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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Oct 27. 2020

중국의 패권국 부상을 저해하는 지정학적 여건

미국의 지정학 전문가 Peter Zeihan의 논거를 중심으로

최근 미국을 포함한 서구인들은 중국을 세계의 미래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인구 규모가 최대이고 세계 최대의 수출국인 중국이 곧 세계 최대의 경제 규모와 가장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나라로 부상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실제로 지난 30여 년 간 중국의 부상은 놀라웠다. 하지만 중국의 패권국 부상을 저해하는 지정학적 여건을 알게 되면 그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 미국의 지정학 전문가 자이한(Peter Zeihan)이 주장하는 논거의 핵심이다. 자이한의 견해를 빌어 중국의 패권국 부상에 걸림돌이 되는 중국 본토의 지리적 여건과 인구 구조를 살펴보자.


중국의 열악한 지정학적 여건은
 중국의 패권국 부상에 커다란 걸림돌이다.


첫째, 중국 북부지역의 군국주의자에 관한 것이다. 중국을 지배해 온 한족(漢族)의 뿌리는 중국 북부의 항허(黃河)를 따라 형성된 초기 문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허는 우기만 되면 강 유역 곳곳이 넘쳐흘러 연중 대규모 홍수가 난다. 매우 넓고 평평한 범람원을 관통해서 흐르는 황허가 범람하면 엄청나게 넓은 토지가 물에 잠기게 된다. 이 경우 일반적인 홍수로 인해 발생하는, 도달 범위가 제한된, 범람과는 차원이 다른 커다란 자연재해가 생긴다. 따라서 중국 정치는 잉여 식량을 관리하고 인구를 확대하기보다는 황허의 범람으로 발생하는 참화를 관리할 필요에서 발달해 왔다. 이로 인해 정부가 국민을 엄격히 통제하는 통치 형태를 띠게 되었다. 백성들은 정부가 토목사업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동원되도록 길들여져 왔던 것이다. 그런 조직 장악력이 없다면 폭우만으로도 중국 문명이 깨끗이 씻겨 내려갈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이 이런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를 지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통일되고 일관성 있는 정부가 등장했던 적은 역사상 거의 없다. 오히려 중국의 역사는 붕괴된 제국과 산산이 부서진 희망으로 점철되어 왔다. 그 이유는 지리적 여건이다. 황허의 하류 유역은 지리적 장애물이 전혀 없는 광활한 화베이(華北: North China) 평원이다. 이 평원은 놀라울 정도로 비옥하고 엄청나게 넓지만, 그 지리적 여건을 북유럽 평원과 비교해 보면 중국의 정치 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곳이다. 북유럽 평원과 화베이 평원을 비교해보자.


