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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Jul 22. 2020

공화주의의 反평등적 평등사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공화국의 정치철학인 공화주의란 무엇인가?

공화주의는인간의 자질과 능력이 근본적으로 평등하지 않다고 보는 사상이다. 공화주의 사상은 사회 속의  인간은 1, 소수, 다수  부류에 속하며, 이는 , 귀족, 시민의 역할로 분화된다고 한다. 공화주의적 평등은 자질과 능력에 따라 , 귀족, 시민의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다. 17세기 영국 공화주의자 해링턴(James Harrington) 이상은 공익에 헌신하는 현명한 소수와 그렇지 않은 다수의 구별을 대전제로 . 결과적으로, 정치에 관한 논의는 소수 귀족과 엘리트가 하고, 결정만 다수 시민이  하는 ,  뛰어난 소수와 나머지 다수 간의 차등을 인정하는 것이 공화주의 평등관인 반평등의 평등사상이다.


뛰어난 소수와 나머지 다수의 차등을 인정하는 것이 공화주의적 평등이다.


공화주의는 그리스 도시국가 정치를 지배했던 고대 정치사상이다. 로마 제정이 붕괴된   영향력이 점차 약해졌다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풍미하였다.  이후 북유럽 군주·귀족 정치체제를 잠식하면서 17C 영국 정치 변혁과 18C 프랑스 구체제 전복을 주도 사상이 공화주의다. 공화주의 사상의 계보는 그리스 시대 아리스토텔레스와 폴리비우스, 로마 시대 키케로와 타키투스, 르네상스 시대 마키아벨리, 영국 해링턴, 그리고 해링턴 사상을 미국에 전수한 신해링턴주의자들로 이어졌다. 이들의 사상을 종합하면, 공화주의 사상은 다섯 개의 기본 관념으로 이어져 왔다. 법에 의한 지배,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자유가 아닌, 무기와 토지를 보유한 독립적인 시민이 공공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공화주의적 의미의 자유,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공공 정치체, 인민에 의한 정부 사상, 그리고 혼합 정체 사상이다.  공화주의 사상의 핵심 윤리는 공화주의적 덕성이며, 이것은 사치와 타락을 견제하는 것이다.  공화주의의 핵심은 덕성과 타락의 상호 대립과 긴장이다.


공화주의 핵심은 덕성과 타락의 상호 대립과 긴장이다.


공화주의는 균형적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개인과 국가 전체의 덕성을 위협하는 타락을 막으려는 공민 종교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3  어느 한쪽으로 균형이 기울어지는 것도, 토지와 무기가 시민적 평등에 근거하여 배분되지 않는 것도, 3 상호 간의 경외심이 없는 것도 모두 공화정을 위협하는 타락이다. 결국 공화주의 사상에서   정치의 근본적인 목적은 계층 상호 간의 존중을 통해 덕성을 보존함으로써 특정한 계층의 타락을 막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화주의는 덕성과 타락 간의 팽팽한 긴장을 토대로 해서 정치를 파악하는 정치 윤리이며 정치 도덕이라고도   있다.


동양에서는 폭정을 일삼던 려왕(厲王)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중국 주(周) 나라 제후들이 왕을 대신하여 집정하던 기원전 841~828년까지의 시기를 가리키면서 공화(共和)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다. 공화제의 의미를 왕이 없이 정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한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왕정(王政)이 아닌 제후들의 집단적인 통치를 의미하던 공화라는 용어가 영어 republic의 번역어로 쓰이게 된 것이다. republic은 공공의 것을 뜻하는 라틴어 res publica가 그 어원이다. 이 용어의 의미는 로마 시대의 철학자이면서 정치가인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가 그의 저서 국가론(De Re Publica)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공화정(res publica)은 공중의 관심사(res populi)라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중(populus)이 모든 종류의 인간 집단(coetus)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공중은 정의에 대한 합의(iuris consensus), 그리고 공유된 이익(utilitatis communione)에 의하여 이루어진 협력(societus)이다.     


