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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Jun 23. 2020

처갓집 같은 전원 속의 처형 댁

처형은 생전의 장모님처럼 늘 뭔가를 바리바리 싸주신다

월요일과 화요일의 서울 낮 기온이 35도가 넘을 거라는 일기 예보를 들었다.

더운 날 하루쯤 시골에서 시원하게 보내고 싶었다.

월요일에 휴가를 냈다.

시골에서 농장을 하는 둘째 처형 댁에 갔다.

피서도 하고 입원했던 손위 동서에게 인사도 할 겸 내려갈 요량이었다.

아내는 반영구 눈썹 화장을 하기 위한 예약이 잡혀있다고 해서 별 수 없이 혼자 가야 했다.

러시아워를 피해서 10시 반쯤 집을 나서 서해안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교통량이 많은 구간도 아니고 휴가 철도 아닌데 차가 많았다.

정체하는 시간과 구간이 늘어나면서 졸렸다.

창문을 내리는데 전화가 왔다.

큰 동서였다.

어디쯤이냐고 물었다.

티맵을 보니 20분쯤 남았다고 했다.

밀리던 차들이 속도를 내면서 졸음도 달아났다.

1차선으로 들어서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처형 댁에 도착했다.

큰 처형과 둘째 처형이 반갑게 맞아줬다.

집 안에 들어서니 커다란 소쿠리로 쑥개떡이 잔뜩 있었다.

새벽부터 처형이 개떡을 만들었다고 한다.

출출하던 차에 개떡을 집어 들었다.

맛. 있. 었. 다.

점심 메뉴는 닭볶음탕, 찹쌀밥, 제철 나물이었다.

배. 부. 르. 다.

소화를 시킬 겸 세차를 했다.

도시 사람들이 시골에 오면 대부분 세차를 한다.

각종 규제가 많은 도시에서 특히 아파트 단지에선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환경오염을 생각해서 물만 뿌리고 헝겊으로 닦아냈다.

차도 깨끗해지고 마당도 시원해졌다.

한. 숨. 잤. 다.

어느덧 저녁 식사 시간이다.

메뉴는 큰 처형이 가져온 제주 흑돼지다.

야외 그늘에 둘러앉았다.

큰 처형 내외, 작은 처형 내외와 조카, 그리고 지인 두 분과 나.

8명이 둘러앉아 불판에 고기를 구워댔다.

배. 부. 르. 다.

하지만 곧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잠시 커피를 마시면서 쉬는 동안 큰 처형은 감자를 캔다고 했다.

다른 날 같으면 상추도 뜯고 감자도 함께 캤을 텐데, 뜨거운 오늘은 그런 날이 아니었다.

아내가 같이 오지 않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하기 싫었다.

시원한 에어컨 밑에 앉아 있는데 큰 동서가 불렀다.

집에 갈 보따리를 쌀 시간이다.

손이 큰 둘째 처형이 이것저것 꺼내오기 시작했다.

감자, 상추, 바나나 얼린 것, 닭 얼린 것, 알타리 김치, 쑥개떡, 그리고 몇 가지 더.

아내가 챙겨 준 코스트코 장바구니와 커다란 보냉백이 꽉 찼다.

SUV 트렁크가 가득 차고 묵직해졌다.

처형 댁에 다녀갈 땐 항상 트렁크가 가득 찬다.

장모님도 생전에 그러셨다.

아내가 막내딸이다 보니 더욱 그러신 것 같다.

처갓집에 다녀갈 땐 뭐든지 하나라도 더 주시려고 했다.

꾸깃꾸깃 감춰놓으셨던 용돈까지 주셨다.

처형도 똑같다.

생전의 장모님처럼 늘 뭔가를 바리바리 싸 준다.

쉼이 있고, 정이 있고, 기다림이 있고, 그리움이 있는 곳.

처갓댁 같은 전원 속의 처형 댁.

그곳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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