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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Aug 03. 2020

여름휴가 중에 생긴 에피소드

예상치 못한 일에도 여유롭게 웃을 수 있는 이유

올여름휴가는 사전 계획이 전혀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장마로 여름에는 여행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 K가 부부동반 여행을 갑자기 제안했고, 아내와 상의한 끝에 함께 남해 쪽을 다녀오기로 했다.


첫 번째 에피소드다. 여행을 떠나던 날, 장마전선의 북상으로 휴가 지역의 날씨가 좋을 것이라는 예보를 들었다. 부부 동반 여행이 처음이나 마찬가지라는 K 내외와 넷이 7080 노래를 흥얼대며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충청도 지역에 접어들자 앞서가던 차들이 비상 깜빡이를 켜고 속도를 줄이더니 급기야 멈추었다. 고속도로상에서 시동을 끈 채 거의 세 시간가량 주차 상태로 있었다.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모두가 일성으로 이것도 추억이라며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비가 그친 후의 쾌적한 날씨가 분위기를 더 멋지게 만들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니 고속도로 주차장도 휴양지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길이 뚫린 후에 보니 무너져 내려서 도로를 막았던 엄청난 양의 토사를 제거하느라 두어 시간이 소요되었던 모양이다.

주차장이 된 고속도로

예상시간보다 세 시간 늦게 남해에 들어섰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하늘에 구멍이 나면 이럴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퍼붓더니 목적지인 독일마을 인근에 다다르니 소강상태가 되었다. 저녁 메뉴로 죽방멸치조림과 양고기 스테이크를 놓고 옥신각신하다가 K가 좋아한다는 양고기를 먹기로 했다. 평생 일만 하고 놀아보지 못했다는 K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의외로 양고기 스테이크가 괜찮았다. 식사 후 숙소에 도착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 출신 교포가 운영하는 독일마을 내의 숙소였다. 독일마을이 처음이라는 K 부부는 이국적인 마을 풍경에 흡족해하는 것 같았다. 우리 부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독일마을 전경
아침 안개에 가려진 독일 마을

두 번째 에피소드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벌 두 마리가 윙윙 거렸지만 크게 거슬리진 않았다. 우리가 먼저 도발하지 않으면 그것들이 달려들지 않을 테니까. 산 중턱의 시골 마을답게 금방 어둠이 몰려왔다. 아내가 먼저 샤워실로 들어갔다. 몇 분 뒤에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아내는 어둠 속에서 샤워를 해야 했고, 주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차례 전화를 건 후 연결된 주인아주머니의 말씀, “정말 미안한데 산책 나가신 아저씨가 돌아오셔야 고칠 수 있어요.” 우리는 이것도 또 하나의 추억이라고 얘기하면서 기다렸다. 주인아저씨가 돌아와서 내려간 주차단기를 다시 올리자 전기가 들어왔다. 주인아주머니의 말씀, “방마다 모두 에어컨을 켠 상태에서 세탁 건조기를 돌려서 주차단기가 내려갔어요.” 헐~

독일 마을 광장 입구, 뒤쪽에 전시관 입구가 보인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독일 마을

세 번째 에피소드다. 지난번 독일마을 관광 때는 독일 가정식 아침식사가 인상적이었다. 조식 제공 여부를 묻자 이십 년째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신다는 주인댁은 초창기엔 했지만 이젠 늙고 힘들어서 못한다고 하셨다. 남편들은 라면과 독일 소시지, 아내들은 독일 소시지와 에그 스크램블로 우리끼리 자체적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내가 요리를 맡았다. 아침 식사에 모두 만족스러워했다. 몇 개 남은 달걀은 삶아서 이동 중에 간식으로 먹을 요량이었다. 계란을 삶던 중, 가스불이 꺼졌다. 그냥 두고 가려다가 주인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 한 번에 받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해서 연결이 되었다. 가스가 안 나온다고 하자 시크하게 대답하시는 주인아주머니 말씀, “가스통이 다 된 것 같군요. 다른 통으로 돌려놓을게요.” 몇 번을 켜 보았는데 가스가 안 나왔다. 한참 후에 다시 켜보니 그제야 가스버너가 작동했다. 극성수기라서 연중 최고 상한가를 지불한 숙박비를 생각하면, 정말 짜증날만 한 주인아주머니의 울트라 슈퍼 시크한 태도였다. 하지만 우린 모두 웃어넘길 수 있었다. 친구 부부간의 좋은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고, 실제로 별로 짜증스럽지도 않았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마음도 너그럽고 여유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원예촌의 어느 포토존
원예촌에서 내려다 본 전경

둘째 날은 독일마을 전시관을 가장 먼저 둘러보았다. 탄광에 들어가면서 “살아서 돌아오라”는 인사를 했다는 파독 광부들의 이야기에 마음 한편이 먹먹해졌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급여가 독일 차관을 가능하게 했고, 그것을 포함한 재원을 기반으로 한강의 기적이 이루어졌다는 역사를 상기했다. 어제 묶었던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주머니의 사진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시크한 아주머니, 과묵한 아저씨 감사합니다. 원예가들이 모여 세계 각국의 정원을 만든 원예촌, 미국 교포들이 만들었다는 미국 마을, 다랭이 논으로 유명해진 다랭이 마을을 거쳐 거제도와 부산 중 어디로 갈지 상의하다가 부산으로 향했다. 전라도 태생인 K의 아내가 부산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K가 에어비앤비로 해운대 해수욕장의 60평 아파트를 예약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택시로 자갈치 시장으로 향했다. 기사님께서 이동경로의 곳곳을 설명해 주셨다. 여행 가이드 같은 기사님 덕분에 우리의 부산 여행은 풍요로워졌다. 생선회와 대게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해운대의 고층 아파트에서 야경을 보면서 풍성한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는 해변을 걸으며 부부 데이트를 했다.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로 하루를 시작했다는 파독 광부
미국 마을 입구
다랭이 마을 전경
16층 숙소에서 내다 본 해운대
COVID OUT, 마스크 착용
해수욕장 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해야만 한다. 이게 가능해?
새벽 해변은 비치파라솔을 설치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숙소 주변의 해운대 야경
자갈치 시장의 휴식 공간

마지막 날, 새벽 해변을 산책하고, K가 가고 싶어 하는 아쿠아리움에 들렀다. 모두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어서 경주를 거쳐서 천북 한우마을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포항 호미곶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잘 맞고 편안한 이들과의 여행은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어준다. 기분 좋은 여행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도 웃어넘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한다.

아쿠아리움 수족관 위에서
담수어 중 최대의 크기를 자랑하는 피라루크
호미곶에서 K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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