공화란 공중의 관심사(res)라는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공화정의 근간이 되는 것은 정의에 대한 공중의 합의와 공유된 이익이다. 여기서 합의 또는 이익은 근대적 의미의 사회계약적 동의 또는 물질적 혜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공유한다는 의미를 그 시대의 용례에 비추어보면, 합의된 삶의 조건을 공유함으로써 나타나는 상호 이해와 그로 인한 공감대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공감대는 비지배적 조건을 상호 인정하며, 이러한 비지배적 조건 구축을 위해 공동의 관심을 갖고, 이 공동의 관심사를 실현하기 위한 협력의 결과를 법으로 구성한다는 것이다. 즉, 공동의 선호를 집약한 것이 아니라 심의의 결과로써 정의와 법을 규정하는 구성주의적 성격, 그리고 동질성에 기반을 둔 공동의 결속이 아니라 다양성과 타인의 이익에 대한 존중에 기초한 통합을 지향하는 것이 공화라는 것이다. 여기서 키케로의 논의에 의하면, 공화는 단순한 이익을 위한 결사체도 아니고 공익과 사회적 재분배를 위한 시민적 연대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공화는 시민의 정치 참여를 통해 정의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고, 정치가에 의한 조정에 의해 시민적 자유와 민주적 권위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사려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키케로는 공동의 정의, 공동의 법, 그리고 공동의 이익을 인정하고 동의한 사람들의 정치공동체인 공화정은 순수 정체에 대립되는 혼합정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순수 정체는 어느 한 계층이 지배권을 행사하며 한 사람이 지배하는 민주정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민주정과 같이 어느 한 계층이 권력을 독점한 정체에서는, 초기에는 정치를 잘할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견제세력의 부재로 인한 나태와 타락이 스며들게 되고 이로 인하여 공동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특정한 지배 계층만의 이익을 위한 배타적인 정치를 펴게 된다. 즉, 배타적 권력 독점으로 인하여 지배 계층이 아닌 타 계층에 대한 지배와 부패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혼합정은, 여러 계층과 다양한 세력이 혼합되어야 그 정치체제가 건강해지므로, 정치 공동체를 구성하는 계층들 간의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 모든 계층을 하나로 단일화시킬 수도 없고 그렇게 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 공동체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 계층의 원활한 상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혼합정은 다양한 계층 간의 조화와 균형 속에서 상호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계층 간의 배제와 차별 또는 획일화는 구성원들이 정체에 대한 불만을 갖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정치체제의  불안정과 그 체제의 몰락을 초래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계층 간 긴장관계를 유지하되 그것이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갈등으로 확산되는 것은 방지해야 한다. 다양한 계층의 긴장관계를 잘 조절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의 장점과 활력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계층 간의 배제와 차별, 또는 계층의 획일화를 가져오는 예속적 지배 관계는 그 공동체를 몰락시키는 주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혼합정의 관점에서 공화주의의 핵심가치는 예속적 지배 관계를 억제하여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체제에서 지배계층으로부터 예속받지 않을 수 있는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참여 공간을 점유했을 때에만 보장된다. 즉 정치에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져야 하며, 제도적으로 그것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의적 지배와 상반되는 자유의 지배는 다양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정치 참여와 이를 보장하는 법치의 구현을 통해 가능하다. 이와 같은 참여와 법치의 의미는 혼합정의 이념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혼합정의 이념은, 공화정(res publica)이 통용되던 로마시대에 생긴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처음 나타난 것이었다. 혼합정 이념은 민주정의 급진화로 인한 정치 혼란을 겪은 아테네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나온 것이다. 민주정의 급진화는 아테네가 해상제국으로써 국력이 커지면서 시민 계층으로 편입하게 된 빈민 계층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정치를 좌지우지했던 것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한 고대 정치 철학자들은 특정 계층이 권력을 독점하고 정치를 편향적으로 이끌어서 몰락한 아테네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혼합정만이 안정되고 바람직한 정체라고 주장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반 백성과 귀족, 가난한 자와 부자가 모두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각 계층에게 이익이 되는 요인을 정치 체제에 혼합시킬 것을 요구했다. 예를 들면, 민주정에서 민회에 참여하거나 배심원으로 재판정에 참석할 때 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가난한 자의 입장을 고려한 요인이다. 반면 여기에 참석하지 못할 경우에는 궐석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은 가난한 백성보다는 귀족층에게 더욱 유리한 제도이다. 귀족제와 민주제의 혼합  시도로 행정관을 임용할 때 선거와 추첨을 혼합하기도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산층이 일반 백성과 귀족층의 대립이 발생할 경우에 그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중산층 역할에 대한 신뢰는 아테네 역사에서 얻은 교훈이다. 부자와 귀족층은 항상 자신들의 권력을 더욱 확장하고 가난한 자들을 예속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그리고 일반 백성들은 자신의 작은 이익에도 눈이 멀어져서 귀족층에 비굴하게 복종하기도 하고, 때로는 개혁을 외치면서 정도를 넘어서는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일반 백성과 부유한 귀족층의 일방적이고 과도한 성향을 제어할 수 있는 계층이 중산층이었던 것이다. 중산층의 역할은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광범위한 시민 계층을 정치에 참여시켰던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을 통해 드러났고, 시민 계층을 중심으로 구성된 중무장 보병대가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대군에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혼합정은 공동체 구성원들 중의 일부 계층이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하여 공동체 전체를 좌지우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특정 계층의 지배가 없도록 만들어서 공동체에서 어느 특정 계층의 힘이 막강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지배의 부재는, 힘 또는 정치권력의 부재가 아니라, 정치권력의 균형을 의미하는 것이다. 