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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Jun 15. 2020

[가치의 충돌]과 [가치의 변화]

노동과 미학의 가치가 변화해왔듯이 진보의 가치가 변화하는 것인가?

서로 다른 가치가 충돌하면 논쟁이나 갈등을 낳고 더 나아가 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종족과 종족, 민족과 민족, 종교와 종교, 국가와 국가의 가치가 충돌한다. 새로운 문화와 전통적인 문화가 서로 충돌한다. 이런 경우, 가치가 충돌하면서 전통적 가치가 새로운 가치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거나 새로운 가치로 완전히 대체되기도 한다. 가치가 충돌하고 변화하면서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져 왔다. 보다 나은 세상이 만들어져 왔다.

 

산업혁명으로 노동과 미학에 대한 기존의 가치와 새로운 가치가 충돌했던 사례가 있다. 1851년 만국박람회장으로 사용했던 영국의 수정궁 Crystal Palace 건축을 둘러싼 논란이다. 당시 전통적 고딕 건축양식을 고집했던 기득권층은 만국박람회가 끝난 후,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건축양식으로 철과 유리를 사용해서 세운 조립식 건물 형태의 수정궁을 런던 외곽으로 옮겨 버렸다. 하지만 당시 산업화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에 의한 철과 유리 사용의 증가 추세는 계속되었고, 새로운 건축 양식에 따라 영국과 유럽 대륙의 도시 전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노동과 미학의 기존 가치가 바뀌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2020년 6월 한국에서 가치의 변화에 대한 주장이 있었다. 진보 진영의 가치 변화에 대한 진보학자 한상진의 기고문에 의한 것이다. 그가 코로나-19에 대한 국민 인식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진보 진영에서 기존 보수의 특징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진보 진영은 국가권력에 포섭되거나 순응하지 않고 거리를 두며, 본래 진보의 가치인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날카로운 눈으로 정부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세력이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진보 진영은 그래 왔고 이는 변치 않는 특성이었다. 하지만 최근 진보 진영은 국가주의에 포섭돼 정부 목소리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관련 국민 인식 설문조사를 해 본 결과, 진보 진영은 실제로 '시민 협력'보단 '정부 결정'을, '자발 검역'보단 '강제 검역'을, '낙인찍기에 신중하기'보단 '모든 정보 공개'를 우선하는 등 기존 보수의 특징을 보였다"는 것이다. 조국 사태, 윤미향 사태, 금태섭 전의원 징계 논란은 권력화 내지 기득권화하고 있는 진보 진영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노동의 가치와 미의 가치가 변했듯이 가치가 충돌하고 변화하면서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져 왔다. 하지만 한상진이 주장하듯 진보의 가치가 보수의 가치로 변화되고 있다면, 그것이 집권 후 기득권 세력의 맛을 본 진보 진영의 권력 유지를 위한 것은 아닌지, 그것이 보다 진정 나은 세상을 위한 것인지를 깊이 반추해 볼 일이다.


영국의 수정궁과 가치의 충돌

1851년 만국박람회가 열린 런던의 하이드 파크 Hyde Park에 철과 유리를 주재로 한 조립식 건물 형태의 수정궁 Crystal Palace이 세워졌다. 당시의 기술력과 재료를 활용한 획기적인 설계였고, 영국의 새로운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한 상징적 의도가 담겨 있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박람회장은 풍부한 채광과 커다란 공간이 필요했는데, 그 기능을 최적으로 충족할 수 있는 재료인 철과 유리로 세운 건물이었다.


하지만 수정궁은 격렬한 논란의 중심에 놓인다. 새로운 건축양식을 부정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가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논쟁을 시작한 것이다. 기존의 고전주의, 고딕 양식만이 시대에 통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전통양식의 특징이 전혀 없었던 수정궁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축물이었다.


고삐 없는 말처럼 발전을 계속해오던 산업화 시대에 노동자들의 투쟁만큼 간절하게 산업화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존 러스킨 John Ruskin과 그의 제자 윌리암 모리스 William Morris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들은 산업화와 대량생산에 의해 변화된 효율적 생산구조인 '분업화'와 생산품의 일률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을 비판했다. 노동가치와 미학적 태도의 변질에 대한 것이었다.


첫째, 산업화에 의한 노동가치의 변질이다. 당시는 재료의 준비로부터 마지막 단계인 세공에 이르기까지 장인 한 사람이 모두 작업을 진행하는 것을 보편적 가치의 노동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연속성이 장인의 즐거움과 만족감으로 연결되고, 그 결과로 아름다움이 성취된다고 여겼다. 즉, 노동자들이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 속에서 일부분의 역할만 하는 것은 근본적인 노동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생각했다.


