적이지만 칼 같은 휴식 시간 보장 덕분에 지구력도 벌어다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처음부터 앞서가는 행위는 지양하고 있다. 오늘은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에, 그만 하루의 첫 50분 업무를 지나 초과 업무를 하고 싶다가도 50분이 되면 칼같이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휴식이 끝나면 자리에 앉아서 안간힘을 쓰고, 한창 무언가 하던 중이었어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또 쉰다. 그러니까 더 오래 일할만 하더라.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시간이 안정적으로 확보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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