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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Jul 20. 2020

E.H.Carr [What is History?]

E.H.Carr의 주장과 강원국의 해석

E. 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 어떤 이는 고전이라 칭하고, 어떤 이는 1960년대 영국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책일 뿐이라고 한다. 카의 서적을 “내 인생의 책”이라고 극찬한 강원국이 받은 세 가지 영감을 옮겨 본다.


많은 이들이 읽는 책은 다 그 이유가 있다. 첫째, 사건을 해석할 때 사건을 일으킨 개인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를 봐야 한다. 역사는 영웅주의적 이해에서 벗어나 사회적 과정으로 해석해야 한다. 둘째, 모든 사건은 우연적 요소와 필연적 요소가 결합해 나타난다. 필연적 요소는 그 사건이 반드시 그때 거기서 일어나야 하는 이유로, 그 사건을 일으키게 만든 앞 사건과의 인과관계가 분명하다. 그에 반해 우연적 요소는 그런 인과관계가 희박하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바로 그런 필연적 요소가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셋째, 지난 역사 안에 미래가 담겨있다. 현재의 역사를 사는 우리가 생각하고 노력하는 만큼 앞으로의 역사가 전개된다. 현재 안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그런 점에서 ‘과거는 상상하고 미래는 기억하라’는 카의 권고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거를 끊임없이 상상하고 반추해야 하며, 현재의 모습을 통해 만들어질 미래를 잊어선 안 될 것이다. - 강원국, “역사에 관한 다섯 가지 질문,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사) 한국대학출판협회 서평집, <시선과 시각> 2016-1호, 42-43쪽.


객관적인 역사는 존재하는가? 역사란 역사가의 경험이다. 역사가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역사를 서술하는 것만이 역사를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 E. H. Carr, [역사란 무엇인가], 김택현 역, 까치, 1997, 50, 87, 156쪽.


역사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역사가는 사실에 있어 틀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확성은 의무이지 미덕은 아니다. 어떤 역사가를 정확하다는 이유로 칭찬하는 것은 어떤 건축가를 잘 말린 목재나 적절하게 혼합된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집을 짓는다는 이유로 칭찬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그의 작업에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인 기능은 아니다. [E. H. Carr, 21쪽]  역사가는 수많은 사실 중에서 특정한 사실을 선택하여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록한다.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의 생각과 필요에 따라 역사가로부터 취사선택되며, 이때 역사가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종류의 사실만을 선택한다. 역사는 결국 역사가의 해석을 의미하며, 역사란 현재의 눈을 통해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다. [E. H. Carr, 185쪽]   역사가는 개인이면서 또한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다. 온전히 가치중립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의 가치관이나 이익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대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역사가를 마치 독수리처럼 여길 때가 있다. 그렇게 높은 하늘에서 역사라는 지상을 내려다보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객관적인 안목으로 관찰하는 존재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행렬의 일원이 되어 지상 위를 터덜터덜 걸어가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행렬의 영향에 부대끼면서 말이다. 따라서 역사는 항상 새롭게 해석, 평가될 수 있고, 역사를 보는 사람의 시각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E. H. Carr, 57-58, 71쪽]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역사의 사실은 과거에 속한다.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에게 필수적이다. 사실을 가지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쓸모없는 존재이다. 역사가를 가지지 못한 사실은 죽은 것이며 무의미하다. 따라서 역사란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E. H. Carr, 50쪽; 강원국, 36-38쪽]


역사는 우연적 산물인가, 필연적 결과인가?  카는 역사에서 결정론이나 우연을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원인으로 인해 어떠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결정론적 역사 인식이나, 우연한 사건으로 역사가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 연구는 원인의 연구인데, 역사적 사건은 하나가 아닌 여러 원인을 지니기 때문에 그것들의 상호 관계를 찾는 것이 올바른 역사 해석이라고 강조한다. [강원국, 38쪽]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역사와 과학에 대한 다섯 가지 오해가 있다. 첫째, 역사는 전적으로 특수한 것을 취급하나 과학은 일반적인 것을 취급한다. 둘째, 역사가 교훈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셋째, 역사는 예견할 수 없다. 넷째, 역사는 인간이 인간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다섯째, 역사는 과학과 달리 종교와 도덕의 문제를 내포한다. [E. H. Carr, 98쪽]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방적인 과정은 아니다. 과거의 빛에 비추어서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동시에 현재의 빛에 비추어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 간의 상호 관계를 통해 양자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북돋아 주는 데 있다. 역사가, 자연과학자, 사회과학자 모두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환경에 대한 인간의 작용, 인간에 대한 환경의 영향 등에 관한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구의 목적은 동일하다. 그것은 곧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지배력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E. H. Carr, 131, 164쪽]   역사가는 재판관이 되면 안 된다. 역사 속 인물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가가 역사적인 인물의 옳고 그름에 집착하면 더 큰 것을 볼 수 없다. 역사가와 도덕가의 입장은 다르다. 베버의 말을 인용하면 역사가는 제도를 만든 개인이 아니라 제도 자체에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역사가가 해야 할 일은 과거의 개인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 제도, 정책 등과 같은 배경을 탐구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것이 더 의미 있다. [E. H. Carr, 116-121쪽; 강원국, 39-41쪽]


역사는 진보하는가?  생물학에서 진화가 있듯이, 역사, 사회, 인류사에는 진보가 있다. 피부색은 생물학적 유전이고, 언어는 인간의 두뇌활동을 매개로 전승되는 사회적 획득물이다. 유전에 의한 진화는 몇 천 년, 몇 백만 년을 단위로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서, 유사 이래로 인간에게는 아직 이렇다 할 생물학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획득에 의한 진보는 세대를 단위로 측정할 수 있다. 이성적 존재로서 인간의 본질은 과거 여러 세대의 경험을 측정함으로써 자기의 가능성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점에 있다. [E. H. Carr, 171쪽]   진보에 일정한 시작이 있거나 끝이 있지 않다. 또한 일직선으로만 전진해 온 진보는 없다. 때로는 이탈, 중단, 후퇴가 있다. 가장 급격한 후퇴라 할지라도 진보에 대한 믿음에 치명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 또한 진보가 모두에게 평등하고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E. H. Carr, 172-175쪽]   나 자신으로 말하자면 낙관론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동하는 세계를 내다보며 진부하기조차 한 어느 위대한 과학자의 말을 빌려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래도 그것(역사)은 움직인다.  [E. H. Carr, 230쪽; 강원국, 41-41쪽]


E. 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 10-20대 꿈 많던 학창 시절에는 ‘금서’라서 접하기 어려웠고, 30-40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는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다가 못 읽고, 50대에 들어서야 정독할 수 있었다. 주옥같은 글귀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문구는 맨 마지막의 그래도-그것은 움직인다(And yet-it moves)’였다.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 김택현 역, 까치, 2018(개역판 15쇄), 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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