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휴게공간의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산에 올라갈 땐 안 보이고
내려올 때 보이는 것은?
몇몇 동료들이 정답을 궁금하게 여겼다.
본인이 생각하는 것이 답이라고 말했지만,
어떤 이는 끝까지 나의 답을 듣고 싶어 했다.
모닝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김춘수의 꽃이란 시가 떠올라서
끄적인 낙서 같은 질문이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가 생각한 꽃과
내가 생각한 들꽃의 의미는 다르다.
하지만 그의 시는 내게 질문을 갖게 했다.
높은 곳에 올라갈 땐 들꽃을 볼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목적을 달성하거나 마음을 비우고
내려올 때서야 그 꽃을 볼 여력이 생긴다.
무심코 지나칠 땐 들풀인 듯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들꽃이다.
여기가 김춘수의 꽃과 나의 들꽃이 만나는 연결점이다.
이름을 불러주니 내게 다가와 꽃이 되었다는 싯구와
멈춰서 들여다보니 예쁜 들꽃이더라는 생각의 접점이다.
산에
올라갈 땐 보이지 않지만
내려올 때 보이는 것은 들꽃이다.