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워라밸이 부하에게 미치는 영향
예나 지금이나 창의성은 조직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다. 즉,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더 창의성을 발휘하여 새롭고 유용한 산출물을 만들도록 유도할 수 있을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직원의 창의성 발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가지 변수들이 제시되어 왔다. 개방적인 조직문화, 실패를 용인하는 조직문화 등 거시적 차원에서의 변수는 물론, 성격이라든지, 지능이라든지, 직무 몰입이라든지, 직무 만족도라든지, 직원 개인 차원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들도 꾸준히 거론되어 왔다.
연구들에 따르면 최근 각광받고 있는,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 또한 직원의 창의성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 즉, 일찍 퇴근하고 잘 쉬었던 직원들이 맨날 야근만 하는 직원들에 비해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일에 매달렸고 더 창의적으로 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이 잘 맞는 사람들은 일단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행복하다. 그 결과, 어떤 문제에 대하여 시간을 들여 충분히 여러 관점을 적용할 수 이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밥먹듯이 야근하는 사람들, 혹은 스스로를 내몰기 때문에 잘 쉬지 못하는 사람들은 도통 여유를 가질 수 없다. 그저 주어지는 일들을 바쁘게 쳐내는 데에만 관심을 가질 뿐, 시야를 넓혀 창의적으로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일과 삶의 균형이 가진 파급력이다(단어가 길어서 헷갈리니까 이제부터는 그냥 워라밸이라 부르겠다). 우리는 흔히 워라밸이 '개인'에게 이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워라밸 확보는 여러분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분 주변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자. 내가 막 너무 바쁘고, 정신없고, 피로에 찌들어 있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잘 대할' 수 있을까? 성의 없이 답하고, 영혼 없이 손짓하고, 때로 짜증 섞인 반응이나 보일 것이다. 상대가 기껏 이런저런 생각을 들려줘도 그걸 들을 여유 따위는 없으니, 별로 상대방과 시너지가 나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회사 차원에서 직원들의 워라밸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비단 개개인의 스트레스 감소, 행복 증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직원들이 서로 더 호의적으로 대하고, 가까워지며,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데에도 '워라밸'이라는 변수는 무척 중요하게 작용한다. 직원 대 직원의 관계도 이럴진대, 상사 대 부하 관계는 더할 것이다.
이 당연한 것 같지만, 정말 그 정도로 중요할까 싶은 '워라밸'의 파급 효과를 실험적으로 검증한 연구도 있다. 대략 소개하자면 이 연구의 주된 관심사는 '리더의 워라밸이 직원의 창의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까?' 였다. 연구 결과, 그들의 예상은 데이터를 통해 훌륭히 입증되었다.
워라밸이 좋은, 즉 잘 쉬어서 여유 있는 리더일수록 부하 직원들과 긍정적인 교환 관계(LMX)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상호 간에 신뢰, 존중, 호감 등이 더 두터웠다. 그리고 부하 직원들은 상사의 그런 믿음에 보답하듯, 더 창의적인 성과를 내는 경향을 보였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심리적 주인의식psychological ownership'의 조절효과다. 참고로 일터에서의 심리적 주인의식이란 남의 일도 내 일, 다른 부서의 일도 내 일처럼 생각하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심리적 주인의식이 높은 사람일수록 능동적으로 나서서 일을 만들며 더 나은 성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언급한 연구를 더 들여다보면, 리더의 워라밸로 시작된 바람직한 리더-부하 관계는 '심리적 주인의식'이 떨어지는 직원들마저도 더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비록 '나의 일', '나의 일터', '나의 회사'라는 자각은 부족할지라도 '내가 믿고 따르는 상사' 한 분 믿고 능동적으로 노력하게 된다는 의미다.
보통 기업 내 창의성 제고를 위해서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많다. 창의성에 관한 교육을 하거나, 채용 단계에서 '창의성' 역량점수가 높은 인재를 선발하는 식이다. 그러나 창의성은 참 오묘한 특성을 지녔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리더의 워라밸'조차 부하의 창의성에 관여할 수 있다니 말이다.
창의성 문제에 있어 '여유'라는 건 필요조건과 같다. 여유롭다고 해서 무조건 창의적인 건 아니지만, 여유롭지 않다면 결코 창의적일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워라밸로 대변되는, 몸과 마음의 여유 확보를 위한 노력은 직원의 창의성 발휘와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위의 연구가 보여주듯 '직원 혼자서만', '나 혼자서만' 잘 쉰다고 해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기업은 어쩔 수 없이 상하관계에 입각한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말단 직원 혼자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를 내 봤자 그걸 받아줄 수 있는 상사가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보통 리더들은 부하들보다 더 바쁘다. 일이 더 많이 주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리더라면 그래야 한다는 고정관념 또한 리더를 더 몰아붙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리더 혼자 바쁘다고 해서 언제나 일이 잘 풀리는 건 아니다. 더 효율적인 분담을 위해서라면, 팀원들이 자신의 몫을 자각하고 창의적으로 성과를 내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먼저 리더의 숨통이 트여야 하지 않을까.
** 이 글은 원티드 인살롱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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