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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Jul 24. 2020

공화주의, 칼빈주의 사상과 미국의 개입주의 외교정책

미국의 개입주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친 공화주의와 칼빈주의 정치철학

미국의 헌법과 정치제도를 설계한 철학 사상은 고대 공화주의와 근대 자유주의였다. 그러나 자유주의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미국을 만들고 미국 정치를 지배해 온 사상은 공화주의와 칼빈주의다.


칼빈주의 사상의 핵심인 종교적 선민의식과 천년왕국 사상은 미국의 십자군적 전쟁관과 모범적이고 우월적 지도자로서의 소명의식의 철학적 기초가 되었다. 십자군적 전쟁관은 미국을 선으로 미국의 적을 악으로 구분하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투쟁적 역사관이다. 미국을 적 그리스도와 대적하는 십자군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소명의식은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우월하고 강대한 미국은 전 세계의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자유를 전파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 독트린 선포는, 미국이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이고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칼빈주의 사상은 미국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장과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근거를 제공한다. 이 사상은 미국이 보유한 힘의 도덕적인 정당성을 발휘하여 팽창주의적 성향, 즉 개입과 관여라는 외교정책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기적인 국가들이 모인 국제정치 세계에서 규율을 엄격하게 만들어서 잘 지키도록 강요함으로써 개별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사악한 특성을 통제하고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장 도덕적인 국가임을 표방하고 가장 권력을 불신하고 경계하는 미국이 1899년 스페인과의 전쟁 이후로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개입의 폭을 넓혀오면서 국제정치에서 권력 지향적 행태를 표출하는 것이 외면적으로는 모순이지만, 알고 보면 공화주의 관념의 국제정치적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가 1인-소수-다수로 분화된다는 공화주의 정치관에서 나온 보수적 반평등주의가 국제정치에 투영되면서 현명하고 도덕적인 강자의 우월성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강자 중심주의는 칼빈주의적 소명의식 및 선민의식과 합해져서 스스로를 구세주의 나라로 여기는 집단의식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강자 중심주의는 다시 도덕주의적 절대주의, 즉 미국의 외교적 행위와 신념은 도덕적인 것이며 미국의 기준을 벗어나는 모든 국제정치적 행위는 반도덕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절대적 선악관으로 변하게 된다.


다른 나라의 외교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수많은 독트린과 그 구체적 적용 지침이 미국의 외교사를 장식하는 것은 미국 대외정책이 절대적이고 교조적인 원칙의 일방적 선포를 그 특징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는 교조적 원칙을 고집하지 않으면서도 외교의 결정과 시행에서는 교조주의적 집착을 보이는 이유도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이 국제정치에 반영되면서 강자 중심의 우월주의와 도덕적 절대주의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 미국 외교를 분석할 때는 반드시 도덕적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는 독특한 관점도 미국 외교가 건국 이후 지금까지 보여 온 도덕주의적 태도를 반영한 것이다. 이 도덕주의적 절대주의는 전쟁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 선명하게 나타난다. 어떠한 성격의 전쟁이든지 미국이 참전하기만 하면 그 전쟁은 성스러운 전쟁이 된다. 따라서 철저한 승리만을 목표로 삼는 십자군적 승패관은 미국 민주주의의 대외적 특색이다.


미국의 적은 악(惡)이기 때문에 적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선택받은 민족에게 부여한 신의 섭리라는 칼빈주의의 투쟁관과, 구대륙처럼 타락하지 않고 공화정을 수립하여 자유의 원칙을 구현한 위대한 미국을 스스로 확인하는 의식이 융합되어, 19세기 프랑스와의 전쟁에서는 프랑스를, 20세기 소련과의 대결에서는 소련을 악의 화신으로 보게 되고 21세기 테러 근절 대책은 바로 테러와의 전쟁이 되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전쟁은 미국 스스로 정한 도덕적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며 미국 군사력의 사용은 그 목적이나 수단의 윤리성을 따지기 이전부터 정당화된다.


독립전쟁과 연방헌법 제정 이후 미국 외교는 영토-시장-이념의 확장을 순서대로 실현해 온 팽창의 여정이었다. 팽창주의, 즉 개입과 관여의 여정 속에서 미국은 전체주의와 공산주의와 맞서 싸운 성공한 전쟁도 치렀고 베트남과 이라크에서 실패한 전쟁도 치렀다. 이 중에서 미국이 실패했던 전쟁은, 미국의 의지와 신념으로 역사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다는, 미국의 오만으로 인한 것이다. 미국의 힘과 신념만으로 자유를 전파할 수 있다고 믿는 한 아무리 좋은 의도로 개입한다 해도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월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간의 구분과 서열을 당연시하는 공화주의적 정치 관념은 국제정치 무대에서 미국과 같은 현명하고 도덕적으로 우월한 강대국의 계도를 당연시하게 만들었다. 국내적으로는 평등 관념이 약하면서 국제관계에서의 평등은 당연시한 유럽 국가들과는 반대로, 국내적으로는 평등을 주장하면서 국제정치 세계에서는 위계적인 질서를 상정하는 미국의 역사적 특징은 공화주의적 전통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위계 관념은 칼빈주의의 신정(神政) 정치적 귀족주의의 영향이기도 하다. 칼빈주의는 미국의 시민종교이므로 건국 초기 단계에서부터 미국 정치 엘리트들의 성장과정과 그들의 세계관 형성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미국사학의 정설이다. 따라서 칼빈주의 철학의 정치적 표현인 선민(選民) 주의, 우월의식, 소명의식, 그리고 선과 악의 절대적인 대립 관념이 공화주의적 관점과 더불어 팽창과 개입의 이념적 토대로 기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외교를 이끌어 온 추진력은, 다른 국가들처럼 국가 안보와 국익 추구라는 일반적인 동인과 함께, 미국이 인류를 이끌고 구원할 사명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선민적 역사관과 세계관이다. 미국인들의 이와 같은 소명(召命) 의식은 국제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경찰국가로서의 역할을 미국이 수행하도록 만든 근간이 되었다. 즉, 이러한 소명의식은 미국이 세계주의 대외정책으로서 개입과 관여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게 된 철학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냉전시대에는 공산주의 확산 방지와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으로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발생한 지역 분쟁에 군사적 역량을 사용하여 직·간접적으로 개입(Intervention)을 하거나, 정치·외교 및 경제적인 역량을 이용하여 관여(Engagement)를 하였다. 공산주의를 주도해 온 구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의 여러 국가가 공산주의 이념과 그 체제를 포기함으로써 민주주의가 공산주의보다 그 체제 면에서 우월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단일 패권국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한 탈냉전시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이와 같은 행태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때로는 미국의 개입과 관여정책에 일관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어떤 특정 지역에서 국가 간의 분쟁 또는 내란이 발생한 경우, 해당 국가에 대한 주권 침해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적극적으로 군사개입 또는 관여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반면, 또 다른 특정 지역에서 그와 유사한 분쟁 또는 내란이 발생한 경우, 인권 수호를 위한 세계 경찰국가로서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그 사태에 대하여 군사적으로 적극 개입하지도 않고, 정치·경제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왔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개입과 관여는 철저하게 미국의 국가이익과 관련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미국의 국익과 관련된 지역·국가에 대한 개입과 관여가 필요할 경우에는 그 정당성과 명분을 조작해서라도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외교정책 수단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 글은 작가의 책 [미국의 세계주의 개입과 관여정책]에서 부분 발췌하여 정리하였습니다.


http://www.bookk.co.kr/book/view/79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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