황허 하류 유역의
 비옥하고 광활한 화베이 평원은
 중국의 정치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북유럽 평원은 좁고 길기 때문에 서로 경쟁관계인 세력들이 등장해서 자기 지역을 지켰는데, 종종 북유럽 평원을 가로지르는 강들이 방어선 역할을 했다. 하지만 화베이 평원은 좁은 구역이 없고 넓고 깊으며 평원을 가로지르는 강은 황허 하나뿐이다. 따라서 문화와 언어 통일은 촉진했지만 정치적 통일의 저해 요인이었다. 지역 세력이 주변 세력들로부터 독립적으로 성장할 만한 지리적 여건이 되지 않았고, 지역을 통일하는 데 성공한 세력은 황허를 다스리는 데 엄청난 노동력을 동원해야만 했다.
북유럽 평원에는 운항이 가능한 강이 여러 개지만 황허는 운항이 불가능하다. 자본이 풍부한 북유럽과 달리 북중국은 자본이 빈곤했다. 또 중국은 강을 다스리기 위해 엄청난 인력을 동원하고 다잡아야 했기 때문에 기술 개발 등에 투입할 인력도 부족했다. 서구 문명은 중세 암흑기가 막을 내린 후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달했지만 중국은 그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북유럽 평원은 연중 강수량이 풍부하지만, 화베이 평원은 빈번한 대홍수와 가뭄에 시달린다. 그 결과 인구의 폭증과 폭락이 번갈아 발생하고 인구가 폭락하면 다음 우기에 강을 다스릴 인력이 부족해서 더 위험해진다. 가뭄을 극복할 유일한 방법은 대규모 관개시설을 구축하는 길뿐이다. 이를 위해 강에 대해 통달해야 하는데, 그러면 다른 세력들의 목표물이 되기 십상이다. 그 결과 서로 경쟁하는 세력들은 전술적 우위를 얻기 위해서 상대방의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하고, 심지어 상대방의 집단적 문명을 기꺼이 파괴하려 함으로써, 지역을 산산조각 냈다. 중국은 자국의 유구한 역사를 군벌 시대(Warlord Era)라고 일컫는데 이는 적확한 표현이다. 북중국을 한족의 지역으로 통일하는 데 천 년이 걸렸고, 그동안 숱한 전쟁과 내전, 인종 청소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북중국이 통일된 이후에도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자행된 억압의 강도는 중국 외의 지역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모택동 세력과 장개석 세력 간에 벌어진 내전으로 7백만 명이 사망했는데, 이것은 중국 역사를 통틀어 늘 나타났던 패턴의 가장 최근 사례에 불과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교역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기술혁신은 더욱 일어나기 힘든 경제체제를 생성했다. 북중국은 무슨 일이든지 대규모 노동력으로 해결하는 체제였던 것이다. 심지어 중국의 전통적 식량도 이런 경제 유형에 부합한 것이다. 밀은 파종하고 수확하고 탈곡하면 끝이어서 농부가 나머지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쌀농사는 모를 심어 키운 다음 논에 한 줄기씩 모를 심고, 물을 대고, 비료를 주고, 물을 빼고 다시 물을 대고, 물을 빼고 말린 다음 한 단 한단 수확해서, 탈곡하고 또 탈곡하고, 다음번 농사지을 때 다시 논에 물을 대고 비료를 준다. 이런 일을 하는 평범한 농부는 어떤 정치적 발언도 할 수 없는 그런 체제다. 이처럼 국민은 노동집약적인 식량 생산에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고,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는 동원돼서 나라가 시키는 일을 해야만 한다. 이런 방식으로 만리장성을 쌓을 수는 있었지만, 산업화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 전제조건인 노동 분업과 자본 축적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지역 당국들이 매우 강력한 자치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정치체제가 와해될 위험이 커진다. 한 지도자가 지역에서 권력 장악에 성공하더라도 그가 품은 미래상과 상충되는 미래상을 지닌 이들을 모두 숙청해야 하는 길고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지도자는 중국이 사분오열되어 있고 수많은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현실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고대 제국들은 물론 모택동이 그리했고 시진핑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광활한 화베이 평원의 특성상 정치적 통일을 달성하기 어렵지만 가능하기는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중국을 단일 국가로 통합하려는 시도는 거의 모두 북중국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일단 북부 지역의 세력들이 의견이 일치되면 이들의 관심은 반드시 중부 지역으로 옮겨졌다.


중부를 관통하는 거대한 양쯔강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운항이 가능하지만
 다른 지역으로 연결되진 않는다.


두 번째는 중국 중부지역의 상인에 관한 것이다. 중국 중부지역을 관통하는 거대한 양쯔(揚子) 강은, 미국을 성공한 나라로 만드는 데 기여한 얽히고설킨 물길과 동일한 종류의,  물길이 9천 마일 이어진다. 하지만 양쯔강 덕에 중국이 저절로 초강대국이 될 수는 없다. 양쯔강과 그 주변의 지정학적 상황을 살펴보자.     


양쯔강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운항이 가능한 강이지만 다른 지역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중국 중부 지역은 무역 중심지이고 자본도 풍부하지만 이런 특성이 자연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또 양쯔강 유역의 도시들에는 나머지 지역과 연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섬들도 연달아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도 중부 지역의 자본이 필요한 북중국은 군사적으로 우월한 입지를 이용해서 자본을 착취했다.


중국의 중부 지역은 착취당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상하이(上海)를 비롯해서 양쯔강 유역에 위치한 지역들은 북중국을 넘어 훨씬 발달한 타이베이(臺北), 도쿄, 런던, 샌프란시스코 같은 바깥세상으로 시선을 향하는 경향이 있다. 북부와 중부의 통일은 베이징(北京) 중앙정부 관점에서 보면 경제적으로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사실 북중국이 중부 지역과 통합하려는 일차적 이유는 외세로부터 중국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적 이유다.