몰락의 위기에 처한 공동체를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부터 혼합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정치 공동체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각각의 계층을 배제하거나 차별하면 안 된다. 배제와 차별은 공동체 구성원 계층 간의 극단적인 대립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혼합정은 광범위하면서도 합리적인 계층인 중산층을 지렛대로 삼아 일반 백성과 귀족 계층의 포함한 모든 계층의 구성원들을 정치에 참여시키고 각각의 계층에게 적절한 정치적 공간을 할당함으로써 안정과 균형을 이루고, 모든 정치 공동체 구성원들을 결속케 함으로써 그 공동체의 활력과 힘을 키우고자 한 것이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가 제시하였던 도덕에 무관심한 지도자상으로 인해 많은 사상사들이 마키아벨리를 사악한 정치사상가로 매도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란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유연한 대응이라는, 마키아벨리의 정치관을 이해하지 못한 비판이다. 왜냐하면 마키아벨리는 군주정(君主政)과 공화정(共和政)에는 각각의 체제에 적합한 별도의 운영 방식이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즉, 군주정에는 주인인 군주에게 적합한 지배 방식이 있고, 시민이 주인인 공화정에는 그 정체에 맞는 운영방식이 있다고 하였다.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를 지향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로, 공공선을 인정하는 평등한 시민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로운 국가를 갈망했다. 당대의 공화주의자들은 자유로운 공화국에서만 시민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는데, 마키아벨리 역시 이와 같은 신념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 시대의 공화적 자유의 개념은 타인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종속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그 시대의 공화주의자들은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타인들에게 의존해서 살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타인들에게 의존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태에서 타인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종속시키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법의 의지에 자신의 의지를 종속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연유로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이 법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마키아벨리는 자유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궁극적으로는 법률로 정비된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시민들이 자유를 갈망하면 할수록 공화국은 법률로 더욱 잘 정비된다고 믿었다. 법률의 권위가 세워지려면  그 법률을 제정한 당사자인 정치지도자들이 스스로 엄격하게 그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공화국을 지배하는 근본은, 군주 또는 정치지도자들이 아니라, 법률이다. 그는 법률로 잘 정비된 공화국이 바로 자유로운 공화국이고, 이 공화국에서 시민들이 법을 잘 준수할수록 시민들이 더욱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마키아벨리의 공화적 자유는 시민이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경우에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유로운 공화국에서만이 시민들은 자유로울 수 있으므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시민들이 전쟁터로 나가는 것은 국가를 지킬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자신의 의지도 지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로운 시민은 필수적으로 군역(軍役)의 의무를 다해야 하며, 어떤 행위를 하기 전에 먼저 사회의 공공선(公共善)이 무엇인가를 고려해 보아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의 시민들이 도덕적인 덕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처럼 시민들이 타락하지 않은 도시 또는 국가에서는 공공사(公共事)를 용이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키아벨리는 도덕적인 덕을 갖춘 시민들이 지배하는 정부가 군주가 지배하는 정부보다 훨씬 낫다고 주장하였다. 권력을 사랑하는 군주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권위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훌륭한 이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반면, 자유를 사랑하는 인민은 상대적으로 군주보다 덜 두려움을 느껴 국가적으로 훌륭한 인물에 대해 배은망덕한 짓을 훨씬 적게 한다. 또한 법의 규제를 받는 시민들은, 잘 정비된 법률과 제도에 따라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법의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군주보다 더 옳은 결정을 할 수 있고, 정치지도자를 선출할 때에도 군주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프랑스혁명을 경험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자유가 수반되지 않는 평등은 전제정치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랑스혁명 당시 수많은 시민들이 신분제의 폐지를 주장하고 교회를 공격하였으며, 이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일반적인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형식적이며 보편적인 평등관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기존의 특권과 차별을 부정하고 평등 의식이 도래하면서 오히려 시민들은 특수주의와 편협한 개인주의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자유만이 이것을 제어할 수 있었지만 당 시대의 프랑스에는 그 자유가 부재했다. 프랑스 시민들은 자치의 경험에서 나오는 자율정신과 시민의식을 체화할 수 없었기 때문에 평등의식이 자리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프랑스혁명으로 시민들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인 절대군주제를 무너뜨렸으나, 이는 봉건제도를 제거하고 보편적 평등을 내세우면서 중앙집권적 행정을 강화하였고, 절대 군주의 자리를 절대 인민으로 대체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프랑스 시민들의 평등에 대한 맹목적 열정은, 민주화의 진전이 아니라, 전제적 지배 조건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고, 그 귀결은 나폴레옹의 등장이었다. 프랑스 시민들은 관료제의 행정과 유권자의 통치를 결합시켜서 국민이 주권(主權)을 갖게 하려고 했으나, 자유의 경험이 없던 그들은 결국 노예 신분으로 전락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프랑스혁명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토크빌은 평등이 전제적 지배를 행사하고, 국가의 주인인 시민이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토크빌은 그것을 미국의 역사적 사례에서 찾게 되었다.


