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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쳐다보지 않는 조언자

바넘 효과(Barnum effect)를 경계하라

  얼마 전에 유명 저자의 ‘처세술’ 서적을 한 권 읽었다. TV에도 자주 나오는 유명한 분이라 호기심이 동했고 특히 내가 선택한 전공에 가까이 계신 분이라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책으로 시선이 향했다. 경제, 경영 등과 무관해 보이는 분야의 전문가는 비즈니스에 대한 어떤 색다른 통찰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즉. 통섭의 시대에 걸맞은(사실 내가 보기에 통섭의 시대란 말은 거창하다. ‘살아남기 위해 뭐 한 가지라도 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라고 하는 것이 보다 더 신랄하지 않은가) 새로운 지평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그 책을 집어 들며 걸었던 기대는 그러했다.





  치킨 한 마리는 사 먹을 수 있었을 돈이 아까웠던 탓이다. 그래서 기대와 달리 책의 내용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꾸역꾸역 읽었다. 프롤로그는 그럴 듯했으나 거기까지였다. 처세술에 대한 책이 맞는지 의심이 갔다. 자신이 속한 분야 내의 주요 사건 사고들을 소개해주면서 훈훈한 성공담을 적절히 곁들이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도 잠시 잊고 있어 미안했다는 듯 글 마지막에 '노하우'를 덧붙이는 수고를 잊지는 않았다. 가령 이런 식으로. ‘비즈니스를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적절하게’ 정보를 선별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추진하라. ‘주관적 믿음’ 보다는 ‘객관적 자료’를 중시하고, 타인의 ‘속임수’에 걸려들지 않아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게 다였다. 단연코 이런 성의 없는 ‘립서비스’는 우리의 삶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니까. ‘적절하게’, ‘잘’, ‘효율적으로’, ‘민첩하게’, ‘예리하게’, ‘분별력 있게’, ‘신중하게’, ‘스마트하게’ 하면 잘할 수 있겠지. 암.


  사실 종종 놀라는 것은 자기계발서들의 분량이다. 흔한 자기계발서를 한 권 떠올려보라. 얼마나 많은 정보들이 담겨있기에 대개 다 몇 백 쪽 씩이나 하는지, 처음에는 일단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떨까? 일단 누구나 다 아는 흔한 성공 사례들을 빼면 분량의 1/3이 사라진다. 다음으로 ‘내가 해보니까 잘 되던데?’ 식으로 구구절절 나열해 놓은 저자의 개인적 자랑들을 빼면 마찬가지로 분량의 1/3이 또 사라진다. 자 이제 남은 1/3은 무엇인가. 앞서 이야기한 바로 그것들이다. 시간 배분 ‘잘’ 하라. ‘스마트하게’ 앞서 나가라. 엄무를 ‘효율적으로’ 하라. 인맥을 늘려라. 등 돈 안 들이고 SNS만 접속해도 볼 수 있는 그런 ‘명언’들이다. 왜 자기계발서가 저자들의 유명세에 기대는지 알만 하지 않은가. 딱히 남는 것이 없음에도 자기계발서를 굳이 구입하는 것은 이제 ‘실용적인 목적의 추구’보다는 단지 저자에 대한 '팬심’이나 찰나의 '동기부여' 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이쯤 되면 블라인드 테스트라도 한 번 해보고 싶어진다. 저자들의 '이름값'을 모조리 가려놓으면 여기서든 저기서든 하는 말이 다 매한가지라는 것이 보다 분명해질 터이다.



  



  물론 자기계발서들이 모호하기 짝이 없는 단어들만 열거하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는 있다. 당신 한 명이 아닌, 모호한 일반 대중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 했기 때문이리라. 저자들은 독자 한 명 한 명이 누가 될지 모른다. 그래서 저자들 스스로는 원하지 않았어도, 대중적이기 위해 애써 말랑말랑하게 책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것을 이제 독자인 우리들의 입장으로 바꿔보자. 그래서 저자들의 조언은 당신 개인을 위해 ‘맞춤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저자가 하는 이야기들이 마치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인 것처럼 착각한다(이 현상이 너무도 흔한 나머지, 심리학자들은 여기에 대해 바넘 효과(Barnum effect)라는 용어마저 등장시켰다). 그러나 이렇게 한 번 상상해보라. 저자와 당신이 마주 앉아있다. 저자는 이제 당신에게 삶에 관한, 업무에 관한 조언을 들려줄 태세다. 당신은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저자에게 눈을 맞추고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런데 정작 저자는 나를 전혀 쳐다보지 않고 조언을 들려주고 있다. 도대체 나에게 하는 말인지,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인지 당신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상대는 나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뜬소리’나 하고 있고, 심지어 나를 쳐다보고 있지도 않다. 그런 상대방에게 당신은 신뢰를 보낼 수 있는가?


  자기계발서를 맹신하면 안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신의 문제는 그 누구보다 당신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당신이 처한 상황이 어떠한지, 그리고 더 나은 상황으로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인지는 당신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반면 자기계발서의 저자들은 당신이 처한 상황을 전혀 모른다. 당신이 누구인지조차도. 그러니 당신의 문제를 자기계발서에 오롯이 ‘내맡기지’ 말라. 힘들고 고민될수록 오히려 자기 자신의 내면을 더 들여다보고, 자기 자신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차라리 낫다. 자기계발서는 당신에게 10가지 법칙이니, 20가지 법칙이니 자신의 말대로 ‘하라고’ 종용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결코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은 자기계발서들을 ‘실용적인 목적’으로 대하려는 이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팬심’ 때문에, 혹은 단지 성공 이야기를 보며 동기부여를 얻고 싶어서 자기계발서를 찾는다면 그것은 그것 나름이다. 그것까지 말리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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