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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 친정 보내기: 처갓'집'만 고집하지 말라

얼마 전에 유부남인 지인과 대화할 일이 있었습니다. 비즈니스 얘기 좀 하고, 잠시 쉴겸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게 되었는데요, 저는 마침 와이프가 친정 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 와이프 친정가셨어요? 부럽네요.
제 와이프는 생각만큼 친정을 잘 안 가네요(후)


이런 눈치 없게. 저는 그런 속내도 모르고 이런저런 들뜬 기분을 티내기에 바빴습니다. 이 황금같은 찬스(?)에 무엇을 하고 보내면 즐거울지 재밌는 놀이(?)들을 추천해달라고 졸라댔으니 말입니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서둘러 화제를 마무리했지만 못내 찝찝했습니다. 왠지 저만 놀아서는 안 될 것 같은, 동지를 저버린(?) 그런 느낌이 들었달까요.



저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다행이면서도 불행스러운 일입니다. 제 와이프는 친정을 자주 가는 편입니다. 우선 처갓집과 저희 집 사이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다는 점을 지적해야겠습니다. 자차로 이동 시 한시간 내외, 그마저도 기차를 이용하면 삼십 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처갓집이 있습니다. 물론 저희보다 처갓집과의 거리가 더 가까우신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이 정도면 왕래하기에 별 부담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애기가 태어나고나서 와이프가 친정 갈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저희가 따로 육아도우미를 쓰거나 하지도 않고, 아직 애기를 어린이집에 보낼 시기도 아니어서 육아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데요, 이런 상황을 잘 알고 계신 처갓집에서는 애기를 자주 데려와라, 며칠 맡기고 좀 쉬어라, 자주 배려해주시는 편입니다. 그거 아니어도 손녀를 어찌나 예뻐하시는지, 손녀 보고 싶으니 좀 오라고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저야 일 때문에, 그리고 다른 사정(?) 때문에 종종 처갓집에 가지 못하지만 그 대신 와이프가 애기를 데리고 친정에 가서 며칠 자고 오는 일이 잦습니다.


애기가 태어나기 전만 해도 주변에서 각종 여러가지 푸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삶이 얼마나 고단해지는지, 특히 잠깐 휴대전화 보는 일 말고는 이렇다할 취미생활을 즐길 수 없다는 점, 여기저기 바람쐬러 다니기도 번거로워지고, 맘 편히 밥 한 술 뜨기도 힘들다는 점이 저를 걱정스럽게 했습니다. 하지만 와이프가 가끔씩 친정을 가는 덕분에 저는 비록 애기를 키우고 있음에도 종종 여유를 가져보게 됩니다. 늦잠도 자보고, 배달도 시켜 보고, 살짝 게임기도 켜보면서 말입니다. 아, 물론 와이프가 친정에 가 있다고 해서,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마냥 놀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열심히 일도 합니다!! 여, 여보, 보고있지?



처갓'집'만 고집하지 말 것


저야 복 받은(?) 사람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친정에 잘 가지 않는 와이프들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사이가 가깝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집과의 거리가 가깝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시댁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 와이프가 집순이여서 나가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거나, 기타 처갓집 내부의 사정 등등 뭐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와이프 친정 이벤트를 겪지 못하는 유부남들도 많을 겁니다.


그래서 와이프가 친정간다 했을 때, 이를 주변에 자랑스럽게 알리기 꺼려질 때가 있습니다. 저처럼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유부남들이 눈에 밟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A씨 역시 그런 유부남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와이프가 잘 친정에 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자세한 이유는 안 밝혔습니다만).


저: 그럼 혼자 있는 시간이 정말 부족하시겠네요.

A씨: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ㅎㅎ 얼마 전에는 혼자 밤낚시 다녀왔어요.

저: ??? 와이프 분의 허락이라도 받으셨나요?

A씨: 후후후, 글쎄요.


A씨는 제게 귀중한 조언을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그는 우리 주위의 많은 유부남들이 고정관념에 갇혀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유부남들이 대개 와이프를 '처갓집' 보내는 데에만 전전긍긍하고 있어요. 하지만 반드시 '처갓집'이어야만 할까요? 우리는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랬습니다. 사실 유부남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와이프의 친정행'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로 인해 따라오는 '혼자 있는 시간', '눈치 보지 않을 수 있는 자유' 그것이 곧 진정 유부남들이 갖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처갓집'에만 연연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대신 '어디로든', 모셔다 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경비를 대어주며 처가+와이프 여행 보내드리기

주변 유명한 관광지, 맛집, 카페 등을 모셔다 드리기

백화점 상품권, 연극 티켓, 영화 표, 뮤지컬 티켓 등 선물하기

한적하고 고즈넉한 펜션 잡아 모시기


그야말로 처갓집 챙기기, 와이프한테 점수 따기, 그리고 본인의 자유 시간까지 모두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A씨는 덧붙였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왜 자유 시간을 날로(?) 드시려 하십니까. 자유를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대가를 지불하여야 합니다. 돈을 쓰세요. 자유는 공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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