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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May 24. 2020

나의 왕관을 내려놓을 때

주의 옷자락 만지며 주의 두발을 씻기며 주님 그 발에 입 맞추며

삼십 대 후반과 사십 대 초반은 내 인생의 정점을 찍었던 시절이다.

하지만 그 정점과 더불어 가장 밑바닥으로의 추락을 맛보았던 때이기도 하다.


정점에 올라 있던 때는 모든 사람이 나를 부러워했고 나 자신도 무척 교만해 있었다.

조직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성취를 이루었고 보스는 그런 내게 많은 기대를 걸었다.

선배도 동료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내가 곧 쓸 것 같은 왕관과 왕좌만 보였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옆을 보지도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갔다.


하지만 곧 원인과 실체를 알 수 없는 실망감과 좌절감과 불안감이 나를 엄습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고 보스가 기대하는 것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자책감과 절망감이 들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Burnt out!

그 왕관의 무게와 왕좌의 버거움이 나를 억눌렀던 것이다.


왕관과 왕좌는 내게서 점점 멀어져만 갔다.

어떤 선배가 말했다. "천하의 000이 왜 이러고 있냐?"

그땐 격려의 말처럼 들렸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만 방자함에 대한 그 선배의 비난과 조롱의 말투였다.


지금은 알고 있다.

그때 주의 옷자락을 만져야 했다. 그때 주의 두 발을 씻겨야 했다.

그때 주님의 그 발에 입 맞춰야 했다. 그때 나의 왕관을 내려놓아야 했다.

Burnt out 되기 전에 그래야만 했었다.

하지만 그리하지 못했다. 아니 그리하지 않았다.

지치고 병들었지만 조금만 더 가면 왕좌에 앉아 왕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무거운 왕관의 무게에 짓눌리고 엄청난 왕좌의 버거움에 지쳤을 때,

주님께서 나의 무거운 왕관을 벗겨 주셨다.

주님께서 나의 버거운 왕좌를 거두어 주셨다.

그제야 나는 안정감을 얻었다. 마음의 평안을 회복했다.


이젠 평안함과 감사함으로 찬양할 수 있다.

그 무거운 왕관과 버거운 왕좌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도 잘 안다.

"주의 옷자락 만지며 주의 두발을 씻기며

주님 그 발에 입 맞추며 나의 왕관을 놓으리!"


https://blog.naver.com/lineeye/221903137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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