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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Jul 23. 2020

칼빈주의와 미국의 십자군적 전쟁관

미국의 개입주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준 Calvinism과 십자군적 전쟁관

칼빈주의는 원죄 의식, 인간의 필연적 타락, 구원의 수단으로써의 노동과 직업, 끝이 없고 한계가 없는 인간의 욕망, 엄격하고 가혹한 정의관, 하나님을 세속의 군주처럼 보는 태도, 영혼 세계 내에서의 귀족주의, 구원 예정설 등을 골자로 하는 신학이론이다. 따라서 그 성격은 신정 정치이다. 첫째, 칼빈주의에서 신은 곧 왕이다. 하나님은 동양이나 프랑스의 절대 군주처럼 높은 옥좌에 앉아 있으며 천사, 성자, 선택된 영혼들이 그 밑을 질서 정연하게 둘러싸고 도열해 있다. 이러한 천상의 위계질서는 당시 유럽의 경직된 신분 의식을 반영한 것이며 퓨리턴의 세속 정치문화로 반영되었다. 즉 영혼세계의 엄격한 위계질서, 그리고 절대자인 신의 냉혹한 의지는 일종의 귀족적 정치문화의 형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둘째, 칼빈주의의 또 다른 핵심인 구원 예정설은 신이 선택한 소수의 영혼만 구원한다는 교리이다. 이것은 소수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 인간은 원죄 때문에 신 앞에서 모두 죄인이며 죄인 중에서 신이 선택한 소수만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곧 멸망은 민주주의적이고 구원은 귀족주의적이라는 의미이여, 이 칼빈 신학은 선택된 소수를 신의 도덕률을 이 땅에서 구현하는 자들로 미화시키고 이들의 정치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종교 지도자들, 즉 영혼의 귀족이 뉴잉글랜드의 세속 귀족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7세기 영국의 사회 정치적 인습과 칼빈주의 교리에 바탕을 둔 초기 식민시대의 정치를 메이플라워 정신이나 근대적 의미의 민주, 평등과 연계시키는 신화가 허구라는 사실은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초기 식민시대의 교회는 단순히 예배를 보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의 정치 조직이었고, 성직자들은 공공의 정치현안까지 취급하면서 공적 영역에서도 대단히 존경받는 지위를 누려야만 했다. 목사를 비방하는 것은 치안 방해죄로 처벌받았고, 행정관 사이의 분쟁도 성직자들의 회의에서 조정하고 중재해 줄 정도였다. 이처럼 미국의 배태기를 지배한 정치 문화의 신정주의적 색채는 미국 정치의 엘리트주의적 전통을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미국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친 칼빈주의 철학은 천년왕국 사상이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이 정해 준 대로 전개될 것이며 언젠가는 지상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완전한 모습으로 이루어진 시대가 오게 될 것이라는 믿음은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3천 년의 역사를 통해서 확산되고 공유되어 왔다. 미국의 식민 시대 초기 뉴잉글랜드가 신정주의(神政主義) 귀족정치를 표방했던 것도 천년왕국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천년왕국 사상은 성경의 묵시록에 근거한 믿음이다.


그리스도와 적 그리스도의 세력이 아마겟돈의 평원에서 싸운 결과 정의가 승리하여 천년의 화평이 오지만 천년의 사슬에 묶여 있던 사탄이 어둠의 도움을 받아 도전하면서 전쟁이나 지진 또는 혁명이 일어나고, 이런 징조에 이어 다시 최후의 싸움이 벌어져 그리스도와 천사들이 악의 세력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모든 성인이 최후의 심판을 찬양하게 되어 있는 신의 구도를 그린 묵시록의 계시에 근거한 믿음이다. 천년왕국 사상은 17세기 청교도 혁명을 거치면서 영국 정치의 급진주의와 연계되었고, 그 결과로 공화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사상과 함께 식민시대의 미국으로 유입되었. 이러한 정치사상과의 연관성 때문에 뉴잉글랜드의 지도자들에게는 신대륙을 향한 이민자들의 행렬이 지상에 천년왕국을 구현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증명하는 예언적 현상으로 비추어졌다. 부패한 영국교회를 떠나 참다운 교회를 새로운 지상세계에 보존해야 하는 사명을 띤 청교도들은 영국의 구세계를 구원할 뿐만 아니라 신대륙에 새로운 기독교 공동체를 건설해서 청교도들 자신도 구원해야 할 소명을 부여받았다고 믿었다. 이러한 소명의식은 대각성의 시대를 거치면서 천년왕국 사상과 함께 식민시대의 미국 전역에 전파되었고, 결과적으로 미국의 정치 외교에 나타나고 있는 선민의식의 근원이 되었다.