둘째, 미학적 태도에 관한 것이다. 존 러스킨은, 모든 아름다움은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자연의 형태를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양식은 자연과 가장 가까운 선형을 지닌 고딕 양식이었다. 반면, 대량 생산으로 만들어진 직선적인 제품과 건물은 아름답지 않고 추한 것으로 여겼다. 그는 이런 비판의식을 토대로 고딕 복고 운동과 예술 수공예 운동을 펼쳤고, 이를 통해 사회에 일종의 경고장을 날리기도 했다.


존 러스킨과 함께 수정궁 건축 양식에 대해 거세게 반발했던 기득권 세력은 박람회가 끝나자마자 수정궁을 런던 시내에서 런던 남부의 외곽 시든햄 힐 Sydenham Hill로 옮겨 놓았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당시 산업화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에 의한 철과 유리 사용의 증가 추세는 막을 수 없었다. 커다란 공간적 구조와 채광 기능이 필요한 시장과 역과 사무실 설계에서 철과 유리는 대체 불가하며 유용한 재료였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엘리베이터, 전기 등, 환풍기, 난방기 등이 개발되면서 새로운 건축의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은 전문 건설업자와 함께 도시의 전경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영국뿐 아니라 유럽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에 걸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기존 가치와 새로운 가치가 충돌했지만 결국 그 가치가 변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출처: 최경철, 유럽의 시간을 걷다(2016)


가치의 변화는 우리 시대에도 찾아볼 수 있다. 진보학자 한상진이 코로나-19에 대한 국민 인식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의하면 진보 진영에서 기본 보수의 특징이 보였다고 한다. 즉, 진보의 가치가 보수의 가치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진보 진영의 가치 변화

사회 통념상 진보는 시민사회 중심, 아래로부터의 접근, 법치 강조, 소수 집단을 대변한다. 이와 반대로 보수는 국가권력 중심, 위로부터의 접근, 통치 강조, 주류 집단 대변의 특성을 보인다.


한상진에 의하면, "진보 진영은 국가권력에 포섭되거나 순응하지 않는다. 국가권력과 거리를 두며 본래 진보의 가치, 즉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날카로운 눈으로 정부를 비판하고 정부에 저항한다. 집권 정부가 진보라 할 지라도 이는 변치 않는 특성이었다. 과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도 진보 진영은 그래 왔다. 하지만 최근 진보 진영의 이런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국가주의에 포섭돼 정부 목소리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코로나-19에 대한 국민 인식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진보 진영은 실제로 '시민 협력'보다 '정부 결정'을 '자발 검역'보다 '강제 검역'을 '낙인찍기에 신중하기'보단 '모든 정보 공개'를 우선하는 등 기존 보수 진영의 특징을 보였다고 한다. 조국 사태, 윤미향 사태, 금태섭 전 의원 징계 논란은 권력화 내지는 기득권화하는 진보 진영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한다.


한상진은 진보 진영의 '자기 확신'이 커지면서 이런 논란이 가속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속 가능한 정치모델이 되기 위해선 자기 확신에 따라 일방적으로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아닌, 시민 집단과 대화하며 상식을 깨지 않는 선에서 얘기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의 진보는 자기 확신이 강하다. 자기 확신은 자신들이 옳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강하니 독단적으로 사고하고 돌진하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멈출 수 있는 것이 야당인데, 야당이 여권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절대 권력을 쥔 여권의 독주는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또 그는 말한다. "진보 정권, 넓게는 진보 진영의 성과가 빛나서 자부심을 느끼고 만족해야 하는 데 지금 상황이 녹록지 않다. 남북관계는 혼란을 거듭하고 일본과의 교류는 막힌 지 오래다. 경제적 성과도 미미하다. 우리가 틀릴 수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터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현정권의 코로나-19 방역이 모범 사례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옳았음을 증명하고 채우지 못한 자부심을 여기서 채워야 했다. 이를 방해하는 신천지는 진보 진영에선 제거의 대상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이 또한 자기 확신이 작용하면 서다. 소수 집단을 대변하는 진보 진영의 특성은 사라졌다."


진중권에 이어 한상진까지 진보 성향의 학자들이 진보 진영을 향해 뒤를 돌아보라고 일침을 가하고 있다. 진보 진영이 '자기 확신'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니라면, 기득권 세력이 된 후 권력 유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진보 진영은 그 고유의 전통적 가치를 지켜내야 할 것이다. 진보 진영이 지금까지 촛불 민심과 함께 절대 권력에 투쟁하면서 지켜 왔던 진보의 가치가 옳은 것이었다면. 존 러스킨이 산업화 시대에 맞서 고딕 복고 운동과 예술 수공예 운동을 펼쳤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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