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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Jul 20. 2020

우리 시대의 Carpe diem은 어떤 의미인가?

고대 로마, 중세 말, 그리고 20세기의 Carpe diem을 반추하며

라틴어인 Carpe diem은 영어로 Seize the day 또는 Pluck the day, 우리 말로 현재를 잡아라 또는 현재를 즐겨라로 번역한다. carpe diem은 고대 로마시대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세 말 유럽에 흑사병이 유행하던 시절의 인사말이었고, 20세기엔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의 대사로 유명해졌다.


로마 제국의 황제 카이사르에게 옥타비아누스라는 조카가 있었다. 카이사르는 옥타비아누스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고 싶었지만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옥타비아누스는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로마를 다스리게 되었다. 당시 로마 제국은 많은 전쟁을 치렀고 백성들은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다. 옥타비아누스는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로마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가 된다. 더 이상 옥타비아누스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로마의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시인 호라티우스는 자신의 시집에 Carpe diem이라는 말을 쓴다. 그동안 수많은 전쟁을 겪으며 슬픔과 공포에 휩싸였던 로마인들에게 이젠 마음 편히 쉬어도 된다는 의미였다. 호라티우스는 Carpe diem이라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살았다. 자신의 부관이 되어달라는 황제의 청을 거절하고 일평생 자기의 삶을 즐기며 살았다. 그 이후로 로마인들은 Carpe diem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게 되었고, 마음 편하게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살자는 뜻을 되새겼다고 한다.


중세 시대 말기의 Carpe diem은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1/3이 죽어가던 시절의 인사말이었다. 생사의 기로에서 선 이들의 마지막 날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모르던 시절, 그들에게 남겨진 마지막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라는 의미로 사람들이 서로서로 한 마디씩 건네던 말이 Carpe diem이라는 것이다. 당시 흑사병은 흉작과 기근으로 그 전염 속도가 가속화되어 당시 유럽 전체 인구의 30%에 해당하는 2천5백만 명 정도가 사망했다고 한다. 이 당시 창궐했던 흑사병으로 유럽의 인구 감소와 노동력 감소에 따른 영주의 권력이 약화되고, 다른 요인과 결합하여 궁극적으로는 봉건제도가 해체되고 절대 왕정이 들어서게 되는 주 요인이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20세기 말에는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Carpe diem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면서 유행어가 되었다. 전통과 규율에 도전하는 자유정신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였던 것이다. 좋은 대학 진학과 취업 준비라는 미명 하에 학창 시절인 현재 삶의 낭만과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하는 학생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그 무엇보다도 확실하고 중요한 순간임을 일깨워 준 말이었다.


호라티우스의 Carpe diem은 전쟁이 끝나고 평화의 시대를 맞이 한 백성들에게 이젠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오늘을 소중히 여기면서 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중세 말기에는 흑사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이들에게 인생의 마지막 날을 의미 있게 보내라는 인사였다. 20세기 말에는 학생들에게 전통과 규율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를 추구하라는 도전의식을 심어주는 말이었다. 우리 시대의 Carpe diem은 어떤 의미인가?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는 세월호 안에 남은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며 자기들만 살아남은 기성세대,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만들자"라고 외치면서 자기들은 정의롭고 공정한 삶을 보여주지 못한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자녀세대에게 우리 시대의 Carpe diem은 이런 의미라고 알려줄 자격이 있는지 부끄럽다.


오스 기니스가 [오늘을 사는 이유]에 쓴 말을 빌어보면, "한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시간에 대한 올바른 관심이 개인의 생활 방식에서부터 사회의 역사와 문명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는 "가장 위대한 시간관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고 즐길 수 있다"라고 하였다. 오스 기니스의 Carpe diem은 시간의 의미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 오스 기니스, [오늘을 사는 이유], IVP,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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