양쯔강 유역은 미시시피강이나 라인강과 같은 만이 아니기 때문에 만만하지 않다. 양쯔강은 험준한 산악 지대를 관통해서 바다로 흘러가는데, 이 강이 지나가는 유역에는 범람원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서 걸어 다닐 길을 낼 수도 없을 정도다. 이처럼 연속성이 없고 곳곳이 단절되어 있어서 정체성이 통일되기는커녕 오히려 단절된 지역마다 제각각의 정체성을 구축하게 된다. 따라서 중부지역은 단일한 정치체로 통합하기 매우 어렵다.


양쯔강 하류 지역은 중상류만큼 험준한 산악지대다. 이처럼 고도가 높은 지역을 통과하기 때문에 깊이가 얕고 9천 마일에 이르는 강 유역은 운항이 불가능한 계절도 있다. 양쯔강 유역의 물길에서 연중 9개월 동안 깊이가 9피트에 못 미치는 구역을 빼면 운항 가능한 지류는 1백 개에서 한 개로 줄어든다. 해안에서 내륙으로 1천6백 마일이나 들어가는 양쯔강은 지도상으로 엄청나게 거대해 보이지만, 양쯔강 유역의 쓸모 있는 땅은 중부 유럽에 있는 7백 마일 길이의 엘베강 유역보다도 작다.     


양쯔강을 연하는 운송로 덕분에 중국 중부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는 월등하게 자본이 풍부한 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중국 중부는 북부의 정치적 중심지와 통합되지도 않은 상태이고,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북중국이 늘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내부 분열이라는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지역이다.


남부 지역의 훌륭한 항구들은 내륙으로 연결된 강이 없고
 배후의 험준한 고원지대로 인해
중국의 다른 지역과 분리되어 있다.


셋째는 중국 남부의 분리주의자에 관한 것이다. 중국 남부 지역은 항구가 들어서기 좋은 여건이지만 강은 없고 산악지대가 많으면서 열대 기후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해괴망측한 지정학적 여건을 갖고 있다. 북중국의 한족은 남중국을 침략하는 데 늘 애를 먹었지만, 해상세력인 외국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남중국의 훌륭한 항구들은 험준한 고원지대를 배후에 두고 있다. 이런 험준한 영토로 인해서 북중국인 남중국을 공격하거나 통합하기 어려운 만큼 해안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남중국의 지역 세력이 바다로 진출하기도 어렵다. 남중국의 훌륭한 항구들은 중국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대신 외부 세력들이 자리잡기에 적당한 지리적 조건을 갖고 있다. 이런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여러 개의 작은 지역으로 나뉘어서 고립된 채 살아온 남중국 사람들은 바깥 세계로 진출하기 위해 외국인들과 협력해왔다. 물론 오래전부터 해적과 무역상들이 남중국 해안 지역을 따라 약탈을 하며 잇속을 채워왔지만, 남중국 지역민들도 대리인이나 조력자의 형태로 제국에 가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홍콩(香港)이다. 20세기 초부터 남중국 도시들은 외세와의 협력을 통해 식량의 절반 이상을 수입하고 있었다. 남중국에는 지역적 특성이 확고히 뿌리내렸기 때문에, 한족이 북부에서 다른 민족들을 모두 제거했듯이 남부에서도 소수민족을 소탕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현재 중국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소수민족과 언어가 다른 집단들이 바로 남중국에 모여 살고 있다. 남중국은 기꺼이 외세와 협력하는 경향이 있고 여러 민족이 섞여 있어서 매우 이질적이라는 점을 북중국의 권력집단은 간과하지 않았고 이에 분개하면서도 두려워했던 것이다.


중국 인구의 절반인 6억 5천만 명이 거주하는
내륙지역은 극도로 빈곤한
소수 민족들로 분리되어 있다.


