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든, 실무이든 심리검사가 최고인 이유
심리학psychology에 대해 아직 잘 몰랐을 때를 떠올려 봅시다. 심리학 비스무리한 것이 있다는 걸 아마 여러분은 '심리테스트'의 존재로 처음 알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잡지 같은 데를 보면 '재미로 보는 심리테스트' 뭐 이런 게 실려있는 경우가 많았고, 'A를 고른 당신, 매우 도전적이고 활발한 사람입니다' 이런 느낌의 결과를 보며 친구들 간에 결과를 맞춰보는 일도 많았더랬죠.
잡지나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심리테스트들은 사실 허구에 가까운, 순전히 재미만을 위한 것이지만 어쨌든 심리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심리테스트'를 즐겨 사용한다는 점만은 분명 사실입니다. 심리학에서 취급하는 대부분의 개념들은 어지간하면 심리검사(이제부터는 심리검사라고 부르겠습니다)로 측정 가능하게끔, 심리학자들이 철저한 연구와 검증을 거쳐 만들어냈고, 많은 심리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심리검사를 활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심리검사, 그거 정확한 거 맞아?
심리학자가 제대로 만들었다면 심리검사의 타당도와 신뢰도는 검증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심리테스트와의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이 타당도와 신뢰도에 관한 부분인데요, 심리학자들은 어떤 개념을 정확히, 일관성 있게 측정하기 위해 데이터를 부지런히 수집하고, 요인분석이나 구조방정식 모형 등 다양한 고급 통계 기법을 사용해 가며 최적화된 심리검사(척도)를 완성해 냅니다. 한번 만든다고 끝이 아닌 게, 데이터를 한번 더 모아서 재검증하는 과정도 필요하며 유사 개념을 측정하는 다른 심리검사들과도 결괏값을 비교하며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심리검사 결과가 실제 현상을 잘 예측해 주는지도 살펴야 하죠.
근데 이런 복잡한 제작 과정을 따지지 않더라도 우리가 현실에서 심리검사를 활용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놀라운 '효율성'입니다. 채용 인성검사, 역량검사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채용 시장에서 상당수의 고용주, 기업들은 구직자, 지원자의 인성이나 역량 등을 평가하기 위해 심리검사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인성검사, 역량검사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긴 하지만 모두 심리학자들이 만들며, 실제 학계에서 활용되는 심리검사와 제작 원리나 메커니즘이 동일하다는 점에서, 결국 채용 과정에서 우리가 보는 인성검사, 역량검사들을 모두 심리검사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취업을 위한 목적의 인성검사, 역량검사를 해본 분들은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문항의 개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는 것을요. 아무리 적어도 100개는 넘으며, 200~300개 이상의 문항을 풀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많으면 400~500개의 문항에 답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인성검사, 역량검사의 효율성은 바로 여기에서 나옵니다. 문항이 많다고 투덜투덜하면서 응시를 하더라도, 아무리 길어도 모든 문항에 다 응답하는 데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통상적으로는 1시간도 안 되는 시간만에 수백 개 문항 응답을 모두 완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근데 저 수백 개 문항을 만약, 면접에서 질문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2시간 안에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하루종일 해도 어려울 수 있으며 그 사이 면접관도, 구직자도 지쳐버릴 겁니다. 하지만 인성검사, 역량검사라면? 비록 주관식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 내에 수백 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연구자, 실무자들은 입을 모아 인성검사, 역량검사만큼 가성비 좋은 검증 수단이 없다고 말합니다. 심리학자가 제대로 제작하여 타당도와 신뢰도까지 갖춰진 검사라면 더더욱 훌륭한 검증 수단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인성검사, 역량검사보다 더 훌륭한 검증 수단은 있습니다. 고도화된 (반)구조화 면접, 상황판단과제, 인바스켓 과제 등 더 정확하게 지원자를 검증할 수 있는 수단은 있죠. 하지만 이런 수단들은 인성검사, 역량검사 대비 기업에서 들여야 하는 시간, 노력, 비용의 소모가 매우 큽니다. 준비과정도 길고 복잡하며, 직무나 구직자 특성 등에 따라 최적화된 검증을 진행하기까지 많은 부담이 있습니다.
인성검사, 역량검사는 조금은 덜 정확한 대신, 압도적인 효율을 보여줍니다. 한 공간에 구직자들을 몰아넣고 동시에 시험 치듯 하면 수십, 수백 명을 한 번에 검증할 수 있습니다. 표준화된 점수 처리 절차가 존재하므로 로직에 따라 점수를 일괄적으로 뽑아내고 순위 비교를 할 수 있습니다. 무려 수백 개의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한 번에 수십 개의 역량 점수를 뽑아내어 N각형 그래프를 그리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닙니다.
→ 심리검사 아니면, 누군가에게 수십~수백 개의 질문을 퍼부을 방법이 없다.
전 본질적으로 인성검사, 역량검사의 힘이 여기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사실 심리학계에서 잘 만들어진 심리검사에는 꼭 많은 문항이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연구자들은 조금이라도 신뢰도, 타당도를 저해하는 문항들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잘 제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적은 문항으로도 최고의 측정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편이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학계에서도 심리검사는 가장 시간 대비 적은 노력을 들여 활용할 수 있는, 가성비 끝판왕의 측정도구임에는 분명합니다. 정성조사, 참여관찰법, 인터뷰 이런 것들보다 데이터, 수치화에 당연히 유리하며 노력과 비용이 말도 안 되게 저렴합니다. 아주 한정된 짧은 시간 동안, 피험자를 불러 놓고 가능한 많은 데이터를 뽑아내야 하는데 이때 심리검사만 한 것이 없습니다.
피험자들은 두툼한 설문지를 받더라도 기꺼이, 전혀 동의하지 않음~ 매우 동의함 사이에서 응답하며 자신의 (심리에 관한) 많은 정보들을 풀어놓게 되죠. 심층적인 정보 수집이 어렵다, 자기 보고식 검사의 한계로 인해 거짓 응답이 나올 수 있다, 각종 편향에 노출될 수 있다 등 다양한 단점들이 있음에도, 그럼에도 학계에서나 실무에서나 여전히 심리검사가 중용되고 있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