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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Oct 14. 2020

국장님과 토요일에 라운딩 하실래요?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는 질문을 받았다.

4년 여에 걸친 정부 부처 파견 근무를 마치고 원소속으로 복귀한 지 몇 주가 지난 후에 있었던 에피소드다.


함께 일하던 과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있는 지역의 골프장에 부킹을 했는데, 멤버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길 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인성 문제 있는" 국장님, 과장님 두 분, 국 총괄 사무관님이 함께 라운딩을 하기로 했다가, 과장님 한분이 급한 일로 갑자기 빠졌는데, 골프를 치는 직원들에게 SOS를 쳤지만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분의 부하 직원으로 3년 가까이 시달렸던 나도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거절할 것 같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다고 한참 동안 상황 설명을 했다. 난 쿨하게 대답했다. "그러죠. 뭐!"


전화기 너머로 들린 과장님의 음성은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그도 그럴 법했다. 현재 해당 부서의 부하 직원들도 기피할 정도로 인성에 문제가 많은 국장님과의 매우 불편할 것으로 예상되는 주말 라운딩 요청을 너무 쉽게 오케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난 그분에게 배운 인생의 커다란 교훈이 있다. 누군가 나에게 마음의 상처가 되는 말을 할 때는 그걸 귀담아듣지 않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옆집에서 개가 짖는 소리 정도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 국장님도 자신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화를 낼 땐 내가 그런  태도를 취한다는 것을 안다.


그 분과 함께 근무하던 어느 날, 후배와 함께 국장실로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분은 후배의 마음을 후벼 파는 훈계(?)를 했다. 그 후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번엔 내게 같은 방법으로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난 평소처럼 마음 쓰지 않고 그 막말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렸다. 그랬더니 국장님께서 후배에게 하시는 말씀, “케니에게 좀 배워라. 이 친구야! 내가 아무리 심하게 꾸짖어도 너는 짖어라. 난 개의치 않는다라는 저 의연한 태도를.”


국장실을 나서면서 후배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표정 하나 변화 없이 그렇게 대처할 수 있냐고. 난 담담하게 대답했다. “2년 넘게 내공이 쌓여서.” 기실 난 강성으로만 비추어지는 그분의 연약한 모습을 보았다. 우연한 기회에 그분 댁 앞에 갔다가 집 안쪽에서 들려온 사모님인 듯한 분의 앙칼진 목소리와 그분의 고분고분한 답변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또 한 번은 그분과 함께 지방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공적 업무를 마치고 그분의 죽마고우라는 분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들렀던 노래방에서 두 분이 어깨동무하고 노래 부르는 모습을 봤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 웃으며 목청껏 소리 높여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는 국장님의 모습은 천진난만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사석에서 두 차례에 걸쳐 직장에서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그분의 모습을 보았던 내겐 그분은 더 이상 강압적인 상사가 아니었다. 그가 아무리 흥분해서 날뛰고 상소리를 해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단지  내 마음에 생채기가 나지 않게 그냥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릴 뿐이었다. 심할 땐 보고서를 꾸기고 찢고 고함을 지르는 그의 모습은 그저 자신의 연약함을 고위직으로 감추고 있는 불쌍한 인생일 뿐이었다.


그런 그분과의 라운딩 날이었다. 반갑게 맞이 하더니 본인이 캐디피를 미리 정산했다. 나름 재미있게 골프를 치고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그분이 식대까지 계산했다. 그날은 업무와 상관없는 일로 만난 탓일 수도 있겠지만 인성에 문제 있는 그분의 돌출 행동을 전혀 볼 수 없었다. 덕분에 그린피만 내고 오랜만에 만난 전 직장 동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직장으로 돌아간 그는 변함없는 모습을 보였다는 후문을 들었다.


그 이후 퇴직했던 그분이 정부 산하기관으로 다시 복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료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간접적으로 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분을 찾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그곳을 떠나면서 그분의 전화번호를 삭제하면서, SNS 친구 관계도 모두 차단했었다. 다른 이들도 그렇게 했다고 들었다.


곧 칠순을 바라보는 그가 쓸쓸히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겐 그 국장님 같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길 바라지만. 갈바람이 왠지 스산하게 느껴지는 오후다.


있을 때 잘 해! 후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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