천년왕국 사상이 미국 외교의 전통에 영향을 미친 것은, 미국을 선으로 미국의 적을 악으로 구분하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투쟁적 역사관, 그리고 미국을 적 그리스도와 대적하는 십자군으로 간주하는 십자군적 전쟁관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의지를 지상에서 구현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초기 식민시대 청교도의 역사관에서부터 선명하게 드러난다. 신대륙의 신교도들은 미국의 과거를 세속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성서적으로 해석하였다. 특히 구약성서로부터 역사 해석의 근거를 도출하였다. 예를 들면, 하나님과의 언약을 아브라함이, 이스라엘 민족을 이룬, 그의 자손에게 물려주었고, 이것이 초기 기독교와 영국의 프로테스탄트를 거쳐 청교도에 의해 미국이라는 신세계로 상속되었기 때문에 식민지 아메리카야말로 고대 이스라엘의 후예이고, 신세계의 이스라엘임과 동시에 아메리카의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하였다. 또 신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이 지정해서 노아의 방주에 태운 선택된 피조물로서 새로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할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믿었다. 종교적 믿음이 정치사상으로 세속화된 것이다. 그 결과 선민의식은 자연스럽게 미국의 팽창을 정당화하는 소명의식으로 연결되었다.


 미국인들은 식민지 시대의 지도자로부터 초대 미국 대통령을 거쳐 현대의 정치지도자들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이 천년왕국을 지상에서 구현해야 할 소명을 지닌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전승해 오고 있다.


종교적 선민의식은 미국사에 일관되게 나타나게 될 팽창 성향의 원천이다. 전 세계에 모범을 보여주고 이를 전파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은 미국의 물리적·이념적 팽창을 요구하는 것이므로 미국사 초기부터 미국의 숙명적 팽창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표출되기 시작했다. 초기부터 미국 식민지 청교도들은 식민지에서의 험난한 개척 경험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신념 하에 미국 대륙 내부의 팽창이 이루어졌고, 이러한 대륙 내부의 팽창은 종교적 팽창인 동시에 상업적 팽창이기도 했다. 당시 미국인들은 "방대한 북쪽의 대지를 지식과 자유, 농업과 상업, 유용한 예술과 제조업, 기독교적 신성함과 덕목의 요람으로, 하나님과 선량한 인류의 기쁨으로, 지구 전체의 기쁨과 찬양으로 변화시킬 훌륭한 기회를 갖고 있다"라고 믿었다.


팽창 성향에 대한 미국의 전통적 신념은 19세기 후반에 시작된 미국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장과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근거를 생산하게 된다. 즉, 국제 교역은 자본주의라는 의복을 걸친 십자군 운동이므로, 미국은 이를 통해서 전 세계에 미국의 상품과 기독교의 복음을 동시에 전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 이처럼 아메리카 대륙 내부에서의 팽창이든 해외 팽창이든 미국의 팽창은 종교적 선민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며, 미국의 상업적 번영을 선민의 증거로 보는 사고방식이 그 저변에 깔려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미국의 정치 엘리트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까지도 칼빈주의의 세계관에서 나온 관념인 엘리트주의, 권선징악에 대한 절대적 신념, 하나님에 의해 선민으로 채택된 미국인들이기 때문에 그 사명을 완수하고 세계 구원을 위하여 모범적이고 우월한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보편적으로 전수되어 왔다. 따라서 캘빈주의는 정치현상과 정치인식의 저변에 깔려 있는 일종의 시민 종교적 기능을 하면서 지금까지 미국 정치와 외교의 전개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이 보유한 힘의 도덕적인 정당성을 믿고 있는 미국인들 사고의 습성은 칼빈주의를 반영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사악하게 보는 칼빈주의적 비판론은 사악한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원칙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이기적인 국가들이 모여 있는 국제정치 세계에서는 그 규율을 엄격하게 만들어야 하고 잘 지키도록 강요함으로써 개별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사악한 특성을 통제하고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정을 담당할 보안관 역은 당연히 미국이 맡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사고방식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사악함으로 가득 찬 국제정치 세계에서 누가 법을 만들고 집행해야 할 것인가? 누가 보안관이 되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칼빈주의의 대답은 당연히 우리 중에서 가장 우월한 국가가 보안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가장 우월한가? 곧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국가다. 왜냐하면 가장 강하다는 것은 곧 신에 의해 선택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선민의식이 미국의 외교정책에 미친 영향은,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우월하고 강대한 국가인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자유를 전파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다는 소명의식,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일방적이고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역대 대통령의 독트린 선포라고 할 수 있다.


이글은 작가의 책 [미국의 세계주의 개입과 관여정책]에서 부분 발췌하여 편집하였습니다.


http://www.bookk.co.kr/book/view/79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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