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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May 31. 2020

임지현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역사 자료를 공부한 가짜가 진짜 경험자보다 더 정확할 수도 있다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윤미향 사건은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역사적 사실은 무엇인가? 역사 인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사회운동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언론 보도 내용으론 과반수 이상의 국민들이 분노한다지만, 정작 대국민 인터뷰를 하는 정미향의 모습은 무척 당당했다. 그를 지지하는 어떤 국회의원은 그가 잘못이 없기에 당당한 것이라고 대변한다. 반대편에 선 국회의원은 그가 너무 뻔뻔하다고 비난한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다. 다만 정치적 공방에 의해 역사적 사실이 곡해되거나, 시민운동이 퇴색되지 않길 바랄뿐이다.


임지현이 쓴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엔 흥미로운 글귀가 있다. 역사 자료를 공부한 가짜가 실제 사건을 경험한 진짜보다 더 정확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정미향 사건과는 별개로 한번쯤 깊이 생각해봐야 할 내용이다. 그 문장들을 소개한다.


기억의 퇴적물인 증언은 문헌기록에 비해 부정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을 재현하는 역사적 진실게임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해자/지배자들이 내러티브와 역사를 독점하고, 피해자/희생자들은 경험과 증언밖에 없는 상황은 역사를 재현하는데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부정확한 증언이 정확한 증거보다 더 중요할 수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은 역사 인식론과 도덕성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가해자가 남긴 문서화된 증거가 피해자의 희미한 증언보다 더 정확한 것인가? 가해자가 지워 버린 증거는 어떻게 하나? 자신이 개입한 문헌 증거를 없애 버리고 가학행위를 부정하는 가해자와 그를 가해자로 지목한 피해자의 증언이 충돌할 때 역사가가 택해야 하는 자세는 무엇인가?


심리학자 Dori Laub은 자기 눈앞에서 일어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건을 기억하는 증인의 기억은 과장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지식으로 얻어진 기억은 사실과 부합하지만, 트라우마처럼 깊이 새겨진 기억은 과장된 감정 속에서 사실과 어긋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지식의 기억과 깊은 기억 중에서 기억의 진정성이 후자에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아우슈비츠의 가짜 생존자들이 만든 회고록이 진짜 회고록보다 사실면에서 더 정확한 경우가 많다. 이들의 가짜 기억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자료를 공부해서 만들어 낸 것이기에 역설적으로 더 정확한 것이다.


임지현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소나무,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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