토크빌이 생각하는 자유는 시민들의 자치의 경험에서 나오는 자유이다. 그것은 미국의 건국 초기에 만든 타운(town)과 같은 지방분권적인 제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미국인들은 그들의 삶의 터전임과 동시에 정치의 공간인 타운에서 실질적 권력을 갖고 그 운영 유지에 참여하면서 진정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유의 의미는 개인의 사적 공간에서 타인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소극적 자유가 아니라,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과 권한을 행사하면서 정치에 스스로 참여할 때 나타나는 적극적 의미의 정치적 자유인 것이다. 자유는 없고 평등만 있었던 프랑스 시민들의 역사적 경험과는 달리 미국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를 경험하게 했던 것이다. 토크빌은 미국에서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원인을 세 가지로 요약하였다. 첫째, 미국의 지방 정부와 연방 정부의 유기적인 연결이다. 연방 정부는 전국 차원의 큰 공화국의 권력과 각 주나 지방 차원의 작은 공화국의 안전 보장을 결합할 수 있었다. 둘째, 타운 제도를 통해 미국의 시민들은 다수의 횡포에 맞설 수 있었으며, 동시에 국가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기술을 함양할 수 있었다. 셋째, 사법제도가 있음으로 인하여 다수의 활동을 중단시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다수의 충동을 제어할 수가 있었다. 즉, 자치를 통한 지방분권의 활성화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했고, 연방정부는 지방분권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운영되었으며, 사법의 권위가 의회의 권한을 견제하여 시민들의 독재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작가의 책 [미국의 세계주의 개입과 관여정책]에서 부분 발췌한 내용입니다.


http://www.bookk.co.kr/book/view/79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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