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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전에 심리학자들이 밝힌, 관계를 해치는 착각들

'성격 차이'가 아니라 '생각 차이'

성격 차이 때문에 헤어졌어요



'왜 헤어졌냐'라고 물었을 때 흔히 들을 수 있는 대답이다. 하지만 실제로, 정말로 성격 차이 때문이었을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감히 추측컨대 별로 없을 것이다. 돈 때문인데, 바람 때문인데 대놓고 말할 수 없어서 면피용으로 성격 운운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성격이라는 건 사실 꽤나 쉽게 파악되는 특성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는 단 몇 시간만 누군가를 만나 보면, 그가 얼마나 긍정적인 사람인지, 외향적인지, 관심사가 다양한지, 따뜻한 인상을 갖고 있는지, 쓸데없이 걱정이 많지는 않은지 등 많은 단서들을 얻을 수 있다.


만나자마자 사귀는 게 아닌 다음에야, 성격은 대강 서로 알고 만난다. 연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나서 뒤늦게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영역은 성격의 극단적인 차이 때문이 아니라 숨겨진 과거라든지, 아직 해결하지 못한 트라우마라든지, 가치관/신념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냥 편의상 그걸 '성격 차이'라고 표현하는 것일 뿐, 대부분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관계가 깨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성격 차이(X)

생각 차이(O)


그럼 어떤 생각 차이 때문에 관계가 깨어지는 걸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이 2024년이니, 무려 44년 전인 1982년에 심리학자들이 정리한 내용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여전히 들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심리학자 Eidelson과 Epstein의 연구다.



심리학자 Eidelson과 Epstein은 1982년 논문을 통해 관계의 존속을 위협하는 다섯 가지 역기능적 관계 신념Dysfunctional Relationship Beliefs을 정리했다. 어떤 내용인지 하나씩 살펴보자.


1) 의견이 서로 달라? 사랑이 부족하다는 증거야!

: Disagreement is destructive

이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상대와 자신의 생각이 '같아야' 한다고 믿는다. 일의 우선순위든, 가치관이든, 좋아하는 음식이든, 영화에 대한 감상이든 그 무엇이든 말이다. 마침 파트너와 생각이 같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애정 200% 증가이지만,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그때부터는 그야말로 지독하리만치 피곤한 '의견합치'의 여정이 시작된다. 이들에게 있어 서로 다른 생각의 공존은 허락되지 않는다. 니 말이 맞든, 내 말이 맞든 어쨌든 '한 몸과도 같은' 우리는 하나의 의견만을 가져야 한다. 생각의 차이는 곧 애정 부족이자 관계의 적신호나 마찬가지로 간주된다.


2) 사랑한다면 척하면 척이지!

: Mindreading is expected

이 신념은 가진 사람들은 파트너도 모르는 새 삐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상대방이 내가 뭘 원하는지 알 거라 생각했는데, 상대방이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랑하는 관계라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가 원하는 바를 잘 알아야 한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 이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끊임없이 상대방을 시험한다.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맞춰봐',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 '꼭 말해줘야 알아?', '아무거나, 라 했다고 진짜 아무거나 가져오냐?' 이런 식이다.


3) 지금, 우리 사이가 앞으로도 영원할 거야

: Partners cannot change

이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자신의 모습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모습도 내가 아는 지금 이 모습으로 영원히 남아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는 관계 유지에 대한 두려움과 관련이 있는데, 이들은 나, 혹은 상대방, 혹은 둘 모두 지금 모습에서 변화를 겪게 되면 관계 역시 삐그덕거리지 않을까 하는 암묵적인 걱정을 갖고 지낸다. '너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사람이 변했어', '내가 알던 모습으로 돌아와' 그래서 이들은 상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대신 그저 거부하고 의심한다.


4) 우리는 잠자리에서도 최고의 파트너야

: Sexual perfectionism

데이트에서 손발이 잘 맞으면, 당연히 잠자리에서도 궁합이 좋아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성관계가 늘 만족스러울 수는 없기 때문에 관계를 지속하면서 알게 모르게 자신, 혹은 상대방에 대한 불만을 누적시키게 된다. 즐거워야 할 잠자리가 서로를 '평가'하고 '잘된 점', '잘못된 점'을 따지는 자리로 전락하게 되니,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성적인 관계가 그저 부담스러운 시간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5) 너는 여자(남자)고 나는 남자(여자)잖아

: The sexes are different

이러한 성적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은 크고 작은 갈등을 모두 '성별 차이'에서 오는 문제로 치부해 버릴 가능성이 크다. '너가 남자라서 이런 거 잘 몰라', '여자들은 남자가 왜 이러는지 모를 거야', '남자가 돼서 대체 왜 그래?', '여자들은 다 너처럼 그래?' 이런 식으로 상대의 문제제기를 틀어막는 것이다. 성적 고정관념을 강하게 가진 사람들은 상대와의 차이를 이해하려 시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태생적인 성별 차이에서 오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해도 안 될뿐더러, 노력해 봤자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비합리적 관계 신념의 결말


어느 한쪽이라도 비합리적 관계 신념을 강하게 갖고 있다면 잠재적 '폭탄'을 안고 사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단 기대가 비현실적이다보니 상대가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그에 따라 본인의 불만족도 쌓여가게 마련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타파해 보려고 상대에게 완전히 내맡기거나, 과도하게 통제하려 드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특히 심리학자들은 비합리적 관계 신념이 우리 내면에 잠자고 있는 공격성을 촉발시킨다는 점에 주목한다. 예로부터 공격성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공격성이 촉발되는 메커니즘 중 하나가 기대의 '좌절'이라고 주장해 왔다. 비합리적 관계 신념은 말마따나 합리적이지 않기에, 성인군자라도 만나지 않는 이상 결코 충족될 수 없고, 따라서 그 기대가 깨어졌을 때 공격성이 표출된다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관련 연구에 따르면, 비합리적 관계 신념은 데이트폭력, 부부갈등, 분노 경험 등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성격' 말고 '생각'에 주목하자.


애꿎은 성격 탓을 하지 말자. 극과 극이 아닌 다음에야 성격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그보다는 대개 '생각'들, 특히 상대에게 나도 모르게 걸고 있는 비합리적 기대들로부터 불만이 누적되고, 관계의 파열음이 생기는 법이다. 


따라서 상대와의 관계가 왠지 시원찮고, 상대가 내 맘도 몰라주는 것 같다면 '너 왜 그래?' 하지 말고, 그 대신 나 자신에게 묻자. 구체적으로 나 자신이 1) 상대방에게 어떤 기대를 걸고 있는지? 2) 그 기대의 내용이 충분히 합리적인지? 3) 입장을 바꿔 나 자신은 과연 상대방에게 그 기대를 온전히 충족시켜 줄 자신이 있는지? 돌아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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