넷째, 북부지역의 군국주의자, 중부 지역의 상인, 남부 지역의 분리주의자를 제외하고 남은 지역에 관한 것이다. 중국의 북부와 중부와 남부의 인구를 모두 합해도 중국 전체 인구의 절반밖에 안된다. 북부, 중부, 남부는 중국의 저지대와 해안 지역이며, 나머지 중국인들은 내륙에 살고 있다. 내륙 지역의 지리적 여건은 천차만별이다. 쓰촨(四川)은 양쯔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상하이와 바깥 세계와 어느 정도 통합되어 있다. 내몽골은 부분적으로 불모지다. 위난 내륙 산악 지대에는 가난한 소수 민족들이 많다. 티베트와 신장(新疆)의 드넓은 공간도 소수민족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수천 년 동안 이 지역을 장악하려는 중앙의 시도에 저항해 왔다. 이토록 가지각색인 내륙 지역의 민족들을 하나도 묶을 수 있는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다. 이 지역에서 이동하기는 거의 악몽 수준이므로 극도로 빈곤해서 1인당 소득이 해안 지역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2014년 기준으로 북적거리고 활기차게 성장하는 중국의 모습을 내륙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험준한 내륙 지역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중국의 내륙 지역도 과거의 어느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북부, 중부, 남부 지역과 달리 내륙 지역은 중국이라는 나라의 일상적 관심사에서도 벗어나 있다. 지리적 여건 때문에 내륙 지역의 인구는 해안 지역으로부터, 또 같은 내륙 지역의 다른 지방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으므로 중국의 국가적 의제를 설정하기는커녕 서로 교류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중국 인구의 절반인 6억 5천만 명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이 정도 규모의 인구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고, 간혹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 등장해서 내륙 지역을 통일하려 하면 중국 전체가 들썩인다. 모택동이 세를 규합해서 권력의 기반을 다진 곳은 북중국이지만, 결국 정권을 잡게 된 까닭은 내륙 지역 중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상기한 바와 같이 다양한 지리적 특성들이 혼재함으로 인해서 중국은 해상력이 약한 국가일 수밖에 없었다. 북중국은 산업화에 따라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공적으로 항구를 만들기 전까지는 바다로 진출할 역량이 거의 전무했다. 남중국에는 항구가 있지만 주변 지형이 너무 험준해서 후배지가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에 항구를 만들려면 엄청난 물자를 쏟아부어야만 했다. 이를 위한 집중적 물자 투입은 산업화 덕분에 여러 곳의 다양한 인구 밀집 중심지들이 서로 연결된 연후에 가능했다. 남은 곳은 세계적인 수준의 도시이자 세계적 수준의 항구인 상하이가 있는 중국 중부 지역이다. 하지만 상하이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역은 아주 작다. 양쯔강 상류에 있는 도시들은 험준한 산악지대라서 상하이의 영향이 미치지 않고, 상하이는 바깥세상과의 교역을 기회라기보다는 위협으로 보는 화베이 평원 세력들의 권력과 이해관계에 따라 희생되기 일쑤였다.


중국은 유리처럼 권력이 깨지기 쉬운 정치 중심지 북부 지역,
 다른 지역에 무관심한 경제 중심지 중부 지역,
 분리 독립 가능성이 상존하는 남부 해안 지역,
거의 무시되지만 중국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는 내륙 지역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처럼 중국은 네 개의 지역으로 나누어진 체제, 즉 유리처럼 권력이 깨지기 쉬운 정치 중심지 북부, 다른 지역에 무관심한 경제 세력인 중부, 분리 독립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남부, 그리고 거의 무시되고 있는 내륙 체제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중국 정치 체제에는 이러한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중앙정부의 핵심적 군부는 모두 북부에 본부를 두고 있고, 북부와 중부가 10년 주기로 주석을 번갈아 하면서 안보와 무역의 균형을 유지하는 한편,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에는 남부를 대표하는 대표자 조차 없다.


이와 같이 지리적 특성을 통해 중국을 살펴보면 중국에 대해 우리가 품고 있는 가장 큰 환상, 즉 중국은 통일된 나라라는 신화가 깨지고 본모습이 드러난다. 중국 본토와 대만의 관계뿐만 아니라, 중국 본토 자체가 진정으로 통일된 정치체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게 만든다. 다만, 이와 같은 논거는 미국의 지정학자가 주장하는 것이므로 서구 중심적 시각으로 중국의 역량과 자원을 과소평가했을 수도 있음을 간과하진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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