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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Jul 21. 2020

팽창과 개입주의로 점철된 미국의 외교정책 역사

미국 외교정책 노선이 개입주의와 고립주의를 반복해왔다는 견해에 대한 반론

미국의 외교정책 역사에 나타난 개입주의와 고립주의는 상반되는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그 정책의 추진 배경과 미국 외교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입주의와 고립주의는 연속성이 있고 동일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립전쟁 이후의 미국 외교사에 관한 대표적인 관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미국 외교가 고립주의와 개입주의를 번갈아 채택하였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개입과 고립은 외형상의 차이일 뿐이며, 미국의 외교는 일관되게 개입주의였다는 것이다.


미국 외교가 고립주의와 개입주의 노선을 번갈아왔다는 관점은 개입주의의 배경을 미국 고유의 소명의식에서 찾고 있다. 또 외교정책에 관여하는 엘리트들의 인식이 20~30년 주기로 변해왔다고 보는 관점은 개입주의와 고립주의가 교차해 온 이유를 보다 현실적인 데서 찾고 있다. 어느 한편이 득세하다가 외교적 위기나 실패를 겪으면서 다른 편이 득세하게 되는데, 이것이 세대교체 요인과 맞물려 왔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20~30년 주기로 반복되면서 미국 외교가 고립주의와 개입주의 노선을 번갈아 채택해 왔다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주기론은 미국 외교사 전체가 아닌 20세기 이후에만 적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미국이 북미 대륙 내에서 영토 확장에 전념했던 19세기까지를 고립주의가 지배해 왔다고 주장하면서,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미국 외교정책에서 고립주의와 개입주의가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반면, 고립과 개입의 동기가 본질적으로 같기 때문에 미국 외교사에 나타난 고립과 개입의 차이는 외형상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있다. 즉, 미국이 유럽의 국제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고립주의라고 한다면, 이는 부패한 유럽과 인연을 끊음으로써 미국의 순수성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 19세기 말 이후 미국 외교의 개입주의 성향은 미국을 위협하는 비미국적 제도와 이념을 고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고립주의와 개입주의는 모두 미국의 이념과 자유를 수호하고 전파하려는 도덕적 절대주의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미국의 고립주의와 개입주의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고립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미국 외교를 고립주의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미국이 유럽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고립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현재의 미국과 18세기 후반의 미국을 동일한 국가로 간주하고, 그 당시에는 미국의 국경선 밖에 있던 지역인 텍사스, 플로리다, 오리건 등을 미국 영토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미국 영토지만 그 당시에는 미국 국경선 밖의 지역에 대한 영토 확장 정책은 명확하게 외교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영토 확장 정책을 미국 국가 형성 과정인 미국 내부의 역사로 본 것이다.


미국의 대유럽 고립주의 정책만으로 20세기 이전 미국 외교 전체를 고립주의 외교라고 단정하는 것은 유럽 중심주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례로 1823년 먼로 선언은 유럽에 대해서는 고립주의지만, 아메리카 대륙의 타국가에 대해서는 개입주의를 천명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 미국의 유럽 중심주의 역사학자들은 먼로 선언을 고립주의 선언이라고 간주하였다. 이처럼 고립주의에 대한 개념이 편파적이었기 때문에 과거 미국의 외교 역사가들은 20세기 이후 미국의 세계 진출과 19세기 미국의 서부 진출을 개입주의라는 연속선상에 놓을 수 없었다.


미국 외교의 외형적 모습은 고립 또는 개입의 형태를 취해왔지만 궁극적으로는 팽창주의로 일관된 전통을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의 영토 대부분은 독립혁명 당시에는 미국의 영토가 아니라 스페인, 멕시코,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영토였다. 즉 미국 외교의 역사는 19세기에 있었던 북미 대륙 내부의 팽창과 20세기에 시작된 해외 팽창을 연속선상에 놓고 봐야 한다.


북미 대륙 팽창 시대에는 제퍼슨의 농업 제국 이념을 확립한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 1845년 텍사스 병합, 1846년 오리건을 둘러싼 영국과의 분쟁, 1848년 멕시코 영토 병합, 1853년 개즈던 매입, 1867년 알래스카 매입으로 이어지면서 미국이 남부와 서부로 팽창하였다. 해외 팽창 시대에는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으로부터 시작해서 제1,2차 세계대전, 냉전 질서의 구축,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포함한 제3세계 분쟁 개입, 중남미 지역에 대한 개입, 그리고 탈냉전 시대의 세계화로 이어져 왔다.


결국 미국이 20세기 이후 개입주의와 팽창주의로 전환했다는 견해는 19세기의 미국 영토 확장 정책을 미국의 대외정책이 아닌 국내 정책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조지 워싱턴의 고립주의 원칙과 먼로 독트린에 나타난 유럽 문제에 대한 불개입 원칙은 유럽을 대상으로 한 불개입이었지만 중남미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불개입은 아니었다. 이와 같은 해석의 틀이 아니면, 먼로 독트린 이후에도 중남미 국가들에 대해서 패권주의와 개입주의로 일관해 온 미국의 외교정책을 설명할 수 없다. 유럽사나 미국사가 아닌 세계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미국국 외교의 역사는 팽창주의와 개입주의로 점철된 역사다. 다만 시대에 따라 형태와 방식의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 작가의 책 [미국의 세계주의 개입과 관여정책]에서 부분 발췌하여 편집한 글입니다.


http://www.bookk.co.kr/book/view/79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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